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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의재
옛 여자의 소식을 우연히 듣게 되었다. 정확히 말하면, 듣게 된 것이 아니라 보게 된 것이고, 누군가에게서 들은 게 아니라 실제 그녀 자신의 문장을 통해서지만. 그것은 내가 아는 누군가의 홈페이지에 올려져 있었다. 그것은 의례적인 안부 인사 같은 것이었다. 물론 내게 한 것은 아니다. 나는 그 짧은 문장을 통해, 여러 가지 것들을 미루어 짐작해본다. 어머니와 한 집에 살고 있는 것으로 보아, 아직 결혼은 하지 않은 것 같다. 며칠 뒤, 그 홈페이지의 주인, 선생님을 만났다. 농담처럼 그녀의 얘기를 꺼내본다. 그녀는 여전히 말랐다고 한다. 나는 잠시 나와 함께 있던 시절에 그녀의 몸을 떠올려 본다. 인감도장을 팠다. 용도가 용도인 만큼 어머니께서는 좋은 도장을 파라고 했는데, 나로서는 뭐가 좋은지 알 도리..
순전한 나 자신만을 위한 문장이 있을까? 이것은 정말 어려운 질문이다. 범주가 너무 넓다. 원론적인 관점에서 바라보자면, 문장이란 결국 ‘내 밖’에 있는 것이다. 그것은 여기(내 안)가 아니라, 거기에 있다. 문장이란 거기에 있어서, 누군가에게 보여지는 것이고, 또한 보여짐으로써 문장의 존재는 성립된다. 물론 그 ‘누군가’가 ‘나’, 즉 문장을 쓴 한 개인으로 국한되는 경우도 있다. 일기 같은 것이다. 또는 메모다. 하지만 그때도 문장을 쓴 ‘나’와, 문장을 읽는 ‘나’는 다르다. 이 다름은 비유적인 것이나, 철학적인 것이 아니다. 이것은 직관적이다. 이 다름을 설명하기는 어렵지만, 알기는 쉽다. 나는 이럴 경우, 나의 의견에 대해 그럴 듯하냐고 물음으로써 상대방을 설득한다. 그럴 듯한가? 그러므로 ‘순..
'지금의 어린이들이 자라서 결국 될 수 있는 건 보잘 것 없는 어른일 뿐이지만, 그 과정에서 겪게 될 수많은 나쁜 일들 중에, 그래도 좋은 게 있다는 걸 알려주고 싶었다.' 얼마 전 우연히 보게 된 일본 재패니메이션에 대한 다큐멘터리 중, 미야자키 하야오의 인터뷰 내용 중 일부이다. 나는 이 말을 듣고, 역시 미야자키 하야오라고 감탄하고 말았다. 실제로 그의 얼굴을 보고, 그의 음성을 들은 건 그때가 처음이었다. 그 인터뷰는 1996년이나 97년의 것으로, 그가 아직 ‘원령공주’를 만들기 전의 일이다. 나는 특히 첫 번째 문장이 맘에 든다. ‘지금의 어린이들이 자라서 결국 될 수 있는 건 보잘 것 없는 어른일 뿐이다.’ 이런 터프함과 냉정함, 그리고 자포자기적인 심정이 좋다. 비록 아무도 미야자키 하야오..
[Intro] Look, if you had one shot or one opportunity 이봐, 만약 너에게 네가 원했던 모든것을 To seize everything you ever wanted in one moment 얻을 수 있는 한 번의 기회가 주어졌다면 Would you capture it or just let it slip? 잡을 건가 아니면 그대로 놔둘건가? [Verse 1] Yo, his palms are sweaty, knees weak, arms are heavy Yo, 손바닥은 땀으로 차고, 다리는 후들거리고, 팔은 무겁게만 느껴져 There is vomit on his sweater already 그의 옷에는 구토 자국이 있지 Moms forgettin' he's nervous ..
언제 내가 처음 이 음악을 들었던 것일까? 아니, 언제 내가 처음 이 음악의 제목을 알게 된 것일까? 기억나지 않는다. 어느 순간부터 나는 자연스럽게 이 음악과, 이 음악의 제목을 알게 되었다. 척 맨시니의 ‘필 소 굿.’ 으흠. 척 맨시니하면, 자연스럽게 칙 코리아나, 팻 맷쓰니 등등의 이름이 연상된다. 그렇다고 내가 재즈 매니아라는 건 아니다. 나는 어떤 것이든, 그렇게 열중하지 않는다. 별 시시한 일들을 잘도 기억하는 내가, 이 음악과 맺게 된 최초의 인연이 기억나지 않는다는 건, 조금 이상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렇다 해도 내게는 이 음악과 관련된 몇 가지의, 역시 시시한(그래도 내게는 소중한) 기억들이 있다. 첫 번째는, 작년 여름의 일이다. (벌써 이것이 작년 일이라니!) 나는 그 여름, 대학..
사랑에 대해서 말하는 것은 지극히 어렵다. 그 어려움 중의 하나는 사랑은 때로 전혀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의미를 한데 아우르는 단어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그 하나하나를 구별하지 않는 것은 일견 무지나 소홀인 것처럼 보이지만, 이상하게도 어느 때가 되면 고개를 끄덕이며 수긍할 수 있는 부분을 발견하기도 한다. 나는 여기서 사랑이 어떻게 시작되고 또 어떻게 끝나는지 말하지 않겠다. 그것은 내게도 지극히 궁금한 일이지만, 도저히 알 수 없는 일이다. 내가 그 시작과 끝을 설명하는 유일한 방법은, 그것이 일종의 사고(사건)라는 것이다. 그것은 아무런 이유 없이 발생했다가, 또 아무런 이유 없이 소멸된다. 그런 면에서 운명과 닮아 있다. 1. 거리를 없애는 사랑의 행위 : 폭력 내가 사랑에 대해 말할 수 있는 ..
나는 싸움을 잘 못한다. 신체를 사용하여 치고받는 실제의 싸움뿐만 아니라, 말싸움, 또 비유적인 의미에서의 싸움 등등. 웬만하면 피하고 싶다. 그렇다고 싸움을 두려워하는 것은 아니다. 이 말은 어떤 싸움이든 했다 하면 이길 자신이 있다는 말이 아니다. 그러니까 이 말은 싸움에서 지는 걸 두려워하지 않는다는 말과 같다. 내가 남들과 잘 싸우지 못하는 이유에 대해서 곰곰이 생각해봤는데, 아마도 내게는 절실하게 지키고 싶은 것이 없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요컨대 명분이 없는 것이다. 져도 별로 상관없다. 그저 내가 바라는 것은, 그 싸움에서 내가 덜 상처받기를 바랄 뿐이다. (그래도 때로 술이 취하면 누군가에게 시비를 걸고는 한다. 싸우고 싶어진다. 또 여기서 ‘논쟁’과 ‘의견교환’을 구별할 필요도 있다. 때..
이런 말 이런 곳에 해도 될는지 모르겠지만, 나는 가족을 믿지 않는다. 실제로 우리 가족 구성원들을 믿지 않는다는 게 아니라, 그저 ‘가족’을 믿지 않는다. 가족을 싫어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가족’에 대해서 지금껏 단 한 번도 진지하게 생각해 본 적이 없다. 그것은 그저 알 수 없는 것, 그리고 또한 나와 어울리지 않는 것이라고 생각해왔던 것 같다. 그래서 내가 가장 싫어하는 유형의 소설은 ‘가족’ 소설이다. 좀 더 정확히 말하면, 90년대 여성작가들의 ‘가족’ 소설이다. 가족에 대해 무엇을 말할 게 있는가? 그것은 아마 내 어린 시절의 경험과 무관치 않을 거라고 생각한다. 그게 몇 살 때였는지 나는 기억하고 있지 못하지만, 또 그것을 알고 있는 사람들에게 묻고 싶지도 않지만, 어린 시절 나는 어머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