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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의재
만일 내가 무언가를 원한다면, 그것은 원인이 되는 걸까, 목적이 되는 걸까? 그때 나를 이끄는 힘은 어디에서 오는 걸까? 앞인가? 뒤인가? 가령, 예를 들어서 말이다. 내가 여자에게 꽃을 선물한다면, 그것은 내가 그녀를 사랑하기 때문일까, 아니면 그녀를 사랑하고 싶어서, 또는 그녀를 얻고 싶어서일까? 별 차이가 없다고? 아니다. 그것은 내게 굉장히 다른 것처럼 느껴진다. 생각해보라. 그녀가 꽃을 거절한다면? 그때 내가 보낸 꽃은, 내가 치룬 노력은, 과연 뭐가 되는 걸까? 내가 그 일을 통해 무엇을 배워야만 하는가? 이런 쓸데없는 생각으로 하루하루를 보냅니다.
잠에서 깨어나 침대에 누운 채로 아침 라디오 방송을 들었습니다. 방 안은 조금 어두웠고, 오디오의 패널은 주황빛이었습니다. 거기에 라디오의 주파수가 써 있습니다. 제목도 가수의 이름도 모르지만, 귀에 익은 노래를 들었습니다. 몸을 비스듬히 일으켜 팔로 머리를 괴었습니다. 눈을 감았다가 잠시 후 다시 떴습니다. 어젯밤, 아침에 일어나 제일 먼저 해야겠다고 다짐한 일을 기억해냈습니다. 그건 손톱을 깎는 일이었습니다. 손톱을 깎는 데 소요되는 시간은 얼마나 걸릴까요? 한 십 분? 오 분? 손톱을 깎고 나서 그것이 다시 깎아야 할 때까지 자라는 데 소요되는 시간은 얼마나 걸릴까요? 일주일? 이주일? 대체 누가 그것을 일일이 따져보고 기억하고 있을까요? 손톱은 어느 새 자라있고, 우리는 그것을 아무 감흥 없이, ..
다시 한번 다리에 관한 꿈을 얘기해야 겠다. 나는 국기게양대에 앉아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그리고 어쩐지 정말로 잘못된 버스를 타고 엉뚱한 곳에 내렸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집으로 가기 위해서는 다리를 건너야 한다는 사실도 알 수 있었다. 꿈이기 때문에 모든 것을 분명하게 알 수 있는 것이다. 주위를 둘러 보았다. 그곳은 다리 위였다. 어째서 다리 위에 국기게양대가 있는지 잘 이해할 수 없었지만 어쨌든 꿈이다. 꿈이란 다 그런 것이다. 가로등도 비치지 않는 어두운 곳이었다. 시간이 흐르자 어둠에 익숙해진 눈이 먼 곳에서 이쪽으로 다가오는 아이 하나를 찾아 내었다. 난 그 아이를 알고 있는 것 처럼 느껴졌다. 아주 오래전에 어디선가 만났는데, 다른 모든 일처럼 지금은 잘 기억해낼 수가 없는 것이다. 내 앞..
최근에 어떤 후배의 문장을 읽다가 참 답답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기회가 닿으면 꼭 한 번 그 친구에게 너는 왜 문장을 쓰냐고 물어보고 싶을 정도입니다. 물론 사람들마다 문장을 쓰는 이유는 제각각입니다. 소설을 쓰는 이유도 마찬가지입니다. 자기 자신을 위해서 쓰는 경우도 있고, 거기서 출발해 더 나아가는 문장도 있습니다. (저는 이 ‘개인적인 심정’에서 출발하는 문장을 참 좋아합니다만.) 또한 처음부터 다른 사람을 향해(위해) 쓰는 문장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 모든 것을 떠나서, 문장에는 기본적인 원칙이란 게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 원칙을 배우기 위한 가장 좋은 교재는 (문득 든 생각이지만), 어쩌면 ‘제품 사용 설명서’ 같은 게 아닐까 싶습니다. 제품 사용 설명서야말로 우리가 문장을 쓰는 데 결코 잊..
매번 그렇지만, 이번 소설은 더욱 제 자신에게 특별했습니다. 무엇보다 처음 시작할 때의 마음가짐이 달랐습니다. 출발점부터 달랐던 겁니다. 카페 일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와서, 한 번 써봐야겠다, 라고 시작해서 약 두 시간 만에 후딱 완성시킨 소설입니다. 결과적으로 두 시간 만에 완성시켰다기보다, 처음부터 그 정도의 시간 동안만 쓰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다음 날 아침 일찍 일어나야 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고 쓰다가 끊고 다음 날 밤에 이어 쓰고 싶지도 않았습니다. 현재의 제 생활과 성격으로 보아 그것은 불가능한 일이었습니다. 도저히 소설에만 집중할 수가 없는 형편입니다. 쓸 수 있는 데까지 써본다. 다 못쓰면 포기한다. 또 쓰다가 막혀도 즉각 포기한다. 대충 이런 마음을 품고 소설을 써나갔습니다. 그리고 소설..
참 오랫동안 문장을, 소설을 쓰지 않았다. 오늘 내가 예전에 쓴 소설 한 편을 읽었다. ‘먼 산에 내리는 눈.’ 역시, 처음 그것을 쓰고 며칠 뒤 느꼈던 것처럼, 부족함을 느낀다. 어떤 부분은 좀 더 밀고 나갔어야 한다고, 그랬어야 한다고 느낀다. 한 때는 소설을 쓴다는 것이 즐거웠고, 한 때는 소설을 쓰는 것이 의미 없는 것처럼 느껴졌고, 한 때는 소설을 쓰는 것이 너무 어렵다고 생각했고, 한 때는 소설을 쓰는 것이 별 것 아니라는 생각을 했었다. 그것은 아주 간단한 일이라고 느꼈다. 산다는 일에 비하면, 정말로 문장을 쓴다는 것은 아무 것도 아니라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이제는 산다는 것도 소설을 쓴다는 것도, 내가 아직 배워야 할 게 너무나 많다고 느낀다. 내가 어디까지 왔는지, 생각한다. 이만큼인..
누구나 힘든 시절이 있다. 나도 그렇다. 그것이 누구도 아닌, 어떤 일도 아닌, 바로 자기 자신 때문이라는 걸 알게 된다. 자기 자신을 상대로 싸우는 것이다. 그런 깨달음은 때로 마음을 편하게도 하지만, 때로 외롭게도 한다. 그리고 항상 희망을 갖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