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의재
물고기통신 50 <내 소설을 말한다. '커피 잔은 어떻게 해서 깨어지는가?'> 본문
매번 그렇지만, 이번 소설은 더욱 제 자신에게 특별했습니다. 무엇보다 처음 시작할 때의 마음가짐이 달랐습니다. 출발점부터 달랐던 겁니다. 카페 일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와서, 한 번 써봐야겠다, 라고 시작해서 약 두 시간 만에 후딱 완성시킨 소설입니다. 결과적으로 두 시간 만에 완성시켰다기보다, 처음부터 그 정도의 시간 동안만 쓰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다음 날 아침 일찍 일어나야 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고 쓰다가 끊고 다음 날 밤에 이어 쓰고 싶지도 않았습니다. 현재의 제 생활과 성격으로 보아 그것은 불가능한 일이었습니다. 도저히 소설에만 집중할 수가 없는 형편입니다. 쓸 수 있는 데까지 써본다. 다 못쓰면 포기한다. 또 쓰다가 막혀도 즉각 포기한다. 대충 이런 마음을 품고 소설을 써나갔습니다. 그리고 소설을 다 쓰고 나서, 저는 실패했다고 느꼈습니다. 이야기의 흐름상 뭔가 더 이어져나가야 한다고 느꼈습니다. 소설의 꼴 자체도 만들어지지 않았다고 생각했죠. (그것은 물론 분량이 짧기 때문만은 아닙니다.) 하지만 무엇보다 어느 순간 제 자신이 더 이상 할 얘기가 없었던 겁니다. 뭘 더 써야 할지 도저히 모르겠더군요. 그래서 끝냈습니다. 어차피 다음 날 이어 쓰지도 못할 테니, 이대로 끝내자. 누구에게도 보여주지 않을 생각이었습니다.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느긋하게 처음부터 끝까지 다시 읽어보니, 쓸 때는 느끼지 못했던 이상한 흐름이 있다는 걸 발견했습니다. 정직하게 말해서, 분명 그것은 제가 쓴 소설이었고 문장이었지만, 스스로도 제가 뭘 썼는지 모르겠더란 말입니다. 그러나 분명한 건, 문득 이걸로도 소설이 될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홈페이지에 올렸습니다. 어떻게 해서 이게 소설이 될 수 있는지는 아직도 모르겠지만, 그리고 누군가는, 어쩌면 많은 사람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을지도 모르지만, 제 스스로는 충분하다고 느꼈습니다. 아직도 모르겠습니다. 과연 제가 더 썼어야 하는 건지, 그래서 그것이 이 소설의 치명적인 단점이 되는 건지, 아니면 처음부터 이 소설은 여기서 끝내야만 했었던 건지 알 수가 없습니다. 제 자신에게 상상력이나 힘이 부족한 건지, 아니면 제가 소설쓰기에 대해 새로운 어떤 것을 배운 건지 모르겠습니다.
이번 소설이 이전의 소설들과 또 다른 점은, 이 소설의 내용은 처음부터 소설로 구상한 것이 아니라, ‘단상’이었다는 점입니다. 이 소설의 제목 ‘커피 잔은 어떻게 해서 깨어지는가?’는 얼마 전에 쓰다가 실패한 ‘단상’의 제목이었습니다. 뻔한 결론이 될 것 같았습니다. 그런데 며칠 뒤 이 내용을 소설로 써보면 어떨까 싶었습니다. ‘단상’으로 쓰면 뻔한 얘기지만, 소설로 쓰면 다를지 모른다. 그래서 과연 어떻게 되었을까요? 물론 그것이 소설이기 때문에 내용 자체는 많이 달라졌지만, 실제의 결론은 똑같습니다. 이 소설의 마지막 단락의 어떤 문장은, 실제 제가 썼던 단상의 문장을 그대로 옮겨왔습니다. 최근에 저는 (자칭) ‘대해서’ 시리즈라는 단상을 쓰고 있습니다만, 사실 처음부터 그런 형식으로 계속 문장을 쓰겠다고 시작한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어쩌다보니 계속 쓰게 되었고, 결과적으로 저는 그 시리즈를 써나가는 과정에서 참 많은 것들을 배운 것 같습니다. 그리고 거기서 배운 어떤 것들을 이 소설에서 써먹었다고 생각합니다. 이를테면, 이 소설은 ‘대해서’ 시리즈 단상의 연장선상에 있는 겁니다. 이전의 저는 무의식적으로 ‘단상’은 단상이고 소설은 소설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이번 소설을 쓰고 나서는, 그 두 가지가 별반 다르지 않은 게 아닌가 느낍니다. 또한 소설에 대해서 전혀 새로운 시각을 가지게 되었다고 느낍니다. 정말로 제자 뭘 배웠는지는 앞으로 써나갈 소설을 통해 좀 더 구체화될 테고, 어쩌면 전혀 잘못된 것으로 결론 날지도 모르지만, 지금은 그렇습니다.
마지막으로 이번 소설을 통해 배운 것은 이런 겁니다. 아, 나는 이런 문장을 쓰는 구나. 이렇게 쓰는 구나. 그렇습니다. 저는 역시 이렇게 밖에 쓸 수가 없습니다. 그것은 굉장히 기분 좋은 일이지만 (왜냐면 적어도 내 문장이 있다는 점에서는 말이죠.), 다른 한편으로는 우울한 일이기도 합니다. 그것은 또한 한계가 되기도 할 테니까요. 제가 썼던 문장에 대해 누군가 덧달기로 지적했듯이, ‘여러 문제(내용)들이 뒤섞여 있고’, ‘논리적 비약의 경향이 있고’, ‘비슷한 이야기의 변주’인 그런 문장들이니까요. 저는 전적으로 그들의 지적에 동감합니다. 하지만 별로 개의치 않습니다. 결국 저는 그런 문장들을 끌어안고 계속 소설을 써나갈 테고, 잘 하면 그것이 제 문장의 미덕이 될 거라고 생각하니까요. 한계란 것은 언제나 출발점인 거겠죠. 거기서부터 출발해서 제 자신이 어디까지 갈 수 있는가, 이런 것들이 제가 고민해야 할 문제들이겠죠. 물론 거기에는 언제나 ‘잘 되면’이라는 수식어가 붙겠지만. 아무쪼록 잘 됐으면 좋겠습니다.
이번 소설이 이전의 소설들과 또 다른 점은, 이 소설의 내용은 처음부터 소설로 구상한 것이 아니라, ‘단상’이었다는 점입니다. 이 소설의 제목 ‘커피 잔은 어떻게 해서 깨어지는가?’는 얼마 전에 쓰다가 실패한 ‘단상’의 제목이었습니다. 뻔한 결론이 될 것 같았습니다. 그런데 며칠 뒤 이 내용을 소설로 써보면 어떨까 싶었습니다. ‘단상’으로 쓰면 뻔한 얘기지만, 소설로 쓰면 다를지 모른다. 그래서 과연 어떻게 되었을까요? 물론 그것이 소설이기 때문에 내용 자체는 많이 달라졌지만, 실제의 결론은 똑같습니다. 이 소설의 마지막 단락의 어떤 문장은, 실제 제가 썼던 단상의 문장을 그대로 옮겨왔습니다. 최근에 저는 (자칭) ‘대해서’ 시리즈라는 단상을 쓰고 있습니다만, 사실 처음부터 그런 형식으로 계속 문장을 쓰겠다고 시작한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어쩌다보니 계속 쓰게 되었고, 결과적으로 저는 그 시리즈를 써나가는 과정에서 참 많은 것들을 배운 것 같습니다. 그리고 거기서 배운 어떤 것들을 이 소설에서 써먹었다고 생각합니다. 이를테면, 이 소설은 ‘대해서’ 시리즈 단상의 연장선상에 있는 겁니다. 이전의 저는 무의식적으로 ‘단상’은 단상이고 소설은 소설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이번 소설을 쓰고 나서는, 그 두 가지가 별반 다르지 않은 게 아닌가 느낍니다. 또한 소설에 대해서 전혀 새로운 시각을 가지게 되었다고 느낍니다. 정말로 제자 뭘 배웠는지는 앞으로 써나갈 소설을 통해 좀 더 구체화될 테고, 어쩌면 전혀 잘못된 것으로 결론 날지도 모르지만, 지금은 그렇습니다.
마지막으로 이번 소설을 통해 배운 것은 이런 겁니다. 아, 나는 이런 문장을 쓰는 구나. 이렇게 쓰는 구나. 그렇습니다. 저는 역시 이렇게 밖에 쓸 수가 없습니다. 그것은 굉장히 기분 좋은 일이지만 (왜냐면 적어도 내 문장이 있다는 점에서는 말이죠.), 다른 한편으로는 우울한 일이기도 합니다. 그것은 또한 한계가 되기도 할 테니까요. 제가 썼던 문장에 대해 누군가 덧달기로 지적했듯이, ‘여러 문제(내용)들이 뒤섞여 있고’, ‘논리적 비약의 경향이 있고’, ‘비슷한 이야기의 변주’인 그런 문장들이니까요. 저는 전적으로 그들의 지적에 동감합니다. 하지만 별로 개의치 않습니다. 결국 저는 그런 문장들을 끌어안고 계속 소설을 써나갈 테고, 잘 하면 그것이 제 문장의 미덕이 될 거라고 생각하니까요. 한계란 것은 언제나 출발점인 거겠죠. 거기서부터 출발해서 제 자신이 어디까지 갈 수 있는가, 이런 것들이 제가 고민해야 할 문제들이겠죠. 물론 거기에는 언제나 ‘잘 되면’이라는 수식어가 붙겠지만. 아무쪼록 잘 됐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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