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의재
물고기통신 52 본문
다시 한번 다리에 관한 꿈을 얘기해야 겠다.
나는 국기게양대에 앉아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그리고 어쩐지 정말로 잘못된 버스를 타고 엉뚱한 곳에 내렸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집으로 가기 위해서는 다리를 건너야 한다는 사실도 알 수 있었다. 꿈이기 때문에 모든 것을 분명하게 알 수 있는 것이다.
주위를 둘러 보았다. 그곳은 다리 위였다. 어째서 다리 위에 국기게양대가 있는지 잘 이해할 수 없었지만 어쨌든 꿈이다. 꿈이란 다 그런 것이다. 가로등도 비치지 않는 어두운 곳이었다. 시간이 흐르자 어둠에 익숙해진 눈이 먼 곳에서 이쪽으로 다가오는 아이 하나를 찾아 내었다. 난 그 아이를 알고 있는 것 처럼 느껴졌다. 아주 오래전에 어디선가 만났는데, 다른 모든 일처럼 지금은 잘 기억해낼 수가 없는 것이다. 내 앞 5m전방에서 걸음을 멈추고는 나를 한동안 쳐다 보던 그 아이는 이렇게 물었다.
[다리를 건널 거지요?]
[그래.]
[왜요?]
[여기를 벗어나는 거야.]
그러자 그 아이는 마치 비밀얘기를 하듯 목소리를 낮추었다.
[그 다리는 건널 수가 없어요. 아무도.]
나는 아무 대꾸도 하지 않았다.
[아무도 다리를 건널 수는 없어요.]
그 아이는 반복해서 그러나 조금 높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러나 나는 다리를 건너야 해.]
[왜요?]
[왜냐면 거기에 내 집이 있기 때문이지.]
[어디를 가든 마찬가지예요. 여기에 집을 지어요.]
나는 피식 웃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그리고 아이의 얼굴이 보이지 않았기 때문에 좀 더 가까이 오라고 손짓을 하며 얘기를 했다.
[여기서는 집을 지을 수 없어. 왜냐면 그 집은 환상과도 같아서 한번 지어놓으면 다시는 찾아가지 못할테니까.]
그런데도 아이는 알 수 없다는 듯이 고개를 흔들었다. 그런 아이의 모습이 무척이나 귀엽게 느껴졌다.
[근데 아이야 너 여기서 사니? 네 얼굴이 잘 보이지 않는구나. 내게 좀더 가까이 올 수 없겠니?]
어쩐 일인지 그 말에 아이는 뒤돌아서 도망쳤다.
나는 일어서 가지말라고 소리쳤다. 그러나 어둠은 순식간에 아이와 나 사이를 갈라놓고, 그 뒤엔 뛰어가는 아이의 발자국 소리만이 체셔고양이의 미소처럼 남았다. 난 그 소리가 마치 빗소리 같다고 생각했다. 잠에서 깨어나도 오랫동안 내 귀에 그 소리가 들렸다. 창문을 열자 비가 오고 있었다.
그런 꿈이다.
<'1992년의 국기게양대' 중에서>
나는 국기게양대에 앉아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그리고 어쩐지 정말로 잘못된 버스를 타고 엉뚱한 곳에 내렸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집으로 가기 위해서는 다리를 건너야 한다는 사실도 알 수 있었다. 꿈이기 때문에 모든 것을 분명하게 알 수 있는 것이다.
주위를 둘러 보았다. 그곳은 다리 위였다. 어째서 다리 위에 국기게양대가 있는지 잘 이해할 수 없었지만 어쨌든 꿈이다. 꿈이란 다 그런 것이다. 가로등도 비치지 않는 어두운 곳이었다. 시간이 흐르자 어둠에 익숙해진 눈이 먼 곳에서 이쪽으로 다가오는 아이 하나를 찾아 내었다. 난 그 아이를 알고 있는 것 처럼 느껴졌다. 아주 오래전에 어디선가 만났는데, 다른 모든 일처럼 지금은 잘 기억해낼 수가 없는 것이다. 내 앞 5m전방에서 걸음을 멈추고는 나를 한동안 쳐다 보던 그 아이는 이렇게 물었다.
[다리를 건널 거지요?]
[그래.]
[왜요?]
[여기를 벗어나는 거야.]
그러자 그 아이는 마치 비밀얘기를 하듯 목소리를 낮추었다.
[그 다리는 건널 수가 없어요. 아무도.]
나는 아무 대꾸도 하지 않았다.
[아무도 다리를 건널 수는 없어요.]
그 아이는 반복해서 그러나 조금 높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러나 나는 다리를 건너야 해.]
[왜요?]
[왜냐면 거기에 내 집이 있기 때문이지.]
[어디를 가든 마찬가지예요. 여기에 집을 지어요.]
나는 피식 웃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그리고 아이의 얼굴이 보이지 않았기 때문에 좀 더 가까이 오라고 손짓을 하며 얘기를 했다.
[여기서는 집을 지을 수 없어. 왜냐면 그 집은 환상과도 같아서 한번 지어놓으면 다시는 찾아가지 못할테니까.]
그런데도 아이는 알 수 없다는 듯이 고개를 흔들었다. 그런 아이의 모습이 무척이나 귀엽게 느껴졌다.
[근데 아이야 너 여기서 사니? 네 얼굴이 잘 보이지 않는구나. 내게 좀더 가까이 올 수 없겠니?]
어쩐 일인지 그 말에 아이는 뒤돌아서 도망쳤다.
나는 일어서 가지말라고 소리쳤다. 그러나 어둠은 순식간에 아이와 나 사이를 갈라놓고, 그 뒤엔 뛰어가는 아이의 발자국 소리만이 체셔고양이의 미소처럼 남았다. 난 그 소리가 마치 빗소리 같다고 생각했다. 잠에서 깨어나도 오랫동안 내 귀에 그 소리가 들렸다. 창문을 열자 비가 오고 있었다.
그런 꿈이다.
<'1992년의 국기게양대'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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