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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의재

물고기통신 52 본문

물고기통신

물고기통신 52

물고기군 2002. 6. 18. 04:05
다시 한번 다리에 관한 꿈을 얘기해야 겠다.

나는 국기게양대에 앉아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그리고 어쩐지 정말로 잘못된 버스를 타고 엉뚱한 곳에 내렸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집으로 가기 위해서는 다리를 건너야 한다는 사실도 알 수 있었다. 꿈이기 때문에 모든 것을 분명하게 알 수 있는 것이다.
주위를 둘러 보았다. 그곳은 다리 위였다. 어째서 다리 위에 국기게양대가 있는지 잘 이해할 수 없었지만 어쨌든 꿈이다. 꿈이란 다 그런 것이다. 가로등도 비치지 않는 어두운 곳이었다. 시간이 흐르자 어둠에 익숙해진 눈이 먼 곳에서 이쪽으로 다가오는 아이 하나를 찾아 내었다. 난 그 아이를 알고 있는 것 처럼 느껴졌다. 아주 오래전에 어디선가 만났는데, 다른 모든 일처럼 지금은 잘 기억해낼 수가 없는 것이다. 내 앞 5m전방에서 걸음을 멈추고는 나를 한동안 쳐다 보던 그 아이는 이렇게 물었다.
[다리를 건널 거지요?]
[그래.]
[왜요?]
[여기를 벗어나는 거야.]
그러자 그 아이는 마치 비밀얘기를 하듯 목소리를 낮추었다.
[그 다리는 건널 수가 없어요. 아무도.]
나는 아무 대꾸도 하지 않았다.
[아무도 다리를 건널 수는 없어요.]
그 아이는 반복해서 그러나 조금 높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러나 나는 다리를 건너야 해.]
[왜요?]
[왜냐면 거기에 내 집이 있기 때문이지.]
[어디를 가든 마찬가지예요. 여기에 집을 지어요.]
나는 피식 웃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그리고 아이의 얼굴이 보이지 않았기 때문에 좀 더 가까이 오라고 손짓을 하며 얘기를 했다.
[여기서는 집을 지을 수 없어. 왜냐면 그 집은 환상과도 같아서 한번  지어놓으면 다시는 찾아가지 못할테니까.]
그런데도 아이는 알 수 없다는 듯이 고개를 흔들었다. 그런 아이의 모습이 무척이나 귀엽게 느껴졌다.
[근데 아이야 너 여기서 사니? 네 얼굴이 잘 보이지 않는구나. 내게 좀더 가까이 올 수 없겠니?]
어쩐 일인지 그 말에 아이는 뒤돌아서 도망쳤다.
나는 일어서 가지말라고 소리쳤다. 그러나 어둠은 순식간에 아이와 나 사이를 갈라놓고, 그 뒤엔 뛰어가는 아이의 발자국 소리만이 체셔고양이의 미소처럼 남았다. 난 그 소리가 마치 빗소리 같다고 생각했다. 잠에서 깨어나도 오랫동안 내 귀에 그 소리가 들렸다. 창문을 열자 비가 오고 있었다.

그런 꿈이다.

<'1992년의 국기게양대'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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