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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의재
어젯밤 문득 생각난 건데, 어렸을 적 나는 꽤 눈치를 보는 아이였던 것 같습니다. 남들에 비해 더 그랬는지 어쨌는지는 알 수 없죠. 생각해보면, 어렸을 적에는 그런 생각조차 해보지 않는 법입니다. 그러니까 내가 남들에 ‘비해’ 어쩐다 저쩐다 이런 생각말입니다. 왜냐하면 그 시절에는 온통 나에 대한 생각만으로 가득차 있으니까요. 이 말은 거꾸로 세상 모든 사람이 나와 똑같으려니, 나와 똑같이 느끼고 생각하려니 여긴다는 말입니다. 어쨌든 그중에서 기억나는 것 중의 하나는, 아버지의 혀를 차는 소립니다. 정확히 말의 표현대로 ‘혀를 차는’ 소립니다. 쯧쯧 하는 거죠. (웃기게도 이 버릇은 나한테도 있습니다. 나 자신이 그렇게 혀를 찰 때마다, 깜짝 놀라고 또 씁쓸해지기도 합니다.) 그 소리가 그렇게 듣기 싫었..
미안하다는 말은 과거에 있지 않다. 그 의미의 대부분은 미래에 있다. 그것은 일종의 약속과 같아서 사과를 받아들인다는 건 그걸 믿는다는 것과 같다. 그래서 때때로 우리의 사과는 거짓말이 되기도 한다. 반대로 거짓사과가 진실이 되기도 한다. 그 진실은 내게 있지 않고 당신에게 있다.27 Feb 악법도 법이다 라는 말은 아무리 나쁜 법이라해도 법인 이상 지켜야 한다는 뜻이 아니다.소크라테스가 고작 그 정도의 도덕책같은 얘기를 할리는 없다.그 의미는 주어와 술어의 위치를 바꿔야 분명해진다.악법도 법인게 아니라, 법이 모두 악법이다.6 Feb '늙은' KBO도 있고 '늙은' 연제협도 있는데 '젊은'선수협과 '젊은'연예인협회는 어디에 있는가? '늙은'관료는 '늙은'로펌의 고문이 되었다가 다시 '늙은'관료가 되는데..
최근 검찰의 행태를 보면 어떤 장면이 생각난다. 그 장면에선 무언가 알 수 없고 커다란 존재가 '보아라, 내가 얼마나 힘이 세고 무서운지' 큰소리 치고 있다. 물론 이것은 우리가 옛날이야기나 동화 등에서 익히 봐왔던 장면인데, 대개 이야기의 결말은 결국 그 존재가 자신의 무능을 드러내는 걸로 끝이 난다. 하지만 나는 이 나라에서 지금 벌어지는 일들이 어떻게 끝날지 알지 못한다. 그래서 때때로 정말 무섭다. about 11 hours ago via Chromed Bird 내게 가장 놀라운 것은, 정말로 군이 무언가를 은폐하고 있다면, 어떻게 그들이 그것이 성공할 거라고, 은폐할 수 있을 거라고 여겼는가 이다. 이것은 이제껏 많은 성공이 뒷받침되지 않고는 취할 수 없는 선택이 아닌가? 하지만 다시 한번 그것..
차창문을 여니 봄냄새가 났다.도로와 나란한 하천 공원에는 운동하는 사람들이 제법 눈에 띠었다.농구코트에 공을 쫒아 다니는 사람들이 보였는데, 웃음소리가 여기까지 들리는 것만 같다.새학기의 냄새.뭐라해도 겨울의끝에 맡게 되는 봄냄새는 싫어할 수가 없다. 11 minutes ago from Chromed Bird 인디에어를 봤다. 집은 환상이다. 가족이나 결혼도 그렇다. 하지만 그런 환상없이 삶은 유지되지 않는다. 무의미해진다. 조지클루니는 그 무의미를 고통스럽게 견딘다. 단지 숫자일 뿐인 천만 마일리지라는 긍지. 하지만 사람들이 삶(환상) 속에서, 안정되어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언제든 깨어질 수 있는(해고당할 수 있는) 집에서 일상의 잠을 청할 때, 클루니는 별보다 더 환환 빛으로 공중(무의미)을 날고있다..
군대시절 황금마차라는 게 있었다. 일종의 이동식 매점인데, 노란색 트럭에 이것저것 싣고 산 깊숙한 곳에 자리잡은 부대를 돌아다녔다. 먹을 걸 사먹으려면 그것밖에 없었다. 물론 특별히 물자가 부족했던 건 아니었다. 그렇게 외따로 떨어진 부대일 수록, 사실 먹을 거는 풍족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황금마차가 오면 신이 나서 달려나갔다. 과자니, 탄산음료니, 레트로 치킨이니 만두니 하는 걸 잔뜩 사서 내무반으로 돌아와 근무를 마친 부대원들과 작은 파티를 벌였다. 황금마차가 오기를 손꼽아 기다리는 것도 아니었고, 잊어버리고 있을 때도 많았지만, 이상하게도 그 노란색 트럭을 발견하면 기분이 좋아졌다. 심지어 짠밥이 돼서 별 먹고 싶은 것도 없고, 파티를 벌이는 것도 지겨웠을 때조차도, 그래서 네들이나 먹으라며 따로 ..
예전에는 '빠'들이 소위 정신나간 사람들이라고 생각했다. 빠순이라든지, 황우석빠, 심형래빠 기타 등등. 근데 요즘에는 '빠'를 까는, 소위 이성적이고 균형잡히고 순수하게 중립적인 '척' 하는 사람들이 더 구역질이 난다. 자신들이 그 모든 일에 아무 연관도 없는 것처럼, 또 연관이 있어도 자신은 항상 객관적인 판단을 내릴 수 있는 무지막지한 이성적 능력을 가진 것처럼.때로 그들은 언론을 심하게 비난하고는 하는데, 내가 보기에 그들은 그들 자신이 비난하는 언론 그 자체인 것처럼 구는 것 같다. 아무도 이 일에 무관할 수 없다는 얘기를 하는 게 아니라, 무관함 그 자체가 그들에게 어떤 특권을 가져다주는 양 구는 게 문제다. 이를테면 아무도 이 일에 무관할 수 없다고, 그들은 무관한 것처럼 말한다. 그들이 그 ..
어쨌든 이로써 제 소설도 끝이 났습니다. 거의 반 년이상, 붙잡고 있었는데, 단지 끝이 났다는 것만으로도 참 다행스런 일이란 생각이 듭니다. 반 년이라고 했지만, 정작 컴퓨터 앞에서, 실제 문장을 쓴 시간은 그보다 훨씬 짧아지겠죠. 이를테면 거의 한 달 내내, 원고지를 기준으로 해도 채 10매를 쓰지 못한 시기도 있었고, 또 어떤 한달 내내 쓴 많은 분량의 문장을 그대로 버린 적도 있었습니다. 심지어 몇 주간은 아예 문장을 쓰지 못한 때도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와 반대로 단 며칠 만에 원고지 250매 정도의 분량을 미친 듯이 쓴 적도 있습니다. 하지만 어쨌든 끝이 났습니다. 소설이 긴 만큼, 또 붙들고 있던 시간이 긴 만큼, 이 소설에 대해 할 말도 참 많습니다만, 이제 생각하면 다 쓸데없는 말들이란 ..
갑자기 모든 것이 달라진다는 걸 믿을 수 있어? 마치 투명한 물에 한 방울의 파란 잉크가 떨어지듯이. 처음에는 아주 조그마한 변화인 것처럼 느끼지. 그건 그저 한 방울의 잉크고 뭐라 할 것도 없이 양적으로 물이 훨씬 더 많으니까. 게다가 지금껏 그것은 ‘꽤 오랫동안’ 투명한 채였던걸. 하지만 그 변화를 바라보면서, 또 때로는 저항하기도 하면서, 몸을 흔들면서 내쫓으려고 하면서, 사실은 그 모든 행동들이 오히려 잉크를 도와주고 있다는 걸 모르지. 하지만 정말로 중요한 것은 한 방울의 잉크가 투명한 물을 파랗게 만드는 것은 순식간이지만, 그것을 이전처럼 돌려놓기 위해서는 엄청난 시간이 필요하다는 거야. 불가능한 일은 아니야. 물에서 한 방울의 잉크를 뽑아내는 일이. 요컨대 ‘에너지’가 필요한 거야. 변화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