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의재
물고기통신 202 본문
군대시절 황금마차라는 게 있었다. 일종의 이동식 매점인데, 노란색 트럭에 이것저것 싣고 산 깊숙한 곳에 자리잡은 부대를 돌아다녔다. 먹을 걸 사먹으려면 그것밖에 없었다. 물론 특별히 물자가 부족했던 건 아니었다. 그렇게 외따로 떨어진 부대일 수록, 사실 먹을 거는 풍족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황금마차가 오면 신이 나서 달려나갔다. 과자니, 탄산음료니, 레트로 치킨이니 만두니 하는 걸 잔뜩 사서 내무반으로 돌아와 근무를 마친 부대원들과 작은 파티를 벌였다. 황금마차가 오기를 손꼽아 기다리는 것도 아니었고, 잊어버리고 있을 때도 많았지만, 이상하게도 그 노란색 트럭을 발견하면 기분이 좋아졌다. 심지어 짠밥이 돼서 별 먹고 싶은 것도 없고, 파티를 벌이는 것도 지겨웠을 때조차도, 그래서 네들이나 먹으라며 따로 떨어져 괜히 혼자 있을 때조차도, 그 노란색은 나를 기분좋게 했다. 나는 그것을 황금마차라고 부르기 시작한 게 단지 그게 노란색이었기 때문에 일어난 우연인지, 아님 처음부터 황금마차라는 이름을 짓고 그 다음에 노란색으로 칠하게 되었는지 몰랐다. 또 그 황금마차라는 이름이 원래 어딘가, 동화같은 데서 쓰였던 건지, 아님 그게 최초의 명명이었는지도 알 수 없었다. 어쨌든 나는 황금마차라고 하면 그 이동식 매점이 떠오른다. 뭔지 모르겠지만 그게 그냥 어느날 내 집 앞에 다시 왔으면 좋겠다.
(1 minute ago)
모든 폭력 중에 가장 나쁜 것은, 사랑의 폭력이다. 이른바 사랑하기 때문에 때린다는 것이다. 그렇지 않은가? 사랑하는 사람에게 맞는 것은 무엇보다 끔찍하다. 사랑의 매도 마찬가지다. 그러니 만일 누군가를 때려야 한다면, 그에게, 또는 그녀에게 사랑하기 때문에 때린다는 식이면 안된다. 그렇다고 미워하기 때문에, 증오하기 때문에 그래서도 안된다. 가장 좋은 것은 폭력 그 자체를 위한 폭력이다. 거기에는 일종의 법적인(무주관적인) 엄격함이 필요하다. 기계적이 되어야 한다. 내가 너를 때리는 것은 때려야만 하기 때문에 때리는 것이다. 이것이 가장 좋다. 누구에게도 폭력 그 이상의 상처를 주지 않는 유일한 벙법이다. 이것을 진정한 폭력이라고 부를까? 마치 진정한 사랑과도 같이.
(3 days ago)
공부의 신이 학생과 선생을 입시도구에 불과한 것으로 표현한다고 비판하는, 어느 진보적인 매체의 기사를 봤다. 어이없는 기사다.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지 못하는. 왜냐하면 누구나 알다시피 그게 현실이기 때문이다. 현실을 현실이라 말하는 것으로, 비판받는다면, 이 비판은 누구를 위한 걸까? 이런 내용이 기득권 이데올로로기를 표현하다고? 뭣도 모르는 소리다. 기득권 이데올로기가 주장하는 것은, 그 반대다. 공부의 신이 진짜로 누군가를 불편하게 한다면, 실제로 1등을 하는 것으로 모든 것을 가져가는 기득권층이다. 진짜로 기득권층의 마음을 편하게 만드는 이야기는 정의가 승리하는 이야기다. 착한 사람이 행복해지는 이야기다. 꼴지부터 1등까지 모두 행복해지는 이야기다. 왜냐하면 실제로 현실은 그렇지 않기 때문이다. 아, 얼마나 천박한 비판인가?
(3 days ago)
교황청이 아바타를 혹평했다고 한다. 나는 교황청의 의견에 전적으로 공감한다. 물론 그 혹평이 아바타의 부분적인 면을 겨냥하고 있다는 점을 인정하면서도. 그런 면에서 아바타의 원형이라 할만한 ‘바람계곡의 나우시카’는 확실히 한발 더 나아가 있다고 느낀다. 그곳에서는, 바람계곡에서는 자연도 인간도 모두 훼손되어 있다. 그 훼손됨, 그 근원적이라할만한 결핍을 자연과 인간 모두가 구하기 위해 애쓴다.
(1 week ago)
확실히 언론은 작동한다. 어떻게 저런 말도 안되는 말을 대담하게 지껄일 수 있지, 라고 놀라워하다가도, 그게 작동한다는 사실에 더 놀라워진다. 확실히 작동한다. 때로 저러다 망가지고 말지, 더 이상 작동 안하게 되지 생각했다. 아무도 언론을 믿지 않는다면? 하지만 결코 그렇게 되지는 않겠지. 그 믿음이 진실을 향한 믿음은 처음부터 아니었으니까. 믿음은 항상 진실에 대한 믿음이고, 그 중 진실되지 않은 것을 골라내려고 하는 노력은, 언제나 믿음 그 자체를 잃어버리게 되는 결과를 초래할 테니까. 하지만 항상 그렇듯이, 우리가 우리 자신으로 존재하기 위해서는 믿음이 필요한 것이다. 진실은 포기할 수 있었도, 믿음은 포기할 수 없다.
(2 weeks ago)
아바타가 감독의 전작에 비해 맥이 빠지는 부분은, 인간이 그들에게 아무 것도 줄게 없다는 말이 나올 때다. 현실적으로 그들이 패배하는 것은 그들이 무언가를 바라기 때문이고, 승리하는 것은 그것을 얻어냈기 때문이다. 결핍이 없는 어떤 공동체를 자꾸 그려내는 것은 일종의 마약과도 같다. 그건 결핍 그 자체가 어떤 감당할 수 없는 전체로써 우리를 위무하기 때문이다.
(2 weeks ago)
사람과의 일중에 아주 미묘해지는 순간이 있다. 아주 작은 변화의 순간이 있다. 주위가 갑자기 조용해져서 뭔가 달려졌지 궁금해하다 문득 도로 위에 차들이 아주 적어진 걸 발견할 때처럼. 마치 눈이 엄청나게 온 날 처럼. 세상이 온통 다 바뀌었는데도 갑자기 줄어둔 소음만이 유난히 마음을 붙잡는 것이다. 작은 표정의 변화, 약간의 침묵, 목소리에 실린 어떤 차분한 느낌. 모든 게 달라졌는데도, 난 그런 작은 변화들에 더 마음이 아프다.
(2 weeks ago)
그 옛날, 아주 어렸을 때, 처음으로 컴퓨터가 집에 들어온 날, 가장 먼저 했던 일중의 하나가 여자사진을 보는 일이었다. 그건 누드는 아니었고, 그저 좀 야한 사진이었는데, 한 장이 다 뜨려면 악간의 시간이 필요했다. 요컨대 위쪽 얼굴에서부터 조금씩 아래쪽으로 화면이 완성되는 식이었다. 이런 걸 보면 프로이트의 범성욕주의라는 개념이 경험적으로 이해된다. 조금씩 내려가는 화면을 보면서 두 손 꽉 쥐고 기다릴 때의 그 흥분이란!!!
(2 weeks ago)
남녀사이의 오해에 대해 난 어쩔수 없다고 생각했다. 오해를 푼다해도, 마음이 돌아온다해도, 이미 거기까지 갔던 길은 지워지지 않는다. 그래서 난 애써 그것을 풀려고 하지 않는다. 이미 무엇도 예전과 같아질 수 없다. 그런데 문득 그녀가 정말 바랐던 것은, 오해를 풀려는 나의 노력이 아니었을까 싶은 생각도 든다. 그녀가 나를 떠났던 건 오해 때문이 아니었다는 생각이 든다.
(2 week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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