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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의재

물고기통신 205 본문

물고기통신

물고기통신 205

물고기군 2011. 3. 1. 00:40

미안하다는 말은 과거에 있지 않다. 그 의미의 대부분은 미래에 있다. 그것은 일종의 약속과 같아서 사과를 받아들인다는 건 그걸 믿는다는 것과 같다. 그래서 때때로 우리의 사과는 거짓말이 되기도 한다. 반대로 거짓사과가 진실이 되기도 한다. 그 진실은 내게 있지 않고 당신에게 있다.
27 Feb

악법도 법이다 라는 말은 아무리 나쁜 법이라해도 법인 이상 지켜야 한다는 뜻이 아니다.소크라테스가 고작 그 정도의 도덕책같은 얘기를 할리는 없다.그 의미는 주어와 술어의 위치를 바꿔야 분명해진다.악법도 법인게 아니라, 법이 모두 악법이다.
6 Feb

'늙은' KBO도 있고 '늙은' 연제협도 있는데 '젊은'선수협과 '젊은'연예인협회는 어디에 있는가? '늙은'관료는 '늙은'로펌의 고문이 되었다가 다시 '늙은'관료가 되는데 '젊은'관료는 그저 늙기만 한다. 이것은 '젊은이'를 위한 나라가 아니다.
26 Jan

물론 이것은 공정한 게임이 아니다. 공정함을 위한 게임이다. 뭐가 공정한지 결정하기 위한 싸움이 어떻게 공정할 수 있겠는가? 공정함이 뭔지 모르는데 말이다.
26 Jan

유혹을 끊는 단 한가지 방법은 유혹에 넘어가는 것이다. 악마에게 영혼을 빼앗기지 않으려면 영혼을 내줘야 한다. 적의 약점은 항상 그렇게 내부에 있다. 내가 그에게 내 자신을 내어줄 때 그는 자기 자신으로부터 분열된다. 내가 된다.
23 Jan

"가장 죄를 많이 지은 사람들이 가장 덜 고통 받고 있다" <유령 주택 30만채… “은행 망하게 둬라”분노> http://bit.ly/b1fu4T
17 Nov

군에 있을 때 행군 중에 고개를 만나면 머리를 숙이고 걸었다. 정상을 보고 걸으면 쉽게 퍼지기 때문이다. 항상 너무 많이 남아있기 때문이다. 목표를 뚜렷히 하고 그것만 바라보는게 항상 좋은게 아니다.
13 Nov

카톨릭교도들은 너무 어리석기 때문에 교황의 무류성을 믿고있다는 자유주의적 비판에 대한 답변 : 적어도 우리는 한명의 개인이 지닌 무류성을 믿는다. 민주주의는 수백만의 사람들이 무류적이라는 훨씬 더 위험한 개념에 의지하고 있지 않은가? -까다로운주체
11 Oct

사실 공산주의의 시대 전체는 정의로운 정치적 결정이 가능하다는 확신이 존재했던 시기였다. 그 시기에 우리는 역사의 의미에 의해 추동되었다... 공산주의의 죽음은 역사의 영역에 나타나는 신의 두 번째 죽음이 된다. -시차적관점中
8 Oct

항상 말하는데 영화 어퓨굿맨에서 잭니콜슨의 명대사는 '너희는 진실을 감당할 수 없다'는 것이다.만일 진실이 누구도 불편하게 하지 않는다면 쉽게 발견되고 전시돼 있는 거라면 그건 진실이 아니다.왜냐하면 그것은 우리 한가운데 있기 때문이다.
8 Oct

도덕적 위기의 시대에 중립의 편에 선 자뿐만 아니라, 상식-진실의 편에 선 자들에게도 지옥의 가장 뜨거운 자리가 준비되어 있지 않을까? 그들이 모르는 건 자신들도 그저 편듦의 형식 속에 있다는 것, 맞은편 사람들도 상식-진실의 편에 서 있으며 어느 편이 진짜인지 중립적 판단을 내려줄 사람들이, 지금 지옥의 가장 뜨거운 자리에 있다는 것.
5 Oct

법과 정의가 일치하리라는 믿음 만큼이나 어리석은것은 없다. 왕따나 학교폭력에 시달리는 학생들이 왜 그걸 주변어른들에게 알리지 않는지 안타까울 때가 있는데 어떤 면에서 그들의 판단이 옳다. 법은 멀고 주먹은 가까운게 아니라 모든 정의는 여하간 여기없는것이다. 그렇다 하더라도 법과 정의가 일치하리라는 믿음을 포기할수도 없다. 단순히 그것을 언젠가는 일치시키리라는 노력을 멈춰선 안된다는 의미가 아니라 그 믿음이 없다면 법도 정의도 없기 때문.그  불일치가 법의 가능조건이면서 정의의 가능조건이기 때문이다.
13 Sep

영화 대부를 보면 이런 표현이 있다. 거부할수 없는 제안. 아시다시피 거부할 수 없는 제안은 제안이 아니다. 그건 명령이다. 하지만 이것이 필요하다. 우리는 그제안을 우리 자신의 선택으로 받아들여야한다. 여기에서 자유가 나온다.
27 Aug

마른남자와 손잡고 걷고있는 뚱뚱한여자는 사랑스럽게 보인다.어쩐지 사랑을 듬뿍 받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반면 저절로 눈이 가는 예쁜여자는 어떤남자와 있어도 그렇게보이지 않는다.그녀에게 사랑은 언제나 충분치 않은 어떤것처럼 보인다.편견일 뿐일테지만.
21 Aug

언론이 계속 거짓을 말하면 사람들은 더이상 언론을 믿지 않을까. 양치기 소년처럼 진실을 말해도 듣지 않게 될까. 속았다는걸 깨닫는 순간은 이전에 거짓이었던 것이 진실이 되는 순간, 늑대가 우리를 잡아먹는 순간. 그때 우리의 믿음은 왜 틀렸을까? 하지만 믿음은 결코 틀리지 않는다. 믿음은 믿지 않는 것과 같기 때문. 늑대가 나타났다는 것은 거기에 늑대가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늑대가 없기 때문에 우리는 늑대에 잡아먹힌다. 믿지 않으면서 우린 그것을 믿는다. 이 믿음의 악순환을 끊고 늑대에게 잡아먹히지 않을 방법이 있을까?
20 Aug


물론 악플러들은 병리적 현상이다. 하지만 희생당하는 한 개인도 역시 병리적이다. 악플러들에서 가장 정상적인 사람, 오직 진실만을 추구하는 사람을 골라내고, 희생당하는 한 개인에서 정상적인 부분, 그 현상의 이면에 존재하는 살과 뼈로 이루어진 진짜 사람을 골라내서 그 두 사람을 화해시킬 수 있을까? 하지만 이것은 언제나 불가능한데, 그 둘이 만나기 위해서는 역시 하나의 정상적인 세계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17 Aug

토이스토리3을 봤다.이것은 주인과 노예의 이야기다. 주인에게 버림받고 스스로 주인이 되려한 랏소가 마지막에 화물차 그릴에 십자가 형태로 매달린 장면은 의미심장하다. 우디는 단 한번도 주인에게 버림받지 않았다. (그가 유대인이기 때문일까?)
주인을 부정한 랏소의 서니사이드는 지옥이었고 바로 이 세계였다. 하지만 그건 그들이 주인을 믿지 못해서가 아니라 여전히 주인(그의 존재)을 믿기 때문이었다. 랏소는 주인의 '선함'을 의심했지만 주인 그 자체를 의심하는데까지 이르지못했다. 그래서 십자가에 매달렸다.
11 Aug

도서관에 가면 책을 공짜로 볼 수 있다. 신간도 그렇다. 심지어 빌리는 것도 공짜다.백년 전부터 그랬다. 지식이란 이런 것이다. 하지만 이제 이것은 굉장히 이상한 일이 되었다.
10 Aug

그것이 언제나 진실이었다. 영광따위는 바랄 수도 없지만 그렇게 목숨을 걸어야 한다. 당신이 목숨을 걸지 않으면 그들도 안다. 눈깜박할 사이에 알아차린다. -노인을위한 나라는없다.
5 Aug

세계에는 이름이 없지. 언덕과 사막의 이름은 오직 지도상에만 존재해. 우리는 길을 잃지 않기 위해 이름을 붙이지. 하지만 우리는 이미 길을 잃었기 때문에 이름을 붙이는 거라네. 세계는 결코 잃을 수 없어. -국경을넘어 '코맥매카시'
18 Ju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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