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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의재

206. 우리가 해야만 하는 일 본문

물고기통신

206. 우리가 해야만 하는 일

물고기군 2015. 12. 7. 17:44

어젯밤 문득 생각난 건데, 어렸을 적 나는 꽤 눈치를 보는 아이였던 것 같습니다. 남들에 비해 더 그랬는지 어쨌는지는 알 수 없죠. 생각해보면, 어렸을 적에는 그런 생각조차 해보지 않는 법입니다. 그러니까 내가 남들에 ‘비해’ 어쩐다 저쩐다 이런 생각말입니다. 왜냐하면 그 시절에는 온통 나에 대한 생각만으로 가득차 있으니까요. 이 말은 거꾸로 세상 모든 사람이 나와 똑같으려니, 나와 똑같이 느끼고 생각하려니 여긴다는 말입니다. 어쨌든 그중에서 기억나는 것 중의 하나는, 아버지의 혀를 차는 소립니다. 정확히 말의 표현대로 ‘혀를 차는’ 소립니다. 쯧쯧 하는 거죠. (웃기게도 이 버릇은 나한테도 있습니다. 나 자신이 그렇게 혀를 찰 때마다, 깜짝 놀라고 또 씁쓸해지기도 합니다.) 그 소리가 그렇게 듣기 싫었었죠. 분명히 뭔가 맘에 들지 않거나 화가 났거나 해서 그런 소리를 내신 거겠죠. 그게 나와 상관없는 일이었을지라도, 들을 때마다 몸이 움찔움찔할 정도로 굉장한 스트레스를 받았습니다. 역시 남들도 어쩐지 저쩐지 모르겠지만, 그런데 이 스트레스의 원인 중 하나는, 그렇게 다른 사람의 눈치를 보는 나 자신이기도 했습니다. 생각해보면 우리에게 스트레스를 주는 많은 일들이 이런 식인지도 모릅니다. 어떤 일들이 우리를 힘들게 하면, 거기에 더해서 그 정도 일로 힘들어하는 나 자신에 대해서도 화가 나는 식이죠. 상처에 상처를 더한다는 표현을 여기에 써도 될까요? 아무튼 그게 너무 싫어서, 항상 ‘눈치를 보지 않는 사람’이 되기를 간절히 바랐던 것 같습니다. 이것은 두 가지 방향으로 나아가야 하는 일이었는데, 하나는 남의 눈치를 보지 않아도 되는 사람, 즉, 그만한 힘이나 권력을 지닌 사람이 되어야 겠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타인에 대한 철처한 무관심입니다. 이런 나의 바람이 이루어졌을까요? 따져보면 꽤 오랫동안 나는 그런 사람으로 살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러니까 꽤 오랫동안 별 눈치 안보고 살아온 것 같습니다. 그래서 어젯밤 문득 그런 생각이 든 거겠죠. 앞서 말한 둘 중에 어떤 방향이 나를 그렇게 만들어주었는지 확정하기는 어렵습니다. 둘 다 일 수도 있고, 그저 운이 좋았다고 말할 수도 있습니다. 정확히 말하면 어렸을 적 아버지처럼 나에게 심대한 영향을 끼칠만한 사람이 주위에 없기도 했고, 또 그런 사람이 생길만하면, 가까이 다가올 것 같으면 전속력으로 도망치며 살아왔던 것 같습니다. 그럴 수 있었다는 것은, 분명 운이 좋았기 때문이겠죠. 결코 내가 능력이 뛰어났기 때문이 아닙니다. 하지만 분명히 그것뿐만은 아닙니다. 적어도 어느정도는 나 자신이 뭔가를 포기하며 살아왔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이를테면 할 수만 있다면, 내가 눈치를 봐야 할 사람을 만들지 않으려고 애써왔습니다. 그것이 비록 나에게 큰 즐거움을 주는 일이라해도, 흔히 말하는 것처럼, 큰 힘에는 큰 책임이 따른다는 말처럼, 사람에게 얻는 즐거움은 또 그만큼 그 사람의 눈치를 봐야 하는 일이기도 하니까, 그런 사람을 만들지 않으려고 애써왔다는 것입니다. 개입하지 않겠다. 신경쓰지 않겠다. 이것이 나의 모토였다는 생각도 드네요. 하지만 말할 것도 없이 그것은 정말 잘못된 행동이었습니다. 그것은 거의 아무것도 증명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그저 내가, 전형적인 나르시스적 주체였다는 것뿐입니다. 이것은 분명히 말할 수 있는데, 그것은 그저 내가 남들과 전혀 다르지 않은, 아주 이기적인 인간이었다는 것을 증명할 뿐입니다. 그것이 잘못된 행동이었다는 것은, 아무도 그런 식으로 살 수 없다든지, 또는 그렇게 사는 것의 결과가 결국 불행이 될 거라는데 있지 않습니다. 그렇게 살면 주위에 아무도 남지 않을 거라든지, 결국 고독사할 거라는데 있지 않습니다. 물론 이것은 사실입니다. 우리는 그렇게 살 수 없을 뿐더러, 그렇게 살아봤자 끝은 뻔합니다. 일견 모순되게 보이는 이 두 가지는 이렇게 해석할 수 있습니다. 그렇게 사는 것에 항상 실패하기 때문에 우리는 불행해지는 것입니다. (이것은 또한 그것이 실패해도 실패고, 성공해도 실패라는 겁니다.) 하지만 이것은 중요한 사실이 아니죠. 이것은 지극히 개인적인 문제에 불과합니다. 그것이 잘못된 행동이었다는 것은, 그것이 결국 남에게 피해를 끼치는 행위라는 데 있습니다. 그러니까 나는 결국 아무것도 포기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나름 어떤 즐거움을 포기하면, 그만큼 불행이나 고통도 줄어든다고 생각했지만, 사실은 그렇지가 않았던 거죠. 그렇게 되지가 않습니다. 우리는 즐거움을 포기할 수 없고, 포기한 적도 없고, 또 포기해봤자, 타인 또한 불행하게 만들 뿐입니다. 반복되는 얘기지만, 그렇게 살 수 없고, 그렇게 되지도 않는다면, 대체 어떡하란 말일까요? 마치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다는 말처럼 느껴집니다. 그리고 이것도 사실입니다. 정말로 우리는 거의 아무것도 할 수가 없습니다. (하지만 이것이 우리의 마음을 편하게 해줄까요? 아무것도 할 수 없기 때문에,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될까요?)

하지만 정말로 어려운 것은, 바로 그 사실을 받아들이는 겁니다. 그리고 이게 어젯밤, 그리고 다음날인, 바로 지금 내가 내린 결론입니다. 그게 우리가 할 수 있는, 또 해야만 하는 전부인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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