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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의재
오늘도 날씨가 참 좋습니다. 지금 저는 마루로 나와, 커다란 창을 앞에 두고 이 글을 적고 있습니다. 창문을 아주 조금 열었습니다. 창밖으로는 낮은 빌딩들과, 옥상의 안테나, 노란 급수통 등이 보입니다. 안테나들은 마치 살을 발라낸 생선가시처럼 보입니다만, 이건 진부한 비유라고 생각합니다. 진부하지만, 정말 그렇게 보입니다. 또 어떻게 보이냐면, 새로 개발된 미사일처럼도 보입니다. 긴 세로줄에 엇갈리듯 좌우로 뻗은 가로줄들이 마치 목표물을 정확하게 찾아내기 위한 첨단 센서거나, 적에게 더 큰 타격을 입히기 위해 목표물 가까이에서 순식간에 좌우로 분리되어 터지는 소형 미사일들 같습니다. 그러나 이것도 진부한 비유입니다. 안테나는 그냥 안테나인 겁니다. 잔에 담긴 커피는 아직 따뜻합니다. 그런데도 오늘은 기..
이번 작품은, ‘두 개의 문장’에서 시작했습니다. 첫 번째는, ‘신호대기에 걸렸다.’였고, 다른 하나는 작품의 후반부에 있습니다. 아주 오래 전부터 ‘신호대기에 걸렸다.’라는 문장이 제 머리에 맴돌았고, 그렇게 시작하는 소설을 써보고 싶었습니다. 그러다 얼마 전, 다른 하나의 문장이 떠올랐습니다. 그래서 화면에 ‘신호대기에 걸렸다.’를 쓰고, 새로 떠오른 문장은 그 밑에 써놓고, 엔터키를 눌러 화면 밑으로 내렸습니다. 과연 내가 그 두 번째 문장을 포함하는 이야기를 쓸 수 있을까, 일종의 시험 같은 기분으로 문장들을 써나가서, 결국 그 문장을 포함하는 소설을 완성했습니다. 굉장히 근사한 경험이었습니다. 분명 또, 연애얘기냐, 지겨워하실 분들이 있으리라 예상하지만, 제 딴에는, 나름대로 ‘스타일리쉬’한 작..
당신이 진실을 말할 수 있는 사람이라면, 말을 더듬는 것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 누구라도 당신에게 능숙하게 말하는 법을 가르칠 수 있고, 사람들 앞에서 당당하게 말할 수 있는 자신감을 심어줄 수 있지만, 누구도 당신이 진정으로 말하고 싶고, 말해야만 하는 것을 가르쳐줄 수는 없다. 자신이 잘 쓸 수 있는가를 의심하지 말고, 뭘 쓸 수 있는가를 고민해야 한다. 그리고 뭘 쓰고 싶고, 뭘 써야만 하는지 먼저 깨달아야 한다. - ‘믿거나 말거나 물고기 글짓기 교실’
문장을 쓴다는 게 아무 것도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 비로소 문장을 쓸 수 있다는 말에 대해서, 예전에 저는 과연 그럴 수도 있겠구나 정도로밖에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문장에 대한 그러한 태도가, 어쩌면 지금까지와는 다른 느낌을 줄 수도 있겠구나 싶었던 겁니다. 마치 산다는 게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 더 잘 살 수 있다는 식처럼 말이죠. 그러나 물론, 선뜻 그러한 입장을 취할 수는 없는 노릇입니다. 그것이 삶이든 문장이든, 때로는 자신의 모든 것을 내걸어야만, 획득할 수 있는 '무언가'를 포함하고 있는 것처럼 생각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지금, 나는 그 말을 조금 더 많이 이해할 수 있게 된 듯한 느낌이 듭니다. 과연 저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만, 문장을 쓴다는 ..
기뻐하십시오. 이 날이 오고야 말았습니다. 방금 전 체중계에 올라가서, 저는 보았습니다. 드디어 60킬로 대에 접어들었습니다. 69.6, 정확히 말해서 69.6 킬로였습니다. 부끄러운 과거 얘기였지만 - 하긴 굳이 부끄러울 것도 없죠 - 제가 대학교 1학년 군대신검을 받을 때 정확히 80킬로였습니다. 그러나 정작 군에 입대할 때는 그보다 더 살이 쪘기 때문에 분명 더 나갔을 겁니다. 제대할 쯤에는 물론 살이 빠졌더랬습니다. 그래도 제 인생에 지금껏 60킬로 대였던 적은, 제 키가 지금보다 더 작았을 적 밖에 없다고 장담합니다. 거울에 비쳐보니 어렴풋하나마 배에 왕(王)자의 형태가 보입니다. 마치 폭정에 시달려온 민초들처럼, 오랫동안 살 속에 묻혀 있었던 제 배의 근육이 길고 어두웠던 인고의 세월을 이겨내..
새소설을 올렸습니다. 작품을 쓰기 시작하고 작품이 완성된 건, 그저께 아침이었습니다. 새벽 다섯 시에 역시 잠이 오지 않아, 엎드려서 끼적대다가, 문득 벌떡 일어나 그대로 써나가기 시작해서 아침 열한 시에 끝을 냈습니다. 한 여섯 시간 걸렸군요. 거의 수정을 하지 않았습니다. 이번 소설은 구상을 꽤 오래전부터 해두었던 거라, 소설을 시작하면서 부담감을 안고 있었습니다. 역시나 쓰는 과정에서, 구상한 대로 끌고 가야 한다는 압박감이, 또 구상한 것이 있으니까 하는 안일함이, 집중력을 떨어뜨린 게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듭니다. 쓰고 나서, 두 가지를 저 자신에게 물어보았습니다. ‘솔직하게, 충분히 말했는가?’ ‘멋을 부리려고 하지 않았는가?(누군가를 흉내 내려 하지 않았는가?)’ 어느 쪽에도 확신은 없습니다...
며칠 전부터 손톱을 깎아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손톱을 깎아야겠다는 생각은, 분명히 손톱을 깎고 나면 더 이상 하지 않겠지요. 그렇습니다. 저는 아직 손톱을 깎지 않았습니다. 지금 이렇게 컴퓨터의 자판을 치면서, 그 긴 손톱이 자꾸 신경을 거스릅니다. 정말 손톱을 깎아야겠습니다. 열심히 살아야겠습니다.
타인을 비난하는 것은 참 쉬운 일이지만, 또 그만큼 어려운 일이라는 것을 새삼 깨달았습니다. 비난의 쉬움은, 그 비난의 감정이 마음의 얕은 곳에 있기 때문에 별 다른 노력 없이 쉽게 끄집어 올릴 수 있다는 데에 있고, 어려움은 그 비난이 아무런 가치가 없다는 데에 있습니다. 그러니까 누군가를 비난하고자 할 때, 거기에 노력을 기울여 힘을 쏟으려 할 때마다, 과연 그것이 그만한 가치가 있는가, 그렇게 해서 비난하는 자신이나, 그 비난의 상대에게 무슨 도움이 될 것인가를 생각해본다면, 거기에는 온전한 소모 밖에 없다는 깨달음을 누구라도 얻을 수 있습니다. 비난은 아무것도 생산할 수 없습니다. 마음의 얕은 곳에 있는 감정을 취하는 사람은, 결국 그 마음이 얕아지고, 깊은 곳으로 들어갈 수 없게 됩니다. ‘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