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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의재
소설란에, 제가 고등학교 2학년 때 썼던 소설 '여분의 죄'를 올렸습니다. 왜 갑자기 올리느냐, 라고 묻는다면 할 말이 없습니다. 올리지 않은 게, 순전한 실수니까요. 맞춤법을 엄청나게 틀렸더군요. 하여간, 갑자기 그 시절이 그리워집니다. 지금껏 이 소설을 읽은 사람은, 고등학교 시절의 단짝 친구 한 놈뿐입니다.
요즘 들어 내가 음악을 할 줄 아는 인간이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생각합니다. 어째서 어머니는 내가 어렸을 때 그 흔한 피아노학원 한 번 안 보내주셨을까? (미술학원, 속셈학원 어떤 데도 저는 다니지 않았습니다.) 물론 원망이 아니라, 다분히 궁금해지는 대목일 뿐입니다. 그래서 어린 시절의 제게 유일한 시간 보내기는 장난감을 가지고 혼자 여러 목소리를 내며 방안에서 놀거나, 집 이곳 저곳에 널려 있는 아무 책이나 뽑아서 읽는 것이었습니다. 물론 오후가 되면 티브이를 끼고 살았습니다. 그렇다고 제가 대단한 음악가가 되기를 바라는 것은 아닙니다. 음악을 했다해도 저는 역시 남의 눈에 띄는 존재가 되지 못했을 겁니다. 제가 바라는 건 단순히 음악을 만들 줄 아는 인간이었으면 하는 것입니다. 멜로디를 만들고 화음..
누군가를 경멸하고 싫어하는 것은 정말로 쉬운 일입니다. 적어도 누군가를 좋아하는 것에 비하면 백만배 천만배 쉬운 일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누군가를 경멸하고 싫어하는 것으로부터는 아무것도 배울 수 없습니다. 거기에는 아무것도 없습니다. 거기에는 결코 회복할 수 없는 인생의 소모밖에 없습니다. 마음이 한없이 어두워집니다. '마음이 어두운 사람은 어두운 꿈밖에 꾸지 못합니다. 더 마음이 어두운 사람은 꿈조차 꾸지 못합니다.'
기억을 더듬어보니, 나도 문장을 두려워했던 시절이 있었다. 그 때 내 두려움은 이런 것이었다. 좋은 문장이란, 진짜 소설이란, 문학이란 나 같은 인간이 할 수 있는 게 아닐지 모른다. 태어나면서부터 이미 선택된 인간이거나, 훨씬 이전부터 꾸준한 숙련을 통해 문장을 다듬은 인간만이 쓸 수 있는 거라고 생각했다. 한마디로 그런 인간들에 비하면, 내 문장은 쓰레기처럼 여겨졌다. 쨉이 안됐다. 이미 나는 늦었거나, 처음부터 시작하면 안되었다. 나는 단지 까불고 있을 뿐이었다. 완벽한 두려움이 나를 꽉 붙잡았다. 대학교 4학년 여름의 일이었다. 두려움을 이겨낸 것은 아니다. 두려움은 아직도 내 안에 있다. 단지 그것이 내 안에 있다는 것을 잊어버린 것뿐이다. 언젠가는 다시 한번 그 두려움이 나를 붙잡으리라는 것을..
소설 '톨게이트' 을 올렸습니다. 개인적인 사정도 있고, 이전부터 한번 간결하게 줄이면 어떤 느낌이 날까 궁금하기도 해서, 약 40매 정도를 다이어트해서 103매로 만들었습니다. 원래는 90매 정도를 목표로 했지만, 아직 그럴 정도의 능력이 되지 않는 것 같습니다. 전혀 새로운 작품을 쓴다는 기분으로 작업을 했고, 이제 마쳤는데, 그다지 달라진 점 없는 같기도 하네요.
가끔 이유 없이 화가 날 때가 있습니다. 이유가 있긴 한데, 그것이 과연 그렇게 화를 낼 만한 이유인가 라는 점에서 이유가 없습니다. 예전에는, 그다지 긴 시간은 아니더라도 진지하게, '진짜'이유가 뭘까 고민하기도 했었습니다. 원래 그런 걸 좋아합니다. 내 자신의 행위나, 의식을 대상으로 소위 분석을 해보는 것이지요. 그러나 최근에는, 그저 나이가 들수록 점점 편협해지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날카로움은 무뎌지고, 편협함만 늘어갑니다. 좀 더 젊었을 시절에도, 뭔가를 강경하게 밀고 나가는 성격이 아니었지만, 나이가 들수록, 편협함은 늘어가는데, 또 그것을 소리 높여 주장하는 것은 줄어듭니다. 아주 고약한 놈이 되어버렸습니다. 이런 고약한 성질은, 결과적으로, '상관없다'의 입장을 낳습니다. 너는 그렇구나, ..
이제 정말 날이 추워져서 목도리나 장갑을 챙겨야 할 때가 된 것 같습니다. 낮에 언제나처럼 배달을 갔다 와서 저녁때까지 책상 앞에 앉아 뭔가를 써보려고 했습니다만, 잘 되지 않았습니다. 저녁에는 티브이를 통해 프로 농구와 '미스 플라워'라는 영화를 번갈아 보았습니다. 농구는 제가 싫어하는 팀이 이겼고, 영화는 뭐가 뭔지 잘 모르는 채로, 주인공 여자를 클로즈업하는 것으로 끝이 났습니다. 여자 주인공의 얼굴이 참 맑다 라는 생각을 내내 하고 있었더랬습니다. 열 시가 넘어서 다시 밖으로 나왔고, 어슬렁 어슬렁 슈퍼까지 걸어가서 담배를 한 보루 사왔습니다. 그 동안 소홀했던 '가계부'도 기억을 더듬어가며 대충 채워 넣고(잔고가 12만원 정도 남았습니다.), '김윤아 1집', '어떤날 2집' 전부를 소리바다에서..
'고통'을 아는 것과, 그것을 느낀다는 것은 전혀 다른 것입니다. 가령, 고통의 기억과, 또는 앞으로 다가올 고통에 대한 두려움과, 고통 그 자체는 전혀 다른 것입니다. 그 세가지는 전혀 다릅니다. 그렇게 해서, 고통의 실체는 우리가 그것을 파악하려고 하면 할수록 자신을 감춥니다. 그렇다고 해서, 고통이란 것이, 항상 우리가 그 고통의 와중에 있을 때만 그 실체를 만질 수 있다는 것은 아닙니다. 거기에 실체 따위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거기에는 그저 고통스럽다는 상황만이 존재할 뿐입니다. 그 상황 속에서는 어떤 것도 구별되지 않습니다. 고통의 기억과, 고통의 두려움과 고통 그 자체, 그리고 자기 자신이 한데 엉켜서 서로가 서로를 물어뜯고 집어삼킵니다. 혼돈입니다. 구역질이 납니다. 아마, 카뮈라면 그 고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