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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의재
예전에 나는, 내 성격이 '이것' 아니면 '저것', 혹은 '모' 아니면 '도'인 줄 알았다. '전부'가 아니면 '아무것도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제 내 삶을 돌이켜보고, 현재의 내 자신을 바라볼 때, 이러한 결론을 받아들여야겠다. 나는, 언제나 '아무것도 아니었다'. 단 한번도, 나는 나 자신외에 아무것도 아니었고, 나 자신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요즘 내가 빠순이가 됐다. 누군가의 말을 빌면, 사이비 '빠순이'에 불과하지만, 게다가 '빠순이'가 '오빠순이'의 준말이라면, 나는 '동생돌이', 즉, '생돌이'가 정확한 표현일테지만. 어쨌거나. 그 대상은 '이가희'. 그녀가 나왔다는 라디오 프로그램을 인터넷으로 찾아 들었다. 그것도 한 번이 아니라 두 번이나! 매일 같이 그녀의 홈페이지에 들어간다. 그녀와 관련된 글이라면 빼놓지 않고 읽는다. 어서 빨리 그녀가 티브이에 나왔으면 좋겠다. 어서 빨리 그녀가 가요 순위 프로그램에서 1위 먹기를 바란다. 비록 지금은 mp3 다운받아 cd로 구워서 듣고 있지만, 진정한 '빠순이'가 되기 위해 내일은 정식음반 시디를 구입할 예정. "그 누가 뭐라고 말을 해도 가햐는 내게 머라이어~" +) 진정한 빠순이의 길은 ..
한밤중에 담배가 떨어져 본 사람은 알 거야. 그 시간에 담배를 사려면, 조금 멀다 싶은 편의점까지 걸어나가야 하고, 무엇보다 옷을 챙겨입고 나가기가 귀찮은 거야. 그런 때는 꼭 이렇게 생각하지. 다음 번에는 꼭 예비로 담배 한 갑 정도는 책상에 챙겨둬야지 하고. 실제로 소위 예비 담배라는 걸 챙겨두었던 적도 있었는데, 글쎄, 그게 과연 담배가 떨어졌을 때를 대비하는 올바른 방법이었는지 회의적이란 말이야. (그래서 담배가 떨어졌을 때, 아 나한테는 예비 담배가 있다 하고 흐뭇해 한 기억이 없으니까) 우리가 미래를 대비해서 무언가를 챙겨 두는 게 가능한 일일까 하고 말이야. 어떻게 생각해?
다시 게을러졌다. 술먹자.
나는 종종 다른 사람의 무엇으로 내 자신을 규정하면서 힘을 얻곤 한다. 그러나 그것은 아무 의미도 없는 것으로, 왜냐하면 '그의 무엇'이란 결코 내 자신의 규정이 될 수 없기 때문이다. '그'가 취하고 있는 것은 언제나 '내'가 아니라 '나의 무엇'이다. 즉, 거짓이다.
실제로 무슨 일이 일어났는가는 중요하지 않다. 그게 무슨 일이었는지 처음부터 몰랐고, 그리고 지금까지도 알 수 없다. 하지만 나는 '그 일'에 대해 이렇게 생각하기로 한다. 나는 '그 일'을 이용해서 현재의 나를 구제하고자 한다.
청소를 했다. 쓰레기통을 비우고, 안쪽에 달라붙어 있던 곰팡이를 비누를 묻혀 깨끗이 닦아냈다. 재떨이도 물로 씻어냈다. 걸레로 바닥의 먼지를 훔쳤다. 침대 시트도 걷어서, 옥상에 올라가 먼지를 털었다. 일찌감치 서둘러서, 햇볕이 있을 때 일광도 시킬 걸 그랬다는 생각이 든다. 방안이 아주 깨끗해졌다. 정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