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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의재

물고기통신 17 본문

물고기통신

물고기통신 17

물고기군 2001. 12. 5. 23:56
'고통'을 아는 것과, 그것을 느낀다는 것은 전혀 다른 것입니다. 가령, 고통의 기억과, 또는 앞으로 다가올 고통에 대한 두려움과, 고통 그 자체는 전혀 다른 것입니다. 그 세가지는 전혀 다릅니다. 그렇게 해서, 고통의 실체는 우리가 그것을 파악하려고 하면 할수록 자신을 감춥니다. 그렇다고 해서, 고통이란 것이, 항상 우리가 그 고통의 와중에 있을 때만 그 실체를 만질 수 있다는 것은 아닙니다. 거기에 실체 따위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거기에는 그저 고통스럽다는 상황만이 존재할 뿐입니다. 그 상황 속에서는 어떤 것도 구별되지 않습니다. 고통의 기억과, 고통의 두려움과 고통 그 자체, 그리고 자기 자신이 한데 엉켜서 서로가 서로를 물어뜯고 집어삼킵니다. 혼돈입니다. 구역질이 납니다. 아마, 카뮈라면 그 고통에 대해서 좀 더 멋들어진 표현을 했을지도 모릅니다. '이방인'이나 '페스트', 뭐 이런 소설에서 말입니다. 그러나 저로서는, 그저 비명을 지를 뿐입니다. 약 열 시간에 걸친 고통의 댓가로 어머니의 손에 이끌려 응급실에 갔다 왔습니다. 그렇습니다. 고통은 결코 호락호락하지 않습니다. 결코 얕잡아 봐서는 안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놀랍게도, 약 이틀이 지난 지금, 또 저는 그 고통을 잊어버렸습니다. 그 잊어버림이 나를 위한 것인지, 아니면 이 세상을 위한 건지 모르겠지만, 아무리 기억하려 해도 그 고통의 실체 따위는 알 수 없게 되어버렸습니다. 남은 건 고통의 기억과 막연한 두려움과, 그리고 언제나처럼 보잘 것 없는 '나'뿐입니다. '나' 말입니다. 거울을 들여다보면, 거기 보이는 얼굴 말입니다. 그 눈동자는 여전히 겁에 질려 있는 것 같기도 하고, 또 아무 것도 모르겠다는 듯 장난스럽기도 합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런 경우에 가장 적당한 말맺음은, "이것이 인생이다."라는 것뿐입니다.

그건 그렇고, 어디서도 '톨게이트'를 읽고 '가슴이 씻겨내리는 듯한 감동'을 느꼈다는 감상은 들리지 않는군요. 역시, 세상은 호락호락하지 않은 겁니다. 정신차리고 열심히 소설이나 써야 겠습니다. 착하고, 성실하게, 절대 까불지 말고, 계속 살아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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