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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의재
고백하자면, 내가 좋아하는 음료중의 하나가 '식혜'다. 음료란 것이, 목이 말라서 마시고 싶다는 욕구가 생긴다해도, 굳이 어떤 음료를 마시고 싶다는 생각까지 곧바로 이어지는 게 아니므로, 구멍가게나 편의점 또는 음료 자판기 앞에서는 망설이기 마련이다. 적어도 나의 경우는 그렇다. 통계를 내본 적은 없지만, 당장 이 자리에서 순위를 매겨보자면, 콜라, 파워에이드, 마운틴 듀, 실론 티 등등을 망설임 뒤에 선택하곤 했는데 (최근에는 '이프로'나 '니어워터'도 꽤 맛있다), 이상하게도 '식혜'만은, 음료를 마시고 싶다가 아니라, 곧장 '식혜'를 마시고 싶다로 연결된다. 논리적으로 따져 본다면, '식혜'는 어떤 음료와도 틀리기 때문인 것 같다. 탄산음료도, 과즙음료도 아니라는 것이다. 내가 처음 캔으로 나온 '..
가끔 단 한 장의 풍경으로만 떠오르는 기억이 있다. 전후 문맥 같은 건 없다. 학교에선 방학식이 있었다. 운동장에 행과 열을 맞춰선 아이들, 터무니없게 쩌렁쩌렁 울리는 단상의 마이크 소리를 들으며, 나는 학교 건물 위 흐린 겨울하늘을 바라본다. 교장선생님의 훈시가 끝나고, 언제나처럼 왼쪽 끝 열, 1반부터 차례로 건물로 들어간다. 그렇게 순서를 정해놓아도 항상 건물 입구는 먼저 들어가려는 조급한 아이들로 이리저리 밀리곤 했다. 건물은 낡아서 습습한 시멘트 냄새가 났다. 담임 선생님이 이런저런 공지사항들 - 방학숙제, 예비소집일, 비상연락망에 대해 얘기하는 동안, 옆 반은 이미 끝났는지 복도가 시끄럽다. 가방에는 금방 받은 가정통신문과 탐구생활이 들어 있다. 교문 밖을 나서 친구들끼리 어깨를 맞대고 함께 ..
돌아왔다. 다시 고등학생이 된 기분이다. 고등학교 시절, 나는 말없는 아이였다. 아니, 원래 나는 말 없는 아이였다. 때로 내 자신의 말없음을 싫어했던, 아이였다. 답사내내, 나는 후배들과 대화를 나누지 않았다. 그들은, 나와 전혀 다른 사람이었고, 우리는 서로 대화를 나눌만한 아무런 공통의 화제도 가지고 있지 않았다. 게다가, 더욱 중요한 건, 앞으로도 영원히 그들과 나는 전혀 다른 세계에서 전혀 다른 삶을 살아갈 거라는 사실이다. 하지만, 또 한편으로 나는 그들과 대화를 나누고 싶었나 보다. 답사 마지막 날, 안주도 없이 소주를 반 병 정도 마시고, 숙소를 돌아다니며, 무슨 말이라도 나눌만한 사람을 찾아 다녔다. 새벽이 희부윰하게 밝아올 때쯤, 결국 누구의 이름도 기억하지 못할 정도로 취해서, 방 한..
이 시간에 글을 쓴 적은 거의 없다. 소설이든, 뭐든. 아주 예전에, 내가 군에 들어가기전, 그러니까 그건 1995년 1월 경이었다, 낮에 소설을 썼던 적이 있다. 무슨 이유인지, 형이 방이 비었고, 나는 마루에 있던 컴퓨터를 형의 방으로 옮겼다. 왜 형방이 비었을까? 1995년에 우리 가족들은, 뭘 하고 있었을까? 한심하게도 잘 기억나지 않는다. 형방에는 한강을 향한 커다란 창이 있었다. 바로 강에 면해 있었기 때문에, 탁 트인 강변을 볼 수 있다는 점이 좋았지만, 더 좋았던 건 강변도로의 자동차 소리를 들을 수 있다는 것이었다. 물론, 그건 소음일 뿐으로, 나중에는 방음벽이 설치될 정도였지만, 밤에 방의 불을 끄고 천장을 가로지르는 자동차 불빛도 좋았고, 그 소리도 좋았다. 생각해보면 외롭기 때문이 ..
그 뿐이다. 아무리 노력해도 잠이 오지 않아서, 그래서, 새단장을 했다. 그 뿐이다. 앞으로 계속 이곳을 돌보게 될지, 어떨지 나도 잘 모르겠다. 또, 문득, 다른 색깔이 보고 싶으면, 어쩌면. [단상들]에는, 이전의 내 '짧은 글'들을 모두 옮겨올 생각이다. 그리고, 꾸준히 '단상들'을 일기처럼 적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 내가 지금 뭘 하고 있는 건지. 누구에게 말하고 있는 건지.
어떻게 살아야 하나, 나는 아직 모르는데 남들에게 아는 척 한다.
문학을 얘기하는 모든 술자리가 즐겁지 않다는 것을 깨달았다. 때로 들녘의 뒷풀이 자리에서 어김없이, 개인적인 의견으로 어떤 부당한 필연으로 문학 이야기가 나올 때마다, 이제는 좀 지겹다는 생각을 했더랬다. 하지만 만일 모든 가치가, 차이에 의해서 규정된다면 들녘 뒷풀이의 문학 얘기는 좋다. 문학에 대해, 큰 목소리로 때로 어떤 치열함으로 떠드는 것에 대해 점점 거부반응이 일고 있다. 기억을 더듬어보면, 그건 또 내 자신의 모습이었는데, 자꾸만 허위 같다. 이를테면, 그건 '담론의 효과'가 아니었을까 생각해 본다. 요즘의 나는, 정말 활동적이다. 월요일 들녘 세미나, 수요일 석사 1기 세미나, 금요일 희곡팀 세미나. 이럴 수가. 그 탓인지 모른다. 사람들에 둘러 싸여 있는 자리가 버겁다. 사람들과 대화를 ..
새벽까지 이어지는 술자리에서 나는 가끔 어느 한 순간, 내가 왜 이곳에 있는지 아직까지 이곳에 왜 남아 있는지 궁금해한다. 분명 그 전에, 어떤 순간, 즉 막차가 끊기기 십 분 전쯤 나는 습관처럼 망설이고 습관처럼 선택을 한다. 선택이란, 우리가 미래를 예측하는 것으로 근거를 삼는다. 자, 생각해봐. 너는 이것을 선택할 수 있고, 또 저것을 선택할 수 있다. 어느 편이든, 두 가지 선택은 두 가지 다른 미래를 너에게 선사하는 것이다. 그렇게 해서, 나는 밤을 새우고, 아주 짧은 순간이지만, 내가 선택하지 않은 선택, 내가 배제하고 버린 미래를, 애도한다. 그리고 삶은 계속된다. 아직 스물 살도 되지 않은 후배가 나를 두고 말했다. 선배는 '완벽한 사랑'만 했을 것 같아요. 분명 후배가 말한 '완벽한'이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