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록단상 (233)
시간의재
지금 내가 살고 있는 집은 아니지만, 예전에 살던 집은 워낙 낡은 탓인지, 상상하기 어려울 정도로 많은 바퀴벌레들이 살았다. 당시의 바퀴벌레란, 여름이면 꼬이는 파리나 모기 같은 것과 같아서, 방 안을 왔다 갔다하다 우지찍 뭔가 밟히면, 에이 또 바퀴벌레를 밟았네 넘어갈 정도 였다. 가장 진풍경은, 새벽에 물이라도 한 잔 마시려고 부엌에 들어가 불을 켜면, 싱크대에 옹기종기 모여있던 수많은 바퀴벌레들이 흠칫 놀라며 잠시간 상황을 잘 파악하지 못하고 그대로 멈춰 있다가 - 아니면, 그대로 멈춰 있으면 자신들을 발견하지 못할 거라는 닭같은 어리석음 때문인지 몰라도 - 내가 몇 발짝 다가서며 사사삭 흩어지던 모습이다. 바퀴벌레의 가족체계에 대해 상세히 아는 바가 없지만, 묘하게도 마치 소풍을 나온 가족들처럼 ..
오늘은, 정말 맥주를 마시고 싶었다. 날이 맑는 날에는 맥주가 마시고 싶은 걸까? 아니, 다른 이유가 있었을지도 모르지. 그래도, 모든 걸 날씨 탓이라고 돌리고 싶다. (이 구절을 어디선가 읽은 기억이 나는데) 또 깜박 언수형에 속아서, 아니 붙잡여서 함께 맥주집을 가게 되었고, 그곳에서 좀 '심각한' 얘기를 들었다. 좀 심각한 얘기여서, 난 좀 심각해여 했지만, 다만 좀 기분이 나빴을 뿐이다. 나는 언수형에게 이렇게 말했다. '그건 그들의 문제야.' 그건 그들의 문제다, 라는 건 내 인생의 모토였다. 누군가에게 화를 내고 싶었는데, 생각해보니 내가 화를 낼 만한 누군가가 없었고, 당연한 귀결처럼 나는 외로웠졌다. 나는, 자주 사소한 일에 외로워지고, 사소한 일에 부끄러워진다. 하지만 그만큼, 사소한 일..
며칠 동안, 끙끙대다가 오늘에야 겨우 올린다. 올리고 나서, 다시 읽어보니 '문장'조차 되지 않는 문장이 허다하다. 두려운 일이다. 슬럼프일까? 문장이 써지지 않는다. 그러나 올릴 수 밖에 없고, 올려야 했던 건, 그것이 '마감'이기 때문이다. 문장이 써지지 않는다고, 문장을 쓰지 않을 수 없다. 문장이 안 써질수록 문장을 써야 한다. 붓뚜겁을 덮어놓는 식의 짓은 해서 안된다. '렌즈'에 대한 소설평, 제목은 '문'의 비밀. 착각해서 안된다. 이 '문'은 '문'이 아니다. 1학년들, 왜 인트로 안 올리냐? (이제야 당당하게 말할 수 있게 되었군)
오랫동안, 또 문장을 쓰지 않았다. 4월도 반이 지났다. 살아나간다는 건, 내가 결정할 수 있는 일들이 점점 줄어든다는 것이다. 아니, 틀렸다. 내가 결정할 수 있는 일들이 그다지 많지 않다는 걸, 알아가는 것이다. 군 생활 3년 동안, 나는 고통이 개량화될 수 있음을 알았다. 개량화된 고통이, 더 이상 고통이 아닌 것처럼, 개량화된 삶은, 더 이상 살아있음이 아닐지도 모른다. 원본을 카피해서 부분수정을 가해 완성시키는 수정본처럼, 일상은 대량 복사가 가능하다. 복사하기 붙이기. 복사하기 붙이기. 모든 유기체는, 비유기적인 것을 꿈꾼다. 가령 죽음 같은 것.
나는, 가끔 행복하다. 아마 '가끔'이란 부사는 '행복하다'는 동사, 또는 형용사에게 필수적인 요소라는 걸 인정해야겠다. 그러나, 지금 얘기하고 싶은 것은 그런 게 아니다. 내가 말하고 싶은 건, 설명하고 싶은 건, '행복하다'라는 것이다. '보드리야르'는 이렇게 말한다. '이 세상의 감옥은, 기실 이 세상이 감옥이라는 사실을 숨기기 위한 상징 또는 장치이다'라고. 이런 말을 들으면, 또는 읽으면 나는 행복하다. 행복하기 때문에, 때론, 거의 이런 경우는 없지만, 가끔 내가 세상을 살아가는 데, 이유가 생긴다. 잘하면, 나는 오래 세상을 살 것 같다. 잘못하면, 아마 대개는 잘못하겠지만, 나는 일찍 죽을 것이다. 이것은 일종의 선언, 슬로건이다. 나는 '지옥'을 믿는다. 그것의 현재성을 믿는다. 내게 필..
어쩐 일인지 최근에 두 번이나 '우는 여자'를 보았다. 둘 다 집으로 가는 전철에서 였는데, 첫 번째는 늦은 밤 막차에서였다. 난 전철을 타면 항상 문 곁의 의자등받이에 기대어 선다. 여자는 맞은편에 있었다. 전화를 걸고 있었고, 듣기만 했다. 전화를 끊고 몇 분 뒤, 여자는 자신도 모르는 채로 눈물을 흘렸다. 적어도 내겐 그렇게 보였다. 볼을 타고 흐르는 눈물을 느낀 뒤에야, 자신이 울고 있다는 걸 깨달은 것처럼 말이다. 두 번째는 며칠 전이었는데, 전철 안이 아니라 전철을 기다리는 역에서였다. 바지 주머니에 양손을 찔러 넣고, 내릴 역에서 바로 계단으로 이어지는 위치를 가늠하면서 성큼성큼 걷는데, 문득 눈물을 흘리는 여자를 보았다. 오래 울어서 눈은 퉁퉁 불어 있었고, 얼굴을 붉고, 번지르르 했다. ..
왕십리 역, 열차를 기다리며 철길너머로 분홍색 수건을 목에 두른 초로의 인부 하나, 환한 오후를 가로지르는 풍경. 길 따라 꽃들 바래어 가고, 나는 갑자기 궁금해진다. 저 풍경, 어디서 봤지, 어디서 봤더라. 묻다가, 걸음 그다지 빠르지 않은데 점점 멀어지는 저 풍경, 어디서 다시 볼 것인가. 어디서, 다시 너를, 볼 수 있을 것인가. 나는 몹시 궁금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