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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의재
화요일, 이번 학기 내내 내게 화요일은 공휴일이었다. 수업도 근무도 없다. 이번 학기 내내 화요일마다, 아침에 일찍 일어나 학교 도서관에 자리를 잡으리라 맘먹어더랬다. 내게 몇 번의 화요일이 있었는지... 한번도 학교 도서관에 자리를 잡아 본 적이 없다. 월요일 저녁마다 술자리가 있었던 탓도 있었지만, 일찍 집으로 돌아온 날에도 다음날에는, 화요일에는 어김없이 늦게 잠에서 깨어났다. 일단 하나를 포기하면, 전부 다 포기하게 된다. 악마와 거래를 시작하면, 다 잃든, 다 얻든, 둘 중의 하나일 뿐이다. 대개 다 잃고 말지만. 그래서, 늦게 일어난 날에는 하루종일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약속도 없고, 전화도 없고, 해야 할 일은 언제나 산더미 같지만 의무감도 없고. 이번 학기도 끝이 났다. 그렇게 해서 20..
아, 얘기 못한 게 있다. 서점의 음반 매장에서 역시 오랜만에 테이프를 샀다. 김광진의 솔로 앨범. 몇 번인가, 케이블 TV에서 뮤직비디오를 봤는데, 노래가 끝날 때가지 다른 채널로 돌리지 못했다. 지금 그 노래를 듣고 있다. 오랜만에 - 그러고 보니 오늘은 정말 '오랜만에' 하게 된 일이 많네 - 문장을 쓰고 싶어졌다. 오랜만에 그녀에 대해 오래 생각했고, 그것은 내 삶에 대해서 오래 생각했다는 말과 같다. 항상 문장을 생각하고 있다. 대단한 건 아니다. 대개는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서 그러한데, 집으로 돌아가자마자 샤워를 하고 뜨거운 차를 준비하고 불을 끈 뒤에 내가 쓰고 싶은 문장에 대해서 생각하는 것이다. 제목은 없지만, 주제는 있다. 가령, 최근의 내가 쓰고 싶었던 주제는 '회기역 승강대의 비둘기..
나는 대개, 그러니까 게시판 같은 경우 문장을 다 적은 뒤에 제목을 붙인다. 게시판에서의 글쓰기란, 원래 제목같은 게 필요없는 법이니까. 그러나 이번 경우에는, 미리 제목을 붙였다. 특별히 의도한 건 아니고, 거의 무의식적으로 제목에 '술 먹은 다음날'이란 문장을 처넣게 된 것이다. 아이고. 제리 맥과이어 라는 영화를 보면, 제리가 여자주인공(이름이 생각나지 않는다)에게 술에 취해 실수를 하고 나서, 그 자리에서 이렇게 말한다. '그런 생각이 들 때가 있죠. 술에서 깨고 나면 반드시 후회하게 될 거라는 생각을 미리 하게 되는 겁니다.' 뭐 대충 이런 것이었다. 술에 취해서 어떤 행동을 할 때마다, '너는 이 일을 내일 아침 후회하지 않을 자신이 있나?'라고 자문하는 버릇이 있다. 물론, 이건 술을 마시고..
습관이란 무서운 것이다. 무섭다기 보다, '강한' 것이라는 표현이 더 적절할 것 같다. 무섭고 강하다. 흠. 다시 월요일 아침, 약 이 주일 동안, 이곳에 글을 남기지 않았다. 딴은, 슬슬 내 홈페이지임에도 불구하고, 또 귀찮아지기 시작했고, 딴은 개인적으로 바쁜 나날이었기도 하다. 게다가, 매주 월요일 아침마다, 이곳에 '일주일을 시작하는 다짐'을 쓰곤 했는데, 내가 근무하는 문리대 교무실의 컴퓨터가 어쩐일인지 지난 주 내내 고장이었던 탓이기도 하다. 어제 밤새, 오늘 세미나 준비를 했다. 자주 밤을 세우고 학교를 갔는데 오늘만은 정신을 못차릴 정도로 졸려서, 학교 오는 내낸 전철에 앉아 침을 질질 흘리면서 잤다. 흠. 막상 할 말도 없고, 쓰다보니 자꾸 문장이 유치해진다. 게다가 올바른 문장도 되지 ..
알아, 소설만 쓰면서 살고 싶다는 게 욕심이란 걸. 모르긴 몰라도, 소설만 쓰면서 살 수 있다고 해도, 나는 그럴 수 없으리라는 걸. 그냥 나는 마냥 게으른 걸. 나는 여전히 어린 아이처럼 어리광을 피우고 있는 걸. 며칠 째 날이 맑고, 담배를 피우러 문리대 2층 동관으로 이어지는 바깥 통로에 서서, 사람들이 오고 가는 걸 바라본다. 오랫동안 꿈을 꾸지 않았다. 사람을 가슴에 품지 않았다. 모든 걸 나이 탓이라고, 모든 걸 날씨 탓이라고 변명을 했다. 다짐 하지 않았다.
최악의 주가 될 것 같다. 왼쪽 눈의 멍은 풀리기는 커녕, 점점 심해진다. 내가 아는 누군가는 눈꼬리 바로 옆에 마치 실수로 흘린 커피자국같은 점이 있다. 근데 그게 오래도록 그 사람을 대하다 보면 익숙해져서 점 같은 게 있는줄도 모르게 된다. 그러다, 함께 찍은 사진을 보면, 그제서야 아 점이 있었지 하고 깜짝 놀라는 것이다. 익숙해짐이란 그런 것이다. 왼쪽 눈의 멍은 이틀이 지났는데 익숙해지지 않는다. 아마 일주일 쯤 되면 익숙해질테지만 그 때쯤 해서는, 멍도 다 풀릴테지. 결국 멍이란 것은, 특히 눈주위의 멍은 아무리해도 익숙해질 수 없다. 익숙해지기 위해선 시간이 필요하고, 시간이 흐르면 멍은 사라진다. 이것이 멍의 메타포다. 코레일 패스에 대해, 어젯밤 인터넷을 뒤져 알아보았다.
도망치고 싶다. 멍이 풀리지 않는다. 거울을 보기가 지겹다. 일주일쯤.
시간은 정말 빠르다. 내 바램은, 시간이 더욱 빨라지거나 멈춰버리는 것이다. 벌써, 2년이나 지났다. 그리고 벌써, 1년이나 지났고, 벌써 반년이나 지났다. 그렇게 해서, 지금 이 순간, 5월 21일. 오늘로써 2000년의 봄도 지났다. 여름은 좀 느리게 지나갔으면 좋겠다. 2000년의 여름은, 이 봄보다 더 느리게 지나갔으면 좋겠다. 내 바램은, 시간이 더 느리게 지나가거나, 더 빨리 지나가거나, 아예 멈춰 버리는 게 아니다. 내 바램은, 삶이 고요해지는 것, 일요일 오후의 구름처럼, 많이 반짝이지 않아도, 아주 고요해지는 것. 그래서 그 시간에 너와 얘기하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