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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의재
도서관에 책을 반납했다. 여름방학이 시작되기 전에 빌려서, 머리 속으로 짐작하기를 권당 3000원, 그래서 약 6000원의 연체료가 나왔으리라 생각했다. 그러나 3000원 정도밖에 나오지 않았다. 27일 연체였다. 기분이 이상하다. 연체료가 덜 나왔다는, 그래서 생각보다 덜 게을렀다는 사실 때문에 나는 조금 행복해져야 하나? 월요일 새벽, 술을 마시고 큰 실수를 저지른 느낌이 든다. 드문드문 기억이 나는데, 기억이 날 때마다 무의식중에 입으로 혼잣말을 한다. '바보같이... 유치한...' 화요일 하루종일 일어나지 못했고, 그 때문에 학과사무실 업무 하나를 펑크냈다. 오늘 아침 학교를 오면서, 전화 한 통화만 했더라면, 단 1분만 몸을 일으켜서 전화 한 통화만 했더라면 이렇게까지 일이 커지지 않았을 텐데,..
분명히 나는 한 발짝 한 발짝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 나아가고 있다는 말에 '발전적인' 의미는 전혀 없다. 단적인 예로, 앞서 말했다시피 최근의 나는 무지 바빠졌는데, 나는 이 일로 아주 의기소침해졌다. 예전에는 분명 아무리 바쁜 상황이라 해도, 그래서 세상 사람 모두 바쁘다 해도, 나 혼자만은 바쁘지 않을 수 있었는데, 이제는 그렇지 않다. 그렇다고 해서 예전의 내가 대단히 특별한 존재였다는 뜻은 아니다. 그럭저럭 나는 평범하게 살아왔다. 나를 알고 있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나라는 존재를 뚜렷이 기억하지도 못할 것이다. 그런데 이제는 '평범한' 삶이란 것이 내게 너무 어려워져 버렸다. 여전히 어린애처럼 구는 건지도 모른다. 피터팬 증후군 같은 것일지도. 하루에 두 번 강을 건넌다. 어느 날 문득 하루에..
이렇게 말하면 안 되는 줄 알지만, 요즘은 너무 바쁘다. 후배와 이런 저런 얘기를 나누다가, 나는 원래 바쁜 사람이 아닌데, 요즘은 왜 이리 바쁜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어쩌면 지금껏 주욱 평균치 보다 '바쁘지 않게' 살아왔기 때문에, 더 바쁘다고 느끼는 것인지도 모른다. 성격 문제인데, 나는 원체 바쁘게 이일 저일 모두 다 신경 써가며 잘 해나가는 타입이 아니다. 부득이하게 그렇게 해야만 하는 경우에도, 나는 아무 거리낌없이 몇 가지 일을 제쳐놓는다. 아예 신경을 쓰지 않는 거다. 그 일로 인해 물론 피해를 보기도 하고, 주위사람들에게 무시를 당하기도 한다. 그러면 정말 견딜 수 없어진다. 내 자신에게 화가 나기도 하고, 심하게 부끄러워하기도 한다. 그렇다. 일반적으로 말해서 나는 '게으른' 인간이다. ..
고등학교 시절, 문득 생각난 건데, 내가 제일 좋아했던 시간은 바로 이 시간이었던 것 같다. 저녁 10시까지의 야간자율학습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면 10시 반, 나는 옷을 갈아입고 세수를 한다. 부엌에 들어가 차가운 물 한잔을 벌컥 벌컥 들이마시고 방으로 들어간다. 하루가 끝났다. 별로 특별한 하루는 아니었지만, 그래서 어제나 아님 내일과 잘 구별할 수도 없는 매일 같은 하루지만 어쨌든 끝났다. 나는 불을 끄고, 오토 스톱이 되는 카세트 데크의 플레이 버튼을 누른다. 어두운 방안에서 창 밖을 하릴없이 내다보며 담배 한 대를 피운다. 겨울이어도 환기를 위해 꼭 창문을 열어두었기 때문에 밤의 공기가 계절의 냄새를 방안에 가득 채운다. 이불에 누워 잠이 들 때까지... 때로는 한 시간이 넘도록 잠이 들지 못하..
... (삭발은 아니다. 맞는 모자가 없어서)캬오~
새벽 두 시, 책상 위에 놓여 있는 전화기를 바닥으로 내리고 눕는다. 불을 끄고 술기운을 또렷하게 느끼면서 수화기를 든다. 얼마나 취해 있는 거지? 한 70정도. 몇 잔을 더 마시면 필름이 끊길까? 그러나 오늘밤은 이걸로 끝이다. 나는 더 이상 마시지 않을 거다. 아직 전화번호를 기억하고 있을까? 이 번호가 맞나? 어떻게 된 거지. 완전히 취했군. 100 퍼센트 취했어. 전화번호가 생각이 나지 않다니. 또 전화를 걸려고 수화기를 들고 있다니.
내가 군대에 있을 때, 약 두 달간 대대 상황실에서 근무를 했던 적이 있다. 그 후 여러 가지 상황이 복잡하게 얽혀서 결국 나는 다시 중대로 내려오게 된다. 육체적으로는 분명 상황실 근무가 천국이었지만, 전체적으로 보면 중대 쪽이 훨씬 편했던 것 같다. 그렇더라도 대대 상황실의 근무란 게 일단 익숙해지고 나면 한없이 한량했던 게 사실이다. 대대장과 작전장교가 상급부대로 들어가서, 눈치볼 사람이 없는 날은 더욱 그렇다. 오전에는 사다리를 타서 먹을 걸 사온다. 따근하게 데운 만두와 꼬꼬볶음이 주메뉴고 음료수와 과자까지 한 박스 가득 담아온다. 점심을 먹고 난 오후에는 다들 나른해져서는, 라디오를 틀어놓고 짬밥이 되는 고참들은 책상 위에 엎드려 곤하게 잠을 잔다. 상황실에서 나와 왼쪽으로 십 미터쯤 걸어가 ..
쓸데없는 동작이 많다는 언수형의 지적이 옳았다. 아니, 계속 바라보고 있자니 옳은 것처럼 느껴진다. 아닐 지도 모르고. 그래서 동작을 뺐다. 다시 읽어보니 조금 나아진 듯 했다. 아닐 지도 모른다. 내 홈페이지에 올라있는 소설은 - 콩트나 엽편까지 합쳐서 - 열 편이 넘는다. 물론 개중에는 소설이란 이름을 붙이기도 힘든, 엉성한 문장들도 있다. 그래도 열 편이라면, 적지 않은 숫자다. 게으름을 피웠든, 치열한 의식이 없었든 그 문장들을 쓰는 동안, 나는 그것이 소설이라고 생각했고 나는 소설을 쓰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말이다. 왜 아직도 나는 소설이라는 게 뭔지 모르는 걸까? 왜 소설을 쓰는지, 또는 소설이란 게 궁극적으로 무엇인지는, 말할 수 있다. 비록 틀린 말일지라도 말할 수 있다. 그러나 소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