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의재
푸념 본문
쓸데없는 동작이 많다는 언수형의 지적이 옳았다. 아니, 계속 바라보고 있자니 옳은 것처럼 느껴진다. 아닐 지도 모르고. 그래서 동작을 뺐다. 다시 읽어보니 조금 나아진 듯 했다. 아닐 지도 모른다.
내 홈페이지에 올라있는 소설은 - 콩트나 엽편까지 합쳐서 - 열 편이 넘는다. 물론 개중에는 소설이란 이름을 붙이기도 힘든, 엉성한 문장들도 있다. 그래도 열 편이라면, 적지 않은 숫자다. 게으름을 피웠든, 치열한 의식이 없었든 그 문장들을 쓰는 동안, 나는 그것이 소설이라고 생각했고 나는 소설을 쓰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말이다. 왜 아직도 나는 소설이라는 게 뭔지 모르는 걸까? 왜 소설을 쓰는지, 또는 소설이란 게 궁극적으로 무엇인지는, 말할 수 있다. 비록 틀린 말일지라도 말할 수 있다. 그러나 소설을 쓰는 건 다르다. 소설을 쓰는 내내, 바로 지금 이 순간, 나는 어떻게 써야 할지, 과연 이것이 소설이 되는 건지 알 수가 없다. 이건 아주 사소한 문제다. 제대로 된 형식의 문제다. 쓸데없는 동작이 너무 많은 건지, 시제는 맞고 있는지, 의식이 과잉된 건지, 아니면 너무 많은 걸 숨기려고 하는 건지, 너무 유치한 건지, 그런 대로 봐줄 만한지 등등. 문장을 쓰는 순간의 문제뿐만 아니라, 다시 자신의 문장을 읽는 순간의 문제이기도 하다. 적어도 좋은 소설을 쓰지는 못해도, 좋은 소설이란 게 어떻게 구성되는지 알고 있어야 하는 게 아닌가?
어쩌면, 제대로 된 형식을 갖춘 소설을 쓴다는 건 정말 어려운 일일지 모른다. 가장 어렵다. 왜냐면 '제대로 된 형식'이란 게 뭔지 조차 나는 모르고 있으니까. 결국 소설을 쓰는데 필요한 것은, '제대로 된 형식을 갖춘 인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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