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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의재

`미치도록` 본문

단상

`미치도록`

물고기군 2000. 8. 4. 14:48
N.O.X 라는 그룹이 있다. 별 대단한 그룹은 아니다. 남녀 혼성그룹으로 지금의 코요테나, 뭐 기타 시시껄렁한, 기획사에서 대충 얼굴 반반한 남녀를 길에서 주워와 급조한 듯한, 엉성한 그룹이다. 타이틀곡은 댄스곡, 음악적 경향 같은 건 없고, 앨범에는 감미로운 발라드도 몇 곡 포함되어 있다. 실제로 1집을 낸 지가 이제 2년이 넘었건만, 2집 소식은 들리지 않는다. 그러니까, 한번 판을 내봤더니 잘 되지 않아서 기획사조차 포기한 그룹인 것이다. 이 그룹이 그래도 공중파나 케이블 방송에서 간혹 얼굴을 비치던 시기, 대개 활동시기라고 부르던 때는 1998년 여름이었다. 타이틀곡은 '미치도록'이었다. 그래도 노래방에 가면, 그 곡이 있다.
아주 가끔이지만, 나는 이런 종류의 앨범을 사곤 한다. 뭐라고 할까, '핑클류'라고 하나. 아주 발랄하거나, 아주 감미로워 가만히 듣고 있으면 세상은 어쩌면 굉장히 행복한 곳이고, 조금만 노력하면 누구나 행복해질 수 있을 것 같은. 헤어진 사랑도, 그리고 이제 헤어지려는 사랑도, 이들의 노래 속에서는 아름답다. 그렇게 해서 나는 학교 앞 음반매장에서 테이프를 산다. 대개는 타이틀곡을 제외하고는 들을 만한 게 없다. 몇 번 워크맨에 꽂아서 듣다가, 일주일도 되지 않아 카세트 수납장에 버려진다.

N.O.X 도 분명 그렇게 될 운명이었다. 하지만 운이 좋았다. 1998년 여름, 나는 케이블 방송에서 그들의 뮤직비디오를 보았고, 다음날로 당장 테이프를 샀다. 그리고 그 해 여름 내내 테이프를 워크맨에 꽂고 다녔다. 다른 테이프로 교체할 마음의 여유가 없었다. 그 여름에는, 가만히 앉아 있으면 누군가 모서리에 억지로 끼우려는 것처럼 머리가 조여 왔다. 가끔 숨도 쉬지 못할 정도로 가슴이 답답해지곤 했다. 나는 후끈후끈 거리는 여름의 뜨거운 대기 속으로 낯선 거리를 걷고 또 걸었다. 일부러 한 정거장을 더 걸어가서 버스를 탔다. 창 밖을 내다보았다.

지금 나는 N.O.X 의 테이프를 듣고 있다. 2년이라면 꽤 긴 시간이라서, 이렇게 노래의 도움이라도 빌리지 않으면, 잘 떠올릴 수가 없다. 물론 아직도 조금은 아프다. 아직도 후회를 한다. 그리고 아직도, 나는 그 시절을 잘 이해할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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