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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의재
1년 전에 헤어진 여자에게서 전화가 왔다. 남자친구와 헤어졌다고 했다. 그녀의 목소리는, 그녀의 목소리 같지 않았는데, 나는 그녀가 울면서 얘기하는 것을 한번도 들어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나는 내가 해줄 수 있는 게 있냐고 물었다. 나로선, 내가 해줄 수 있는 게 무엇인지 알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녀도 모르는 것 같았다. 내가 해줄 수 있는 일이란 아무것도 없는 것이다. 개과천선이란 말을 믿지 않는다. 나쁜 인간은 죽을 때까지 나쁜 인간이다. 왜냐하면 착한 인간은 죽을 때까지, 매번 배반당하면서도, 화가 날 정도로 착한 인간이기 때문이다. 끊기 전, 괜찮아지면, 다시 행복해지면 전화하라고 말했다. 그렇게 말해선 안 되는 일이었다. 만일 그녀가 다시 내게 전화하지 않는다면, 나는 내내 그녀가 불행한 거..
전에도 말했다시피, 내게는 혼잣말을 하는 버릇이 있어. 누구나 그런 버릇이 있다고 말할지도 모르겠지만, 내가 아는 사람 중에는 없으니까, 특이하다면 특이한 버릇일 수도 있지. 그리고 전에도 말했다시피, 나의 혼잣말은 어떤 주기를 가지고 있는데, 나도 모르는 새에, 정말 그래, 나도 모르는 새에 '어떤 문장'을 혼잣말로 중얼거리다가 또 금새 '다른 문장'으로 바뀐단 말이야. 바뀌고 나서도 처음에는 잘 몰라. 내가 어떤 문장을 중얼거리는지 모르다가 문득 깨닫게 되지. 어, 혼잣말이 바뀌었네. 이번에는 무슨 의미가 있을까? 또, '나'는 '내'게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걸까? 뭘 가르치려고 하는 거지? 요즘의 내 혼잣말, 그건 내 잘못이 아니야. 분명 뭔가 내가 잘못하고 있긴 있나보다 라고 생각해본다.
그 시간이 새벽이었는지, 아니면 늦은 밤이었는지 확신할 수 없다. 아무튼 거리는 텅 비어 있었고, 어두웠다. 그리고 지독히 고요했다. 남부순환로를 따라 시속 100키로 이상으로 달리는 자동차 바퀴소리도 그 고요를 흔들 수 없었다. 아주 조금, 공기를 진동시켰지만 금방 믿을 수 없는 기억처럼 사라졌다. 역시 모르는 것은 내가 어째서 그 거리를 걷게 되었는지다. 거리 자체는 전혀 이상할 것이 없다. 바로 내가 살고 있는 거리다. 그러나 내가 그 거리를 걷는 것은 낮의 일이다. 사람들로 제법 북적거리고, 몇 번이나 좁은 골목을 지나는 차들 때문에 벽면으로 몸을 붙여야 한다. 가로등은 제대로 거리를 밝히고 있었다. 나는 그다지 가파르지 앉은 언덕을 올라가고 있다. 왼편으로 모래가 깔린 놀이터와 문을 닫은 24시..
안녕, 나의 사랑 안녕, 나의 행복 외로움이 날 반기네 난 울 것만 같아.
무슨 이유든 간에, 내게 기댄 사람의 무게를 느낄 때 나는 정말 알 수 없는 기분이 든다. 무게는 구체적인 것이다. 나는 그것을 분명히 느낄 수 있다. 농담으로 흘릴 수도, 괜히 폼나는 척 멋진 말로 얼버무릴 수도 없다. 마음이 서늘해진다. 물론 금방 그 무게는 사라질 테지만, 그 무게의 느낌은 지울 수 없다. 그래서 어떻게든 그 무게에 대해 '규정'해야만 한다. 나는 자주 사소한 일로, 오랜 시간을 보내는 것이다. 사소하다는 것은, 내 친구의 표현이다.
브레이크. 속도를 줄여야 한다. 속도를 줄이고 표지판을 다시 한번 확인하고 필요하다면 차를 멈추고 사람들에게 물어봐야 한다. 커브다. 속도를 줄여야 한다. 어차피 옆자리에는 아무도 없다. 혼자 떠들고 있을 뿐이다. 나는 아무데도 가고 있지 않아.
인생의 편리한 점은, 무엇이든, 우리를, 어디로든, 데려다 준다는 것이다. 눈 깜짝할 사이에. 단지 곤란한 점은 결국에는 다시 돌아와야 한다는 것이지만, 그 놀랄만한 편리함에 비하면 그 정도의 곤란함은 무시할 수 있다.
그런 여자가 있다. 평소에 만나면 그저 그런데, 전화통화를 하거나 술을 마실 때 훨씬 더 친밀감을 느끼게 되는 여자가 있다. 더 잘 말할 수 있게 된다. 대화의 화제가 끊이지 않고, 술은 맛있다. 그게 좀 이상한데, 실제로 애인이었던 여자와는 전화통화를 해도 술을 마셔도 그저 그런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애인이라는 관계가, 모든 부분에 있어 항상 최상인 것은 아니다. 전화친구나, 술친구란 게 있는 것이다. 아니면 애인이라는 관계로 발전하게 되면, 나는 대화가 아니라 다른 것(?)을 추구하게 되는지 모른다. 나란 인간은, 참. 그건 내가 대학교 1, 2학년 때 일로, 군대를 갔다 오자 내 주위에 그런 여자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았다. 아니, 그렇게 되지 않았다. 애인이 아닌 여자와 단 둘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