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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의재
어머니는 아이의 조그만 손에 500원짜리 동전을 쥐어주며 이렇게 말했다. "이것으로 요 앞 슈퍼에 가서 네가 먹고 싶은 걸 사먹으렴." 아이는 뛰었다. 그리 멀지 않은 슈퍼에 도착했을 때, 어찌나 꼭 쥐고 있었던지 동전은 땀으로 미끈거렸다. 아이는 한참을 망설이다가 포장지가 예쁜 과자 한 상자를 골라 카운터로 갔다. 그리고 말 없이 동전을 아줌마에게 내밀었다. "얘야, 이 돈으로는 이것을 살 수 없단다. 다른 걸 골라오렴." 아줌마는 친절하게 아이에게 말했다. 그러나 아이는 고개를 숙인 채 가만히 그 앞에 서 있었다. 아이는 잘 이해할 수가 없었다. 어머니는 분명히 네가 먹고 싶은 걸 사먹으라고 말했다. 어머니가 틀렸을 리가 없다. 한참의 시간이 흘렀다. 아이도 아줌마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나는 이..
차창 밖으로 손을 내밀자, 거센 바람이 느껴졌다. 바람은 아주 무겁고 두터워서, 내 손을 뒤편으로 날려버릴 것 같았다. 나는 빠른 속도로 앞으로 나아가고 있는 것이다. 손목에 힘을 주었다. 도로 위를 가로지르는 다리 아래를 통과하자 지면에 드리웠던 그림자가 나를 덮쳤다가 금새 다시 제자리로 돌아갔다. 그것은 극히 짧은 순간이었지만, 나는 그 차이를 분명하게 알 수 있었다. 내가 무엇을 잃어버렸는지 알겠다. 나는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하고 있다. 살고 있다. 잘못 살고 있다.
철학자의 자살은 나를 생각하게 한다. 거기에는 아주 잠시라해도 뭔가 생각할 거리가 있다고 느낀다. 그건 아마, 내가 철학이라는 것도 자살이라는 것도 잘 모르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자살이 궁극적으로 의미하는 죽음이라는 문제 또한 그렇다. 나는 여자에게, 아마 인간이란 결국엔 자기 자신에 대해 생각하게 되는 걸 꺼야, 라고 말한다. 자기 자신이란 게 무엇인지는 모른다. 어쩌면 유적 존재로서의 자기 자신, 인간 보편을 품고 있는 자기 자신의 문제일지 모른다. 보편으로써의 존재란 무엇인가? 만일 존재라는 것이 하나의 양식에 불과하다면, 개체로써 표현되는 존재, 즉 주체란 어디까지나 하나의 가능성에 지나지 않는 것이 아닌가? 철학이란 결국 그러한 문제에 대한 해답을 구하는 작업일 거라고 짐작해본다. 만일 ..
근사한 말을 알고 있다. '세상은 아름다운 곳이고, 싸워볼 만한 가치가 있다.' 이 말의 의미는, 세상은, 오직 싸워볼 만한 가치밖에 없다는 뜻이다. 그 외에는 아무 것도 없다. 그러나 아무 것도 없다는 말이 가지는, 일종의 무력감이나 절망감은 나의 의도가 아니다. 차라리 거기에 포함되어 있는 감정은, 희망이거나 즐거움이다. 이 싸움에는 명분도 적도 없기 때문이다. 아니, 정확하게 말하면 '정해진' 명분도 적도 없다. 싸움이라는 형식이 그러한 것들을 필요로 한다. 그러나 무엇이든 간에, 그것은 지극히 편의적인 것에 불과하다. 마치 자신의 그림자를 향해 펀치를 날리는 쉐도우 트레이닝처럼 우리는 가상의 적과, 나중에는 분명 잊어버리게 될 사소한 명분을 위해 싸운다. 이것은 원인과 결과를 전도시킨 것에 지나지..
요즘의 나는 분명, '이런 얘기를 쓰고 싶다'라고 생각하기 보다, '이런 얘기를 쓸 수 있을까'라고 생각한다. 삶이란 살면 살수록 더 어려운 법이다. 아니지. 이런 얘기가 아니다. 과연 '쓸 수 있을까'라고 묻는 것이 내가 소설을 쓰면 쓸수록 드는 생각인 건지 알 수 없다는 것이다. 가령 이제 이만큼 써봤으니 쓰면 잘 써야지 라고 생각하는 게 아닐까? 내 자신의 소설에 대한 어쭙잖은 기대치가 생긴 건 아닐까? 그렇다면, 나는 '잘 쓴 소설'이 뭔지나 알고 있나? 세상 모든 일이 그렇듯이, 이것은 굉장히 미묘한 문제다. 나는 분명히 이렇게 말했다. 잘 쓴 소설을 만들려고 하지말고, 네가 말하고 싶은 것을 잘 말하라고. 그것이 소설이 되느냐 안 되느냐는 차후의 문제라고. 하지만 말하고 싶은 것을 잘 말했다고..
차창문을 열고 초여름밤의 뻥 뚫린 대로를 달리는 것만큼 즐거운 일은 없는 거야. 만일 갈 때만 있다면 말이야. 이 시간이나 세계에 대해, 또는 나 자신에 대해 할 말이 있을 때 누군가 들어줄 사람이 있다는 것만큼이나 행복한 일은 없는 거지. 지독한 시간들은 무시하고 좋은 시간에 집중할 것. 지독한 - 시간들은 - 무시하고 - 좋은 시간에 - 집중할 것. (Ignore the awful times,and concentrate on the good ones! ) 이게 내가 너한테 하고 싶은 말이야.
# 발견 # "놀라운 일이네"라고 말했다. "놀라운 일이군"이라고 말했다. "놀라운 일이군" 하고 말했다. # 발견의 경위 # 1. 마지막 단어 (여기서는 '군')에 받침이 있은 경우, ["...군"라고]는 쓰이지 않는다. 왜냐면, 받침 때문에 매끄럽게 읽히지 않기 때문이다. 2. 그렇다해도, ["..."이라고] 쓰는 건 아무래도 이상하다. 3. 그래서 다른 소설에서는 어떻게 쓰였는지 조사해 본 결과, 1) 몽땅 ["..." 하고] 라고 쓴 경우, 2) 받침이 없을 때는 ["..."라고], 받침이 있을 때는 ["..." 하고] 라고 쓴 경우, 3) 별 다른 기준 없이 두 가지를 다 허용하지만, 받침이 있을 때는 항상 ["..." 하고] 라고 쓰는 경우, 이렇게 세 가지로 분류할 수 있었다. 4. 여기서 ..
불을 붙임 라이터를 켜기 위해 바람을 등지려 할 때마다 난 많은 생각으로 아무런 행도도 하지 못하곤 한다. 그 생각이란 아주 단순해서 많은 사람들은 필요할 때만 조금씩 아끼며 묻는 것들이다. 그건 바람이 어디에서 부는지 였다! 또 많은 사람들은 이쪽, 혹은 저쪽으로 손가락질하며 용감히 말한다. {이 바람은 동쪽에서 불고 있다} 아, 그러나 내가 그 방향으로 손바닥을 들어 라이터를 감싸질 때조차 결코 불은 붙지 않는다. 우리는 얼마나 많은 것을 알고 있는 걸까? 바람이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 굳이 과학적이란 용어를 방패처럼 휘두르며 날 비웃지 마라. 난 모르고 있다. 하지만 그게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난 결국 불을 붙일 것일진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