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의재
친구에게 본문
근사한 말을 알고 있다.
'세상은 아름다운 곳이고, 싸워볼 만한 가치가 있다.'
이 말의 의미는, 세상은, 오직 싸워볼 만한 가치밖에 없다는 뜻이다. 그 외에는 아무 것도 없다.
그러나 아무 것도 없다는 말이 가지는, 일종의 무력감이나 절망감은 나의 의도가 아니다. 차라리 거기에 포함되어 있는 감정은, 희망이거나 즐거움이다. 이 싸움에는 명분도 적도 없기 때문이다. 아니, 정확하게 말하면 '정해진' 명분도 적도 없다. 싸움이라는 형식이 그러한 것들을 필요로 한다. 그러나 무엇이든 간에, 그것은 지극히 편의적인 것에 불과하다. 마치 자신의 그림자를 향해 펀치를 날리는 쉐도우 트레이닝처럼 우리는 가상의 적과, 나중에는 분명 잊어버리게 될 사소한 명분을 위해 싸운다. 이것은 원인과 결과를 전도시킨 것에 지나지 않는다. 명분과 적이 있기 때문에 싸우는 게 아니라, 싸우기 위해 명분과 적이 필요한 것이다. 보다 더 중요한 것은 싸우고 있다는 의식이다. 바로 이 자리에서, 바로 지금, 자신이 싸우고 있다는 의식 말이다. 그리하여 우리는 결코 싸움을 그쳐서는 안 된다. 싸움은 우리 존재의 유일한 표현이다.
만일 우리가 이 싸움을 그치지 않고, 끝까지 행할 수 있다면, 잘 하면 우리는 번쩍거리는 트로피를 받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아니면, 적어도 참가상 정도는 받을 지도 모른다. 그러나 알다시피, 승패는 아무 것도 아니다. 승패는 다만 싸움의 결구에 지나지 않는다. 자, 이걸로 끝이야, 여기까지야, 라는 표지에 불과하다. 우리는 그 싸움의 보상으로 아무 것도 얻지 못하리라. 구원은 없다. 만일 그래도, 우리가 그 싸움의 끝에 무언가를 얻을 수 있다면, 끝까지 싸움을 그치지 않았다는 조촐한 보상을 받을 수 있다면...
친구여, 우리는 그것을 명예라고 부르기로 하자.
'세상은 아름다운 곳이고, 싸워볼 만한 가치가 있다.'
이 말의 의미는, 세상은, 오직 싸워볼 만한 가치밖에 없다는 뜻이다. 그 외에는 아무 것도 없다.
그러나 아무 것도 없다는 말이 가지는, 일종의 무력감이나 절망감은 나의 의도가 아니다. 차라리 거기에 포함되어 있는 감정은, 희망이거나 즐거움이다. 이 싸움에는 명분도 적도 없기 때문이다. 아니, 정확하게 말하면 '정해진' 명분도 적도 없다. 싸움이라는 형식이 그러한 것들을 필요로 한다. 그러나 무엇이든 간에, 그것은 지극히 편의적인 것에 불과하다. 마치 자신의 그림자를 향해 펀치를 날리는 쉐도우 트레이닝처럼 우리는 가상의 적과, 나중에는 분명 잊어버리게 될 사소한 명분을 위해 싸운다. 이것은 원인과 결과를 전도시킨 것에 지나지 않는다. 명분과 적이 있기 때문에 싸우는 게 아니라, 싸우기 위해 명분과 적이 필요한 것이다. 보다 더 중요한 것은 싸우고 있다는 의식이다. 바로 이 자리에서, 바로 지금, 자신이 싸우고 있다는 의식 말이다. 그리하여 우리는 결코 싸움을 그쳐서는 안 된다. 싸움은 우리 존재의 유일한 표현이다.
만일 우리가 이 싸움을 그치지 않고, 끝까지 행할 수 있다면, 잘 하면 우리는 번쩍거리는 트로피를 받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아니면, 적어도 참가상 정도는 받을 지도 모른다. 그러나 알다시피, 승패는 아무 것도 아니다. 승패는 다만 싸움의 결구에 지나지 않는다. 자, 이걸로 끝이야, 여기까지야, 라는 표지에 불과하다. 우리는 그 싸움의 보상으로 아무 것도 얻지 못하리라. 구원은 없다. 만일 그래도, 우리가 그 싸움의 끝에 무언가를 얻을 수 있다면, 끝까지 싸움을 그치지 않았다는 조촐한 보상을 받을 수 있다면...
친구여, 우리는 그것을 명예라고 부르기로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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