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의재
생각 본문
요즘의 나는 분명, '이런 얘기를 쓰고 싶다'라고 생각하기 보다, '이런 얘기를 쓸 수 있을까'라고 생각한다. 삶이란 살면 살수록 더 어려운 법이다. 아니지. 이런 얘기가 아니다. 과연 '쓸 수 있을까'라고 묻는 것이 내가 소설을 쓰면 쓸수록 드는 생각인 건지 알 수 없다는 것이다. 가령 이제 이만큼 써봤으니 쓰면 잘 써야지 라고 생각하는 게 아닐까? 내 자신의 소설에 대한 어쭙잖은 기대치가 생긴 건 아닐까? 그렇다면, 나는 '잘 쓴 소설'이 뭔지나 알고 있나? 세상 모든 일이 그렇듯이, 이것은 굉장히 미묘한 문제다. 나는 분명히 이렇게 말했다. 잘 쓴 소설을 만들려고 하지말고, 네가 말하고 싶은 것을 잘 말하라고. 그것이 소설이 되느냐 안 되느냐는 차후의 문제라고. 하지만 말하고 싶은 것을 잘 말했다고, 그 모든 것이 다 소설이 되는 건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것은 기껏해야, 잘 말한 말에 불과한 것이 아닌가? 하지만 또 반대로, 야, 이것은 소설 같네 라는 게 다 소설이 되는 걸까? 음, 그래, 이것은 소설로서의 형식을 완벽하게 갖췄다. 이걸로 소설은 끝나는 걸까? 아니지, 아니야. 이런 질문을 던지려는 게 아니었다. 이것은 너무 단순한 이분법이 아닌가? 내용이니 형식이니 하는. 하여튼 분명한 건, 내가 과연 '이런 얘기'를 잘 쓸 수 있을까 라는 자문에는 설명하기 어려운 잘못이 들어있다는 것이다. 과연 이 소설을 끝마칠 수 있을까? 끝마치면 과연 소설이 되는 걸까? 그만두자. 그만두자고. 그게 소설이 안 된다면, 다시 다른 얘기를 쓰면 되지 않는가? 할 말은 많다. 대체 내 말을 사람이 이해하든 못하든, 공감하든 공감하지 못하든, 나에게는 할 말이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나는 두렵다.
그럼에도 나는 두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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