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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의재
方法 자기 자신을 속여야 한다. 속은 자는 일어설 것이기에 우린 죽는 날 까지 속으며 속이며 모른 척 가야한다. 아무 것도 모르는 것처럼 속지 못한 자는 5층 건물 옥상에서 자신의 삶을 너무 깊이 그리고 많이 알아 버린다. 현명한 자는 속는다. 새벽 2시에 일어나 4시 까지는 자칫 자기 자신을 속이는 것을 잊을지도 모른다. 아무도 없는 거실 혹은 가로등조차 부서진 빈 거리에선 문득 올려다 본 하늘이 우릴 비웃어도 길게 고개 저으며 속아야 한다. 어제 깨달은 진리도 오늘은 필요없고 오늘밤 비겁하게 흘린 눈물도 내일엔 잊어야 한다. 잊고 살자. 그것은 삶을 길게 혹은 밝게 사는 길이다.
일주일에 세 번, 화요일, 목요일, 토요일에 아침마다 운전을 해. 아침이라고 했지만, 사실은 11시에서 1시 사이니까 아침이라고 할 수도 없는 시간이지. 그게 작년 가을부터니까 이제 거진 반년이 되어 가는 셈이네. 필드라는 카페가 있었어. 체인점 같은 거였는데, 학교 앞에도 하나 있었지. 혹시 아펠이라는 복사전문 가게를 알고 있는지 모르겠네. 왜 있잖아, 버거킹 골목 초입에 있는 가게말이야. 켄츠 바로 옆에, 바로 그 자리였어. 조그만 카페였지. 하여튼 이름이 필드였어. 아마 입구에는 이름에 걸맞게 잔디색깔의 푸른 색 카펫이 깔려있고, 안으로 들어가면 실내임에도 불구하고 햇빛을 가리는 파라솔이 펼쳐져 있었지. 그게 홍대 앞에도 있었어. 1992년 나는 재수생이었어. 나는 친구와 홍대 앞 필드를 자주 드나..
소설가가 자신의 작품을 더 이상 수정하지 않을 때는, 작품이 더 이상 손볼 데가 없이 완벽해진 때가 아니라, 작품에 질려버린 때다. 완전히 흥미를 잃어버린 후에야, 소설가는 수정을 그친다. 완전함이란 결국, 그런 것이다.
확실히 그렇다. 사물의 이름에는, 뭐라해도 나름의 이유가 있는 것이다. '아침햇살'을 저녁에 먹었더니, 소화가 되지 않는다. 대체 음료수를 마시고 소화가 되지 않다니. '아침햇살'은 아침에 먹어야 한다. 아무 이유 없이, 햇볕에 바짝 마른 모래가 생각났다. 처음에는 그 색깔이 떠오르더니 - 그것은 마치 햇볕 그 자체인 것처럼 하얗다 - 나중에는 손가락 사이로 그 모래가 흘러내리는 촉감까지 분명하게 떠올랐다. 막연하게 생각하기를 이것은 일종의 상징으로, 현재 내 삶의 어떤 양태를 드러내주고 있을지도 모른다. 꿈 같은 것이다. '햇볕에 바짝 마른 모래.' 이건 마치 화장하고 남은 재 같지 않은가?
예전에는 사라지는 것이 가치가 없다고 생각했다. 영원한 것, 또는 오래 지속되는 것만이 가치 있다고 생각했다. 누가 나에게 가르쳐준 것일까. 낮은 것과 높은 것, 깨끗한 것과 더러운 것, 밝은 것과 어두운 것, 변하는 것과 변하지 않는 것. 그런데 곰곰 생각해보면, 하나의 단어, 하나의 사물, 하나의 현상에는 가치가 없다. 가치를 부여하는 것은 대상이 아니라, 대상을 가리키는 손가락, 바로 나였다. 정말 사라지는 것에는, 그래서 사라진 것에는 가치가 없는 것일까. 그렇다면, 정말 그렇다면, 내가 좋아했던, 소중하게 여겼던 모든 것들은 가치가 없다. 분명 그렇다. 과거의 어느 순간, 그것이 사라지지 않았을 때는 분명 가치가 있었다. 이렇게 말해도 될까? 그러나 그것이 사라지는 순간, 그것은 가치 없는 것,..
전철을 타고 학교를 가다가 깜박 존다. 완전히 잠에 빠진 건 아니고, 시간의 흐름이 기묘하게 뒤틀어진 느낌. 회기역에 이르러 억지로 몸을 일으켜 열차에서 빠져 나온다. 자고 싶다. 손가락을 딱 하고 튕기면, 이곳이 역사가 아닌 내 방이었으면 좋겠고, 내 눈앞에는 이제 막 세탁해서 약간 서늘한 느낌을 주는 하얀색 시트가 씌워진 커다란 침대가 놓여 있었으면 좋겠다. 그러나 손가락을 튕겨봤자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으리란 걸 알고 있다. 다른 대안. 어서 빨리 학교로 올라가서 사람들의 시선 같은 건 신경 쓰지 말고 과사무실 소파에 누워서 자야겠다. 그래, 그게 좋겠다. 그러나, 계단을 올라가고 개찰구를 빠져나와 다시 계단을 내려가고 중소기업은행 앞 신호등에 다다르기도 전에 잠은 어느새 달아나 버린다. 아무렇지도..
내 나쁜 버릇 중의 하나는, 뭔가를 설명하려고 하는 것이다. 그런데 알다시피 세상에는 설명을 하지 않아도 알 수 있는 일들이 있다. 아니, 설명을 하지 않아야 더 잘 알 수 있는 일들이 있다. 아니, 설명을 하지 말아야 하는 일들이 있다. 설명은 너에게 하는 게 아니라, 나에게 하는 것이다.
1. 토마토는 이상한 과일이다. (엄밀한 의미에서 토마토는 과일이 아니지만, 엄밀한 의미에서 참외나 수박도 과일이 아니다.) 겉과 속의 색깔이 똑같은 과일은 흔하지 않다. 껍질과 알맹이의 색깔이 똑같은 과일은 흔하지 않다. (물론 토마토 외에도, 감이나 당근, 어쩌면 귤이나 오렌지도 겉과 속의 색깔이 똑같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겉으로 드러나는 것은, 대개 속의 색깔이 아니다. 겉과 속은 서로 다른 원인에 의해 색깔이 결정되는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토마토의 겉과 속의 색깔이 같은 것은 우연이다. 2. 우리가 나누는 것은 마음이 아니다. 물론 마음이란 것이 순전히 비유적인 의미라면, '나눈다'는 행위도 비유적인 의미일 것이다. 그렇다해도, 비유적인 의미에서의 마음이라해도, 마음은 나눠지지 않는다. 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