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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의재
일어났는데, 왼쪽 눈이 잘 안 떠졌다. 얼굴이 퉁퉁 부었군, 생각하면서 만져보았는데 심상치가 않다. 거울을 보니, 누군가에게 한 대 얻어맞은 것처럼 시퍼렇게 멍이 들어 있다. 무슨 일일까? 어젯밤, 순대형과 술을 마셨다. 그리고 재영이와 안강을 만났다. 어떻게 된 일일까? 새벽쯤에 오바이트를 했고, 우산을 잊어버리고, 6시에 회기역에서 열차를 탔는데, 언제나처럼 수서에서 구파발까지 몇 번을 왕복했는지, 결국 10시쯤에 남부터미널역에 도착해서 패스를 넣었더니, '안내원에게 문의하세요'라는 경고메시지가 나왔다. 언수형과 권호, 규열이, 정화한테 전화했는데, 결국 정화하고 연락이 닿았다. 그 때가 몇 시였는지 모르겠다. 정화는 너무 늦었다면서 전화를 끊었다. 하루종일 계란으로 왼쪽 눈의 멍을 풀면서, 내가 누..
5.18 이 뭘까, 한참을 생각했다. 학교 개교기념일이 5월 18일 이라는 것을 알았을 때, '어, 5.18은...' 이라고 서술어를 찾지 못했다. 하루가 다 지나서야 뭔지 알았다. 신기한 일이다. 소설은 망했다. 다시 읽고, 또 읽어보았는데, '구제'의 길이 없다. 항상 중요한 건 늦게 깨닫는 법이다. 원고지 분량은 다시금 2장이 되었다.
어머니는, 저를 믿는다고 하셨죠. 어떻게 그럴 수 있죠? 나도 나를 믿지 못하는데. 잘못은 비와 같아요. 우린 잘못을 피할 수 없죠. 작은 우산은 우리를 지켜주지 못해요. 잘못은 우리의 뿌리예요. 잘못이 없어지면, 우리도 살아갈 수 없어요. 근데 어떻게 세상이 완전해지리라 희망할 수 있죠? 사람들은, 내게 거짓말을 시켰어요. 잘못했어요. 다시는 안 그럴께요. 어떻게 그럴 수 있죠? 아픔은 용서의 대가가 아니죠. 그렇죠.
다 쓰지 못했다. 지금 이곳은 문리대 교무실. 공짜 커피를 한 잔 뽑아 마시면서 이 글을 쓰고 있다. 오전에는 근무, 오후에는 수업, 저녁에는 술 약속이 있다. 이 '마감'도 펑크의 댓가는 '삭발'인가요? 문득 생각난 건데, 3차원에 시간을 더해서, 4차원인 것 같다. 즉, 우리가 3차원의 세계에서 공간을 규정하는 방식으로, 4차원에서 '시간'을 규정할 수 있다. 시간과 공간이 '연결'되어 있다는 것은, 시간이란 결국 공간의 다른 양식일 뿐이라는 것이다. 시간의 공간화, 공간의 시간화. 여기에 바로, 존재의 현존성에 대한 묘수가 있다. 양자역학은 양자의 존재방식이, '확률'에 있다는 것을 밝혀냈다. 단순하게 말한다면, 사물이 우리 앞에 존재하는 것은, 그 사물이 존재할 확률이 존재하지 않을 확률보다 더 ..
원근법이란, 얼마나 놀라운 발견인가? 어렸을 적, 나는 친구의 풍경화를 보고 깜짝 놀랐는데, 나로선 도저히 평면의 도화지에 그릴 수 없었던, 가까운 나무와 먼 나무의 겹침을, 그는 완벽하게 자신의 도화지에 옮겨 놓았던 것이다. 어떻게 평면에 3차원의 공간을 담을 수 있는가? 원근법이다. 소실점이다. 가까운 것은 크게, 멀리 있는 것은 작게, 마찬가지로 가까운 것은 진하게, 멀리 있는 것은 흐리게. 자, 이렇게 해서, 나는 어린 시절 방과후 미술학원을 다니던 친구의 풍경화를, 그린다. 그리고, 이제는 그것이 '사실적'인지 확인한다. 하지만 가만히 보고 있을수록, 그것은 더욱 거짓된 그림에 불과하게 보인다.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 원근법이란 이데올로기구나. 소실점이란 없는 거구나. 그것은 사물의 실제 양식이..
정말로 좋아하는 것은 소유해선 안돼. 이것은 어린왕자의 말이었을까? 정말로, 그러면 안돼? 사실 내 마음을 사로잡았던 것은, 어린왕자가 아니라 야간 비행사였다. 왜 한동안 소설에서 떠나 있었을까? 아니, 그건 아니었어. 나는 말이야, 한 번도 소설에서 떠나 본적이 없어. 내가 말하는 것이, 너한테 부당하게 들릴지 몰라도, 어떤 선험적인 절대성을 얘기하는 것은 아니야. 소설은 언제나 내 '꿈'이었어. 이럴 수가. 참 오랜만에 '꿈'이라는 단어를 입으로 발음해보고, 글로 써본다. 나이가 들면서 부끄러웠던 것 같아. 꿈꾼다고 말한다는 것이. 대신 다른 단어들을 배웠지. 가령, 욕망이라든지, 삶이라든지. 한 인간이 기억할 수 있는, 그리고 자신의 마음 속에 담을 수 있는 단어의 총량은 한정되어 있는 걸까? 그래..
얼마 전에, 아주 오래된 사람에게 편지를 보낼 일이 있었다. 오래된 사람에게 편지를 보내는 일은 아주 어렵다. 왜냐하면, 그도 나도, 정말 오래된 사람이니까. 바로 지금, 그가 그리고 내가, 서로에게 부재로 있는 것이 더 옳다는 것을 안다. 하지만 살아간다는 것이, 어떠한 원칙들을 자기 자신에게 확립하는 일일 테지만, 그것을 지킬 수 없는 경우도 있는 법이다. 분명 어떻게 행동해야 한다는 걸 알지만, 술에 취하거나, 순간적인 감정으로, 다른 선택, 다른 행동을 취하곤 한다. 결국엔 후회하고 말지만. 내가 쓴 편지에서, 가장 가슴 아팠던 문구는, '이제는 많은 것들이 달라져 버렸지만'이라는, 부언이었다. 분명히 그렇다. 어떤 슬픔이나 아픔의 존재와, 그것을 '인식'하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다. 이를테면 나..
문득, 이전 게시판을 훑어 보게 되었다. 딴은, 재미도 없는 '여성론'이라는 책을 읽는게 지겨워서 였지만, 또 들녘 홈페이지의 디자인이 식상해져서 새로운 업데이트를 해볼까 라는 생각에 빠져있었기 때문이었다. (나는 사소한 일에 곧잘 집착을 한다) 1999년 5월 27일, 규열이의 첫번째글, '내가 첫번째다'라는 글을 시작으로 첫번째 게시판 272개, 두번째 게시판 75개, 현재 게시판 767개의 게시물이 '들녘 홈페이지, 문리대 앞 벤치'에 올라와 있다. 그러니까, 총 1114개의 게시물이다. 그리고, 그렇게 1년이 지나고, 나는 또 한 살을 먹었다. 작년 이맘때, 들녘 홈페이지를 만들겠다고, 밤을 새웠고, 정화를 붙들고, 문리대 7층 전산실에 올라가 나모 웹에디터를 가르치고 텍스트화일을 html 화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