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cent Posts
Recent Comments
«   2025/01   »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31
관리 메뉴

시간의재

우는 여자 모티브 본문

단상

우는 여자 모티브

물고기군 2000. 4. 1. 22:46
어쩐 일인지 최근에 두 번이나 '우는 여자'를 보았다. 둘 다 집으로 가는 전철에서 였는데, 첫 번째는 늦은 밤 막차에서였다. 난 전철을 타면 항상 문 곁의 의자등받이에 기대어 선다. 여자는 맞은편에 있었다. 전화를 걸고 있었고, 듣기만 했다. 전화를 끊고 몇 분 뒤, 여자는 자신도 모르는 채로 눈물을 흘렸다. 적어도 내겐 그렇게 보였다. 볼을 타고 흐르는 눈물을 느낀 뒤에야, 자신이 울고 있다는 걸 깨달은 것처럼 말이다.

두 번째는 며칠 전이었는데, 전철 안이 아니라 전철을 기다리는 역에서였다. 바지 주머니에 양손을 찔러 넣고, 내릴 역에서 바로 계단으로 이어지는 위치를 가늠하면서 성큼성큼 걷는데, 문득 눈물을 흘리는 여자를 보았다. 오래 울어서 눈은 퉁퉁 불어 있었고, 얼굴을 붉고, 번지르르 했다. 난 멈추지 않고 여자를 지나친다. 세 네 발짝 더 걸은 뒤에, 멈춰 서 담배를 물고 불을 붙였다. 여자의 옆모습을 힐끔 힐끔 쳐다보면서, 나는 '우는 여자'에 관해 생각하기 시작했다.

세상의 여자들은 왜 우는 걸까? 나는 그녀에게 물어본 적이 있다. 정말 바보같은 질문이었지만, 잔인하게도 나는 우는 여자에게 '왜 울지?'라고 물었던 것이다.

어딘가에 나를 위해 울어주는 여자가 있으면 좋겠다. 사람이 외로운 이유는 원래 '외롭지 않기' 때문일까? 외로움이 사람의 본질적 속성이라면 그다지 힘들지 않을텐데. 원래 사람은 외롭지 않아야 하는 걸까? 외롭다는 것은 결핍인 걸까?

언제 단 한번이라도, 나, 누군가를 위해 울어본 적이 있던가? 아무리 기억을 헤집어봐도, 없다. 새삼스레 내가 얼마나 이기적인 인간이었던지 알겠다.

순식간에 소설 한 편을 구상했다. 소설의 제목은 '우는 여자 모티브'. 그 소설의 첫문장은 이렇다. 너희도 알겠지만, '우는 여자 모티브'라는 게 있어. 그 모티브는, 세계의 모든 설화, 신화, 동화에서 공통적으로 발견되고, 심지어 현대에 이르러서도 그 모티브는 끊임없이 변용되지. 그렇다. '우는 여자 모티브'라는 소설은, '우는 여자 모티브'에 관한 철학적 사회학적 성찰이 될 것이다.

세상의 모든 '우는 여자'에게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나는 그 이유가 궁금한 것이다.

'단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유기체의 꿈  (0) 2000.04.18
슬로건  (0) 2000.04.08
기시감  (0) 2000.03.31
오후 네 시, 열람실  (0) 2000.03.29
디펜스  (0) 2000.03.28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