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의재
소설 '아파트' 조금 수정해서 다시 올렸습니다. 초반부를 좀 다듬고, 불필요한 부분을 삭제했습니마. 원고지 약 8매 정도가 줄었습니다.
아홉수가 두개나 겹쳐서 그럴까요. 물고기통신 99호를 쓰고 나서 다음호 - 바로 이글을 쓰기까지 퍽 오랜 시간이 걸렸군요. 그동안 제게는 여러 일들이 있었는데, 그 중에는 단순히 여러 일이 아니라 어떤 면에서는 제 인생에 있어 중요한 일이라고 여길 만한 일도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하지만 생각해보니, 그리고 이제 돌이켜보니 그것은 그저 여러 일 중의 하나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아니면 어떤 일도 여러 일 중의 하나가 아닌 거겠지요. 그만큼 마음의 여유가 없었던 탓이겠지만, 한편으로는 그저 ‘내 자신이 이제 누군가에게 뭔가를 말한 만한 인간이 못된다.’는 이상한 - 아니, 당연한 자괴감에 사로잡혀 있었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그렇다면 ‘예전의’ 나는 그럴만한 인간이었던 걸까요. 만일 그렇다면 저는 그만 지금 이곳..
여자친구를 바래다주고 혼자 집으로 돌아오는 길을 참 좋아했습니다. 물론 이것은 100퍼센트의 진실은 아닙니다. 언제나 좋았던 것은 아니겠죠. 모든 연애가 그렇듯이 말입니다. 하지만 가장 안 좋았던 때에도 마치 고속도로처럼 한길로 쭉 뻗은 밤의 도로와 노란 가로등과 그리고 창을 열면 금새 끼쳐드는 밤의 냄새 등은 제 마음을 한껏 고무시킵니다. 저는 마음을 풀어놓습니다. 표지판을 볼 필요도 없습니다. 미리 차선을 바꿔놓고, 느긋하게 핸들을 붙잡고 있습니다. 때로 비가 내리기도 합니다. 바람이 심하게 부는 날도 있죠. 공기가 너무 차가워서 창을 열지 못할 때도 있습니다. 그러면 아쉽지만 밤의 냄새는 없습니다. 요컨대 저는 그녀와 함께 몇 개의 계절을 보냈던 것입니다. 그것은 제 인생에서 그렇게 많지 않은 소중..
솔직히 고백하면 대개 집에서 빈둥거리며 시간을 보내는 참 한심스러운 백수 짓을 하고 있는 요즘이지만, 오늘은 유독 더 한가하게 시간을 보내고 있다는 느낌이 드는군요. 아, 참 한가하구나, 싶은 기분이 들었고, 이거 참 오랜만이네 생각하다가, 사실은 그렇지 않다는 위의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그래도 요 며칠간 벌써 여름이 온 듯 햇빛이 쨍쨍하다가 이렇게 비가 내리는 우중충한 날씨를 맞으니 기분은 새롭군요. 어찌어찌 공짜로 얻게 된 와인을 마시고 있습니다. 지금. 이 홈페이지는 확실히 조금씩 시들해지는 기분이 듭니다. 무엇보다 홈페이지의 주인이, 한 없이 늘어져서 정신 못 차리고 있는 탓이기도 하지만, 무슨 일이든 결국 시간이 흐르면 조금쯤은 퇴색되기 마련이겠죠. 그래서 아마도 오랜 시간 한 자리에서 꾸준하게..
‘추억하기 위해서 사랑하는 것은 아니다.’영화 ‘반지의 제왕’을 보면 이런 대사가 나옵니다. (몇 편인지는 모르겠지만.) ‘추억하기 위해서 사랑하는 것은 아니다.’ 그렇담 무엇을 위해서? 때로 아주 즐겁고 행복한 시간을 보내고 있다고 느낄 때가 있습니다. 아주 분명하게, 아 이건 정말 행복하구나, 라고 말이죠. 거기에는 많은 생각들이 뒤따르기도 하고, 다른 감정들이 섞여 있기도 합니다. 이를테면 두려움 같은 거죠. 하지만 금방 그런 건 신경 쓰지 말자고 생각합니다. 또 생각을 하는 거죠. 저는 그 시간들이 분명 추억이 될 거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모든 시간은 과거가 되는 것처럼. 어떤 노력을 통해서, 때로 용기와 결단력, 더해서 운이 따라 주었기 때문에, 그 ‘행복한 시간’을 갖게 되는 경우도 있지만..
해질 무렵에 서울 역에 갔었습니다. 열차를 타러 간 건 아니었고, 다른 일 때문이었죠. 기억을 더듬어보면 제가 서울 역에서 열차를 타거나 내린 적은 거의 없었던 것 같습니다. 여행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대개는 집에서 가까운 고속버스를 이용하거나 MT 때마다 청량리 역을 이용했었죠. 아니면 단지 기억하지 못할 뿐인지도 모릅니다. 다만 군에 입대하던 날 논산행 열차를 탔던 기억만은 선명합니다. 어머니가 저를 서울 역까지 데려다 주었고, 그 다음부터 논산까지는 친구들이 함께 해주었죠. 무궁화 열차를 탔었는데, 좌석 시트가 부드러운 촉감의 붉은 색 우단이었습니다. 다시 찾은 서울 역은 제게 전혀 새롭게 보였습니다. 물론 실제로 달라진 것이죠. 고속철도 개통에 맞춰 현대식의 새 역사가 들어..
인간이란 자신이 그것을 하지 않아도 된다면 하지 않고, 또한 그것을 할 수 있다면 원하지 않아도 행하는 존재라는 생각이 든다. 이를테면 선한 행위(친절)란 악한 행위의 비가능성(금지)에 이끌리고, 악한 행위(불친절)란 악한 행위의 가능성(허용)에 이끌리는 식이다. 그러나 이 조합은 가능한 모든 경우를 포함하지 않는 지도 모른다. 이것은 인간 행위의 뿌리라 여겨지는 욕망에 관한 새로운 관점을 제시하는데, 욕망이란 비가능성(금지)이나 가능성(허용)을 통해서 촉발되고, 전혀 자발적인 것이 아니라는 견해를 표방한다. 그러므로 가능성(비가능성)에 지배받는 인간에게 순수한 욕망과 선한 의도, 그리고 그것이 이끈다고 믿는 숭고한 행위 같은 것은 처음부터 있지도 않은 일인지도 모르지. - 방명록에서
일요일, 한 시간 한 시간 해야 할 일을 미루면서 계속 티브이 채널만을 돌리다가 ‘연인’이라는 노래의 뮤직비디오를 보게 되었습니다. 토이의 객원가수로 이름을 알린 김연우의 독집 앨범에 수록된 곡으로 모르긴 몰라도 이 역시 유희열의 곡이라 짐작됩니다. 뮤직비디오는 다큐멘터리 형식으로 실제 여러 쌍의 연인들이 등장하고 있습니다. 이건 마치 ‘해리가 샐리를 만났을 때’와 비슷합니다. 영화를 본 분이라면 쉽게 연상하실 거라 믿습니다만, 한 쌍 한 쌍 차례로 인터뷰가 진행됩니다. 여자가 말을 하거나 남자가 말을 합니다. 그 동안 둘은 꼭 붙어 앉아서 손을 잡고 있거나 어깨를 감싸 안고 있거나 말하는 상대방의 얼굴을 정말 사랑스럽다는 얼굴로 바라보고 있습니다. 가만히 상대방의 말을 듣기만 하는 커플도 있고, 맞장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