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의재
나는 물론 많은 사람들이 행복해지길 바란다. 물론 무엇보다 내 주변에 내가 아는 사람들이 행복해지길 바란다. 그리고 물론 무엇보다 내 자신이 행복해지길 바란다. 이건 아주 당연한 얘기겠지만, 이 모든 행복들을 나는 처음에 아주 단순하게 생각했다. 그러나 물론 이 모든 행복들은 서로 연결되어 있는 것 같다. 그러니까 내 주변의 사람들이 모두 불행한데 나 혼자 행복할 수는 없는 노릇인거다. 이건 아주 당연한 얘기지만, 이제 그 ‘연결되어 있음’에 집중해보면 전혀 새로운 가능성들이 생겨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당연한 얘기가 전혀 당연하지 않은 결론으로 이끌어진다. 이를테면 며칠 전 티브이에서 현대의 도인들에 관한 다큐멘터리가 나왔는데, 그들은 깊은 산속에 혼자 살고 있다. 17년간 지리산의 어느 토굴 속에 살..
이것은 ‘공포증’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예전에 케이블 티브이를 통해 ‘공포증’을 다룬 다큐멘터리를 본 적이 있습니다. 처음부터 본 것은 아니고, 저는 공포증의 한 가지 사례만을 보게 되었습니다. 그녀는 ‘깃털’을 두려워합니다. 그래서 ‘새’도 두려워합니다. 하지만 새는 어디에나 있습니다. 그녀에게는 딸이 하나 있는데, 그녀의 소원은 딸을 데리고 외출을 하는 것입니다. 결국 유명한 심리치료사를 찾게 됩니다. 이제 화면은 그 심리치료사의 치료실을 비쳐줍니다. 치료실은 마치 인문학교수의 연구실이거나 서재처럼 보입니다. 치료사는 그녀에게 모든 각오가 되어 있냐고 묻습니다. 그녀는 그렇다고 대답합니다. 저는 삼십 년이 넘도록 깃털을 무서워했어요. 이제는 벗어날 때가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치료사는 책상 위에 있는,..
내가 더 어리고 마음의 상처를 입기 쉬웠던 시절, 아버지는 나에게 충고를 해주셨는데, 나는 그 말씀을 그후 줄곧 마음속에 되뇌어왔다. ‘네가 남을 비판하고 싶을 때는 언제든지 이런 걸 생각하거라. 이 세상의 모든 사람이 네가 가졌던 그런 유리한 처지에 있지 못했다는 걸 말이야’ 하고 그는 나에가 말했었다. - 스콧 피츠 제럴드 “위대한 개츠비” 중에서
일행이 전부 넷이어서 택시의 뒷자리에 셋이 타야했다. 나는 가장 나중에 탔다. 이동하는 동안 그녀는 내게 바싹 붙어 있었고, 무릎 위에 올린 내 손을 잡고 있었다. 우리들은 술에 취해 있었고, 나를 제외한 셋은 목소리를 높여 떠들고 있었다. 나는 가만히 그들의 얘기를 들으며, 가끔씩 맞잡은 손에 힘을 주었다. 그러면 그녀는 고개를 돌려 나를 보며 무슨 일이냐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나는 그녀의 그 표정이 지금도 선명하게 떠오른다. 택시는 목적지를 향해서 계속 달리고 있다. 밤은 깊고, 차내는 어두컴컴했지만, 그녀의 얼굴만은 아주 환하게 보인다. 확실히 그녀는 취해 있었고, 나는 자꾸만 술이 깨었다. 이윽고 그녀는 다시 고개를 돌려 대화에 참여한다. 나는 더 이상 손에 힘을 주지 않았다. 대신 가만히 내 ..
David Waldstein, Star Ledger, 2003년 6월 22일주심이 그의 두번째 투구시에 두번째 보크를 선언했을때, 무언가 조치가 강구되어야 했다. 한국에서 온 당시 20살의 서재응 선수는 당황했고 점점 격분하고 있었다. St. Lucie Mets의 투수코치 Bob Stanley는 그를 돕기 위해 마운드로 걸어 올라갔다. 그러나 Stanley는 한국어를 할 수 없었고, 서재응 선수는 영어를 하지 못했다. 결국, Stanley는 덕아웃과 스탠드에서 사람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그 자신이 직접 무언의 연극을 펼치면서 설명을 해주어야 했다. 그 광경은 야구에서 쉽게 볼 수 없는 코메디 였으나, 머나먼 이국 땅에서 혼자만의 야구인생을 개척하고 있던 외국인 신출내기에게는 잊을 수 없는 창피하고 기묘한..
모두들 안녕하십니까? 어쩐지 또 굉장히 오랜만에 이렇게 인사를 드리는 것 같습니다. 그동안 역시 많은 일들이 있었지만, 물론 그 중에는 상당히 불미스러운 일도 있었고, 지나고 나면 웃어버릴 일들도 있었지만, 또 이렇게 떠올려보면 그렇게 많은 일들이 아닌 거겠죠. 아쉽게도 굉장히 신나고 재미있는 일은 없었지만, 이제 그런 일을 기대하기에는 제가 나이를 너무 많이 먹은 것 같습니다. 지금 듣고 계신 음악은 - 만일 들을 실 수 있다면 말이죠. - 임현정의 ‘Caffeine’이라는 곡입니다. 이상하게도 가사 중에는 Caffeine이라는 단어는 나오지 않는군요. 대신 ‘커피 향’이니 ‘중독’이라는 말이 나오는데, 그렇다 해도 Caffeine이라는 제목은 좀 뜬금없다는 생각이 듭니다. 전번에는 역시 같은 가수의 ..
“우리의 생활은 전쟁과 같았다. 우리는 그 전쟁에서 날마다 지기만 했다.” 이것은 제가 고등학교 때 읽었던 소설의 한 구절입니다.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의 일부입니다. 그 시절 이것은 문학적 표현에 불과했습니다. 이 문장도, 또 이 문장을 포함하고 있는 소설전체도 참 좋았고, 감동스러웠지만, 제 자신이 과연 그 모든 것들을 마음 깊이 받아들일 수 있었느냐 하면 분명 그렇지는 않았습니다. 마음 깊이 공감한 것은 아닙니다. 소설에 문제가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소설에 힘이 부족했다든지 하는 문제가 아닙니다. 문제는 제 자신이었고, 제가 겪었던 경험과, 그 경험을 바탕으로 한 실제적인 세계의 인식입니다. 우리의 생활은 전쟁과 같다, 라는 표현자체는, 그 시절의 제게, 또 아마 지금의 제게도, 일부의 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