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의재
저는 여행을 좋아하지 않는 인간입니다. 게으른 탓이기도 하고, 낯선 환경을 두려워하는 탓이기도 합니다. 그래도 어쩌다 별로 원하지 않는 일이지만 여행을 하게 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러면 참 신기하게도 좋습니다. 물론 떠나오길 잘했다며 손뼉을 치며 좋아하게 되는 건 아니고 대개 여행이 끝나거나 거의 끝날 때쯤에야 이건 참 좋은 일이었구나, 슬며시 웃게 되는 정도이지만 말입니다.몇 년 전에 여행을 하는 도중에 인터넷을 이용했던 적이 있습니다. 여행을 떠나고 약 십 일 정도 지난 뒤였는데, 당시는 제 홈페이지뿐만 아니라, 다른 여러 홈페이지에도 글을 열심히 올리던 시절이었습니다. 글을 올리고 답글을 받고, 또 거기에 답글을 달고, 또 다른 사람의 글도 열심히 읽던 시절이었습니다. 이를테면 지금과는 달리 정기..
수많은 사람들 속에서 그대와 내 모습뿐이죠 단하나 문제는 그대의 맘속 어떤지 모르는 것 절실한 사랑을 보여도 그대는 아는 둥 마는 둥 내 맘에 조그만 파랑새 그렇게 날아가도 몰라 내 맘속 작은 왕궁 속에는 그대와 나 둘이 살고있어요 내가 그대에게 볼을 기대면 그대는 입맞춤 함께 웃어봐요 함께 울어봐요 모든 느낌 우리 함께 나누죠 부푼 꿈을 안고 우리함께 하면 행복 그건 우리 이야기 함께 웃어봐요 함께 울어봐요 기쁨슬픔 모두 나눠야지요 위에 가봤나요 왜 또 웃고 말죠 그댄 정말 정말 메롱 * 우연히 듣게 된 음악인데, 참 좋죠? 메롱송이라고 합니다. 새해가 밝았습니다. 모두들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항상 건강하세요. 메롱. ^^
가끔 내 자신의 이야기가 다른 사람의 이야기 속에서 전혀 잘못된 이야기가 되어버리는 경험을 하고는 한다. 처음에 나는 그것이 오해이거나 아니면 일시적인 착오라고 여겼다. 적어도 나는 내 이야기 속에서 전혀 잘못된 점을 발견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나의 이야기와 다른 사람의 이야기는 자꾸 어긋나기만 한다. 어긋남이 커질수록 내 이야기의 잘못된 점이 드러난다. 나는 이제 그것을 안다. 매우 속이 상하는 일이고,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내 이야기는 잘못되었다. 그 잘못은 다른 사람의 이야기 속에 있는 것이 아니라, 내 이야기 속에 있다. 그것은 오해이거나 착각이 아니다. 나의 이야기는 아주 유치하고 치졸한 것이며, 이야기될만한 가치도 없는 것처럼 느껴진다. 나의 이야기로 인해 누군가는 ..
나는 사람의 몸이 어디서부터 늙는지 그녀를 통해 알게 되었다. 목이었다. 나는 나중에, 겨울이 되어서야 그 사실을 알게 되었는데, 겨울이 되었을 때 나는 비로소 안심할 수 있었고, 그녀에게 목도리를 선물했다. 물론 늙는다는 것 자체는 누구에게나 공평한 것이어서 비극적인 요소는 거의 없다고, 처음에 나는 생각했다. 하지만 누구나 알다시피 인생은 날 때부터 불공평한 것이고, 그녀는 참 미인이었던 것이다. 나는 짧은 여행에서 돌아와 그녀의 사진들을 보았다. “똑같지 않아요?” 그녀는 말했다. “거의 달라지지 않은 것 같은데…” 나는 그녀가 무슨 뜻으로 그렇게 말했는지 알 것 같았다. 나는 특별히 더 예쁘게 나온 그녀의 사진들을 골라 테이블 위에 늘어놓았다. 그리고는 잠시 후 다시 원래의 사진들 속에 섞어 넣었..
그것은 킬고어 트라우트의 였다. 그 책은 외계에서 온 어떤 방문객에 관한 이야기였는데, 그건 그렇고, 그 방문객은 트랄화마도르 인과 매우 흡사하게 생겼다. 외계에서 온 그 방문객은 기독교에 관해서 진지한 연구를 했는데, 할 수만 있다면, 기독교인들이 왜 그렇게 쉽게 잔혹해질 수 있는가를 알아보기 위해서였다. 그는 적어도 그 두통거리의 일부분은 신약 성경의 아무렇게나 해놓은 이야기 때문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그는 복음서의 의도는, 다른 것도 있겠지만, 사람들에게 낮은 자 중의 낮은 자에게조차 자비를 베풀라고 가르치는 것이라고 추측했었다. 그러나 복음서들은 실제로 이것을 가르쳤다. ‘누군가를 죽이기 전에, 먼저 그 자가 좋은 연줄이 없다는 것을 반드시 확인해라.’ 그렇게 가는 거다. 외계에서 온 방문객은, ..
언젠가 제가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던가요? 무엇도 삶 그 자체보다 더 클 수 없다. 저는 이 말을 때로 제 자신의 어떤 괴로움을 무마하기 위해, 또는 누군가의 괴로움을 위로하기 위해 사용하고는 했습니다. 내가 잃어버린 것은, 그리고 네가 잃어버린 것은 삶에 포함된 무언가일 뿐이고, 여전히 삶은 여기에 있다고 말입니다. 물론 이때의 삶은 우리가 흔히 목숨이라고 하는 생명을 포함하는 개념이지만, 단지 그뿐인 것만은 아니겠지요. 단지 살아있다는 것으로, 목숨을 부지하고 있다는 것만으로 모든 게 충족되지는 않을 것입니다. 하지만 무엇도 삶 그 자체보다 더 클 수 없다고 해서, 어떤 추구들이 가치 없는 것은 아닙니다. 어떤 바람들이 헛된 것은 아닙니다. 사람들은 여러 말들을 합니다. 저는 그 말들을 듣고, 다시금..
제가 ‘이루마’라는 음악가를 처음 알게 된 건 꽤 오래전의 일이었습니다. 정확히는 잘 알 수 없군요. 하여간 저는 그의 음반을 하나 가지고 있습니다. 그는 흔히 ‘뉴에이지 피아니스트’라고 불립니다. 그러나 꽤 오래전에 구입한 그의 음반은 사실 저의 흥미를 불러일으키지는 못했습니다. 몇 번 듣지도 않았지요. 음악보다는 그의 개인적인 약력, 배경 등이 그의 가치를 과장하고 있다고도 생각했습니다. 한국인 최초로 어쩌구 저쩌구, 천재 음악가 등등. 게다가 기억하는 분도 있을 런지 모르겠지만, 모 이동통신 서비스 티브이 광고에도 나왔더랬죠. 화상전화를 통해, 형 들어봐, 하는 식의 광고였습니다. 제가 원래 속이 좁아서 그런지 대개 그러한 친구들을 대할 때면, 어디 얼마나 잘하나 보자 싶어서 어디 깎아내릴 구실이 ..
며칠 전에 무지개를 본 적이 있습니다. 무지개를 본 것은 참 오랜만이었습니다. 기억을 더듬어보면 제가 마지막으로 무지개를 본 것은, 제가 학과사무실에서 조교를 하던 시절, 여름이었습니다. 그러니까 그것은 2000년 여름이었고, 그때는 아직 제 나이도 스물여덟이었죠. 이렇게 정확하게 기억하는 이유는 그날의 일을 저는 문장으로 적어놓았기 때문입니다. 그 문장은 이 홈페이지의 ‘단상’에 ‘아름다운 것’이라는 제목으로 올려져 있습니다. 무지개를 볼 때면 저는 항상 제 곁에 누군가가 있어서, 그 사실을 알려줄 수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그것은 아마 어떤 좋은 풍경들을 함께 보고 싶어 하는 단순한 마음에서 비롯된 거겠죠. 또 무지개란 것이 흔히 볼 수 있는 것도 아니고, 게다가 오래 머무르지 않고 금방 사라지기 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