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의재
물고기통신 90 - 무지개를 보는 것 본문
며칠 전에 무지개를 본 적이 있습니다. 무지개를 본 것은 참 오랜만이었습니다. 기억을 더듬어보면 제가 마지막으로 무지개를 본 것은, 제가 학과사무실에서 조교를 하던 시절, 여름이었습니다. 그러니까 그것은 2000년 여름이었고, 그때는 아직 제 나이도 스물여덟이었죠. 이렇게 정확하게 기억하는 이유는 그날의 일을 저는 문장으로 적어놓았기 때문입니다. 그 문장은 이 홈페이지의 ‘단상’에 ‘아름다운 것’이라는 제목으로 올려져 있습니다.
무지개를 볼 때면 저는 항상 제 곁에 누군가가 있어서, 그 사실을 알려줄 수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그것은 아마 어떤 좋은 풍경들을 함께 보고 싶어 하는 단순한 마음에서 비롯된 거겠죠. 또 무지개란 것이 흔히 볼 수 있는 것도 아니고, 게다가 오래 머무르지 않고 금방 사라지기 때문이기도 할 겁니다. 하지만 그렇게 또 짧은 시간만은 아닐 겁니다. 적어도 곁에 있는 누군가에게 무지개가 있는 방향을 알려주고, 그가 그것을 발견하고 나처럼 즐거워하며, 함께 그것을 보고 있다는 좋은 기분을 나눌 수 있을 정도의 시간은 됩니다. 그 정도면 충분하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은 얼마만한 시간일까요? 십분, 이십분? 아마 지식인 검색창에서 무지개하고 치면 그 정확한 시간, 평균적인 시간을 알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제게는 역시 충분하다고 생각됩니다. 좋은 시간들은 아무리 부족해도 충분합니다. 그것은 그렇게 긴 시간을 필요로 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저는 그것을 언제까지나 기억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더욱 중요한 것은, 그것을 당신도 기억하기 때문입니다. 아주 오랜 시간이 흘러서 이제 제 곁에 아무도 없는 시간이 와도, 언젠가 우리가 함께 그것을 보았다는 사실이 당신의 기억 속에 있다면, 그것은 언제나 충분한 시간입니다. 제가 먼저 발견하고 당신이 보았습니다.
지금 듣고 계신 음악은, ‘Steve Barakatt’의 ‘Rainbow Bridge’입니다. 너무 뻔한 선곡인 듯하지만, 음악은 좋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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