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의재
물고기통신 91 - 이루마 '강아지똥' 본문
제가 ‘이루마’라는 음악가를 처음 알게 된 건 꽤 오래전의 일이었습니다. 정확히는 잘 알 수 없군요. 하여간 저는 그의 음반을 하나 가지고 있습니다. 그는 흔히 ‘뉴에이지 피아니스트’라고 불립니다. 그러나 꽤 오래전에 구입한 그의 음반은 사실 저의 흥미를 불러일으키지는 못했습니다. 몇 번 듣지도 않았지요. 음악보다는 그의 개인적인 약력, 배경 등이 그의 가치를 과장하고 있다고도 생각했습니다. 한국인 최초로 어쩌구 저쩌구, 천재 음악가 등등. 게다가 기억하는 분도 있을 런지 모르겠지만, 모 이동통신 서비스 티브이 광고에도 나왔더랬죠. 화상전화를 통해, 형 들어봐, 하는 식의 광고였습니다. 제가 원래 속이 좁아서 그런지 대개 그러한 친구들을 대할 때면, 어디 얼마나 잘하나 보자 싶어서 어디 깎아내릴 구실이 없나 찾기에 급급해집니다. 또 사실 뉴에이지 음악이라는 장르에 대해서 어느 정도 얕잡아 보는 경향도 가지고 있었습니다.
이런 저런 이유로, ‘이루마’라는 음악가는, 그 이름 참 예쁘다, 정도에서 저의 관심 밖으로 밀려났었습니다. 그런데 얼마 전 우연히 티브이 음악 다큐멘터리에서 그를 다시 보게 되었습니다. 극심한 음반업계의 불황과 비록 클래식보다는 더 대중적이라는 뉴에이지 음악이라 하더라도 어쨌든 별로 사람이 들지 않는다는 연주회임에도 불구하고 최근의 그의 지방순회공연이 성공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다는 점을 다큐멘터리는 보여주고 있었습니다. 저는 역시 조금 불편한 심기로 시큰둥하니 화면을 쫓고 있었죠. 사람이 든다 말이지, 하면서 말이죠. 그런데 화면을 통해 그의 얼굴을 보고, 그의 목소리를 들으면서 조금씩 마음이 달라졌습니다. 사람이란 게 참 간사하죠. 눈에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니란 걸 알면서도, 세상에는 호감이 가는 얼굴이란 게 있는 겁니다. 참 착한 얼굴과 착한 목소리를 가지고 있구나 싶었습니다. 그리고 지금 이 음악 - 역시 들으실 수 있다면 말이죠. - 을 듣게 되었습니다. 제목은 ‘Dream’으로 “강아지똥”이라는 클레이 애니메이션 OST에 수록되어 있다고 합니다. 역시 참 착한 음악이라는 느낌이 듭니다. 그리고 오늘 다시 이 음악을 ‘이 산은 우리 산이야’라는 시청자 다큐멘터리에서 듣게 되었습니다. 거기서는 아이들이 합창으로 이 노래를 부르고 있었죠.
‘강아지똥’은 알고 보니 굉장히 오래전 그러니까 1969년도에 지어진 어린이창착동화였습니다. 작가 이름은 잊어버렸는데, 검색을 해보니 지금도 그 책은 팔리고 있었습니다. 저는 한 권 사볼 생각인데요. 물론 애니매이션도 말이죠. 내용은 쉽게 짐작할 수 있듯이 ‘강아지똥’이 주인공입니다. 놀랍지 않습니까? 강아지똥이 주인공인 동화가 있다니 말이죠. 그것도 제가 태어나기도 전인 1969년에 말이죠.
이 노래의 가사는 참 단순합니다. 처음에는 뭔가 하나의 이야기가 있을 것 같아서 유심히 들어보았는데, 말 그대로 몇 자 되지도 않습니다. 그것이 계속 반복되죠. 그럼에도 듣고 있으면 정말로, 제 손에 담긴 별들을 놓쳐 버릴까봐 걱정하는 한 아이의 모습이 아주 선명하게 떠오릅니다. 그리고 너무 뻔한 얘기 같지만 그 아이의 모습은 바로 어린시절 제 자신의 모습이었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분명 저 역시도 쉽게 놓쳐 버릴까봐 걱정되는 무언가를 손에 쥐고 있었던 거겠죠. 그게 무엇이었을까요? 물론 이제는 기억나지 않습니다. 그래서 그 아이는 결국 그것을 놓쳐버렸을까요? 이런 생각은 분명 어떤 의미에서는 제 마음을 서글프게 합니다. 어쨌든 저는 더 이상 아이가 아니니까요. 지금 제 손에 뭐가 남아있는지는 차체하더라도 말입니다. 하지만 또 어떤 의미에서는 제 마음을 착하게 합니다. 나이가 들면서 여러 몰랐던 사실들을 알게 됩니다. 이전에는 미처 보지 못했던 것을 보게 되고, 보고 싶지 않았던 것도 보게 됩니다. 그리고 분명 보았던 것을 보지 못하게도 됩니다. 볼 수조차 없어집니다. 하지만 어쨌든 저는 아직 살아가고 있는 거니까요. 다시 제게 어떤 기회가 올 런지, 정말로 다시 제가 무언가를 손에 쥐게 될지 누가 알겠습니까? 다만 그때 제가 다시 걱정할 수 있을지, 다시 울 수 있을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제 귀에는 걱정 말라는 가사가, 마치 걱정하라는 듯이 들립니다. 울지 말라는 가사가, 마치 울라는 듯이 들립니다. 아이는 분명 저를 보고, 왜 아무 걱정을 하지 않는 거죠. 왜 울지 않는 거죠. 라고 말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동화 ‘강아지똥’에서 강아지똥은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난 더러운 똥인데, 어떻게 착하게 살 수 있을까?
아무짝에도 쓸 수 없을 텐데……”
걱정 마요 실망 마요 저 멀리서 별이 내려올 때
울지 말고 바라봐요 내 손에 담긴 작은 별들을
쉽게 놓쳐 버릴까봐 그만 놓쳐 버릴까봐
걱정 말고 믿어 봐요 나의 꿈을 잊지 마요 나의 꿈을
걱정 마요 실망 마요 저 멀리서 별이 내려올 때
울지 말고 바라봐요 내 손에 담긴 작은 별들을
쉽게 놓쳐 버릴까봐 그만 놓쳐 버릴까봐
걱정 말고 믿어 봐요 나의 꿈을 잊지 마요 나의 꿈을
쉽게 놓쳐 버릴까봐 그만 놓쳐 버릴까봐
걱정 말고 믿어 봐요 나의 꿈을 잊지 마요
걱정 말고 믿어 봐요 나의 꿈을 잊지 마요
울지 말고 바라봐요 나의 손에 담긴 작은 별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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