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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의재

물고기통신 87 - 임현정 '카페인' 본문

물고기통신

물고기통신 87 - 임현정 '카페인'

물고기군 2003. 6. 23. 18:58
모두들 안녕하십니까? 어쩐지 또 굉장히 오랜만에 이렇게 인사를 드리는 것 같습니다. 그동안 역시 많은 일들이 있었지만, 물론 그 중에는 상당히 불미스러운 일도 있었고, 지나고 나면 웃어버릴 일들도 있었지만, 또 이렇게 떠올려보면 그렇게 많은 일들이 아닌 거겠죠. 아쉽게도 굉장히 신나고 재미있는 일은 없었지만, 이제 그런 일을 기대하기에는 제가 나이를 너무 많이 먹은 것 같습니다.
지금 듣고 계신 음악은 - 만일 들을 실 수 있다면 말이죠. - 임현정의 ‘Caffeine’이라는 곡입니다. 이상하게도 가사 중에는 Caffeine이라는 단어는 나오지 않는군요. 대신 ‘커피 향’이니 ‘중독’이라는 말이 나오는데, 그렇다 해도 Caffeine이라는 제목은 좀 뜬금없다는 생각이 듭니다. 전번에는 역시 같은 가수의 ‘사랑은 봄비처럼, 이별은 겨울비처럼’이라는 노래를 소개해드렸는데, 아쉽게도 전파를 많이 타지 못하고 금방 들어가 버렸습니다. 어째서 제가 좋아하는 노래나 가수는 별로 인기를 못 얻는지 모르겠습니다. 이번 곡도 전번 곡과 흡사한 분위기입니다. 뭐랄까, 스트레이트하고 정직한 느낌이 듭니다. 어찌 보면 너무 정직해서 유치한 느낌이 들 수도 있지만, 저는 좋습니다. 음악적인 면은 전문가가 아니라서 말하기 뭣하지만, 악기 편성도 어쿠스틱acoustic하죠. 그 탓인지 몰라도 오늘처럼 날이 흐리고 비가 오는 날에 듣기에는 더욱 안성맞춤인 것 같습니다. 비 냄새와 잘 어울리는 음악입니다.
저는 그것이 무슨 일이든지 간에, 지나고 나면 언제나 그 일은 하나의 ‘이야기’가 된다고 생각합니다. 아니죠. 정확히 말하면, 그 일 자체가 곧바로 ‘이야기’가 되는 게 아니라, 그 일을 이야기로 만들어버리는 것이죠. 그것은 일종의 창작행위와 같습니다. 마찬가지로 창작행위는, 일종의 기억행위와 같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이것이든 저것이든, 언제나 그러한 정신작용을 통해서 어떤 일이 하나의 이야기가 되는 순간, 그 일은 사라지는 것입니다. 그것이 지나간 일이기 때문에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사라지기 때문에 하나의 이야기가 될 수 있습니다. 미묘한 문제이지만, 그 선후관계에 대해서 저는 확신하고 있습니다. 즉, 이야기 속에는, 실제로 있었던 일, ‘진실’이 담겨 있지 않습니다. 이야기는 언제나 거짓말입니다. 기억은 언제나 소설과 같습니다. 그런데 왜 갑자기 제가 뜬금없이 이야기에 대해 말하는 걸까요? 그래요. 그렇다면 ‘노래’는 무엇일까? 노래 또한 하나의 이야기인가? 노래또한, 실제로 있었던 일, 하나의 사실, 즉 물리적인 ‘소리’를 넘어선, 그 다음의 문제입니다. 거기에는 이야기와 마찬가지로, 의미 있는 음의 배열, 멜로디, 규칙이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이 이야기와 다른 점은, 부를 수 있다는 것입니다. 거기에는 창작행위, 그 다음이 있습니다. 수행이 있는 것입니다. 음, 얘기가 너무 깊이 들어가 버렸습니다. 이 주제에 대해서는 나중에 더 얘기할 기회가 있기를 바라며 성급하게 결론을 먼저 말하자면, 하나의 이야기가 노래가 될 때에만, 다시 그 이야기 속에는, 어떤 일, 실제로 있었던 일, 진실이 담길 여지가 생긴다는 것입니다. 진실된 이야기란, 그것이 열려있을 때만, 영원히 끝나지 않을 때만 가능합니다. 이야기는, 일찍이 아리스토텔레스가 ‘시학’에서 얘기했던 것처럼 처음과 중간과 끝이 있어야만 성립되지만, 그것의 성립조건을 스스로 어기면서 다시 우리 실제적인 삶, 이야기 속에 결코 포함될 수 없는 진실로 돌아올 때 노래가 됩니다. 그리고 그때에, 그것은 진실을 가리킬 수 있습니다. 반복이야말로, 제가 최근에 발견한 삶의 비밀 중 하나입니다. 반복이야말로, 노래의 성립조건인 셈이지요.  
자, 그럼 오늘의 노래, Caffeine을 가사를 음미하면서 다시 들어보도록 하죠. 어때요, 제 말이 그럴듯합니까? 볼륨을 키워보세요. 이제 아시겠어요. 사랑은 끝나지 않는 이야기인 거고, 그것을 사랑이라고 부를 수 있는 한, 사랑 또한 사는 일 중의 어떤 하나의 사건, 이야기 된 것에 불과합니다. 어떤 일도 전부이면서 부분인거죠.  중요한 건, 노래부른다는 것입니다. 반복하는 것입니다. 살아가는 거죠.

- 사랑했잖아. 우리 서로 아꼈잖아. 그랬었잖아. 내게 모두 줄 것처럼. 약속했잖아. 우리 서로 믿었잖아. 그랬었잖아. 영원할 것처럼. 사랑의 끝이 왜 이토록 쓸쓸해. 나의 마음은 단비내린 거리 같아. 우리 약속은 꽃잎처럼 흩어져. 이제 허무함만 남아. 사랑했다고 말하지마. 행복했다고 말하지마. 소중했다고 말하지마. 나에겐 위로가 안돼. 잊어달라고 말하지마. 이해하라고 말하지마. 지금 내겐 너무 아픈 일이야.

난 이미 너에게 중독된 것 같아. 나의 온몸에 너의 향기가 퍼져 너의 숨결이 내 가슴에 파고들어. 이제 돌릴 수 없어. 사랑했다고 말하지마. 행복했다고 말하지마. 소중했다고 말하지마. 나에겐 위로가 안돼. 잊어달라고 말하지마. 이해하라고 말하지마. 지금 내겐 너무 아픈 일이야.

하지만 커피 향처럼 기다려지는 너. 거울 속 내 모습처럼 익숙해진 넌 또 다른 나. 지워질 거라 말하지마. 잊혀질 거라 말하지마. 괜찮을 거라 말하지마. 나 아직 너를 사랑해. 잊어달라고 말하지마. 이해하라고 말하지마. 지금 내겐 너무 아픈 일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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