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cent Posts
Recent Comments
«   2025/01   »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31
관리 메뉴

시간의재

물고기통신 86 본문

물고기통신

물고기통신 86

물고기군 2003. 6. 6. 14:53
“우리의 생활은 전쟁과 같았다. 우리는 그 전쟁에서 날마다 지기만 했다.”
이것은 제가 고등학교 때 읽었던 소설의 한 구절입니다.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의 일부입니다. 그 시절 이것은 문학적 표현에 불과했습니다. 이 문장도, 또 이 문장을 포함하고 있는 소설전체도 참 좋았고, 감동스러웠지만, 제 자신이 과연 그 모든 것들을 마음 깊이 받아들일 수 있었느냐 하면 분명 그렇지는 않았습니다. 마음 깊이 공감한 것은 아닙니다. 소설에 문제가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소설에 힘이 부족했다든지 하는 문제가 아닙니다. 문제는 제 자신이었고, 제가 겪었던 경험과, 그 경험을 바탕으로 한 실제적인 세계의 인식입니다. 우리의 생활은 전쟁과 같다, 라는 표현자체는, 그 시절의 제게, 또 아마 지금의 제게도, 일부의 진실만을 포함하고 있는 것처럼 느껴집니다. 물론 우리의 생활은 어느 정도 그런 면이 있다, 라고 말입니다. 그것은 때로 부분의 문제가 아니라, 관점의 문제인 것처럼도 느껴졌습니다. 어떤 면에서 보면, 우리의 생활은 전쟁과 같다, 라고 말입니다. 아무튼 이것이든 저것이든 그러한 세계인식은, 인식 그 자체를 넘어서지 않았습니다. 관념적인 인식이고, 문학적 표현이고, 비유에 불과했습니다.
그런데 최근에는, 무슨 특별한 이유가 있는 것도 아닌데, 그것이 그렇지 않다 라고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그것은 부분의 문제도, 관점의 문제도 아니다. 그것이 이 세계의 실제 모습이다. 그것이 전부이고, 그것이 본질이다, 라고 말입니다. 우리의 생활은 전쟁과 같고, 이기느냐, 지느냐 라는 문제는 삶의 가장 본질적인 문제이다. 한 순간도 방심을 늦춰서는 안 된다. 어쭙잖은 선의는 패배와도 같다. 어떤 문제도 목숨을 걸어야 할 만큼 중요하고, 심각하고, 치명적이다. 이것은 앞서 말했듯이 제게 인식으로 다가온 결론이 아닙니다. 저는 문득 그렇게 느껴지는 것입니다. 마치 작은 동물이 본능적으로 위험을 감지하듯이 말입니다. 저는 위험에 노출되어 있습니다. 뭔가가, 저를 노리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특별한 상황이 아닙니다. 운이 나빠서 먹이감이 되는 것이 아닙니다. 위험이 일반적인 상황입니다. 평화가 특수한 상황입니다.
하지만 그러한 두려움, 공포, 비관적인 세계인식 자체는, 어찌된 일인지 모르겠지만, 저를 괴롭게 하지 않습니다. 제 마음은 한없이 고요합니다. 아마 그건, 제 자신이 이미 이 세계의 일부이기 때문일 것입니다. 제 자신 또한, 그것이 가능한 일이기만 한다면, 저보다 약한 짐승을 쫒아 달려갈 준비가 되어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물고기통신' 카테고리의 다른 글

물고기통신 89 - 공포증  (0) 2003.08.04
물고기통신 87 - 임현정 '카페인'  (0) 2003.06.23
물고기통신 85  (0) 2003.05.28
물고기통신 84  (0) 2003.05.14
물고기통신 83  (0) 2003.05.05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