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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의재
어쨌든 이로써 제 소설도 끝이 났습니다. 거의 반 년이상, 붙잡고 있었는데, 단지 끝이 났다는 것만으로도 참 다행스런 일이란 생각이 듭니다. 반 년이라고 했지만, 정작 컴퓨터 앞에서, 실제 문장을 쓴 시간은 그보다 훨씬 짧아지겠죠. 이를테면 거의 한 달 내내, 원고지를 기준으로 해도 채 10매를 쓰지 못한 시기도 있었고, 또 어떤 한달 내내 쓴 많은 분량의 문장을 그대로 버린 적도 있었습니다. 심지어 몇 주간은 아예 문장을 쓰지 못한 때도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와 반대로 단 며칠 만에 원고지 250매 정도의 분량을 미친 듯이 쓴 적도 있습니다. 하지만 어쨌든 끝이 났습니다. 소설이 긴 만큼, 또 붙들고 있던 시간이 긴 만큼, 이 소설에 대해 할 말도 참 많습니다만, 이제 생각하면 다 쓸데없는 말들이란 ..
갑자기 모든 것이 달라진다는 걸 믿을 수 있어? 마치 투명한 물에 한 방울의 파란 잉크가 떨어지듯이. 처음에는 아주 조그마한 변화인 것처럼 느끼지. 그건 그저 한 방울의 잉크고 뭐라 할 것도 없이 양적으로 물이 훨씬 더 많으니까. 게다가 지금껏 그것은 ‘꽤 오랫동안’ 투명한 채였던걸. 하지만 그 변화를 바라보면서, 또 때로는 저항하기도 하면서, 몸을 흔들면서 내쫓으려고 하면서, 사실은 그 모든 행동들이 오히려 잉크를 도와주고 있다는 걸 모르지. 하지만 정말로 중요한 것은 한 방울의 잉크가 투명한 물을 파랗게 만드는 것은 순식간이지만, 그것을 이전처럼 돌려놓기 위해서는 엄청난 시간이 필요하다는 거야. 불가능한 일은 아니야. 물에서 한 방울의 잉크를 뽑아내는 일이. 요컨대 ‘에너지’가 필요한 거야. 변화를 ..
여전히 나는 물이 무섭다. 수영이 싫다는 건 아니다. 수영장 가는 건 즐겁다. 그래도 역시 물속으로 얼굴을 담글 때마다, 그리고 반대편 풀사이드까지 간신히 가서 뒤돌아 섰을 때, 다시 가야 될 25미터의 풀을 볼 때마다 내가 물을 무서워한다는 걸 알겠다. 간단하게 말해서 내가 공기 중에 있을 때 나는 1분이고, 길게는 1분 30초나 2분까지도 숨을 참을 수 있다는 걸 안다. 실제로 그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물속에서는 30초도 있지 못하겠다. 몸이 뇌에게 신호를 보내는 것이다. 물밖으로 나가라, 숨을 쉬어라. 항상 이런 식이다. 25미터 풀을 몇 미터 남겨놓고 숨이 차오르기 시작한다. 중간에 멈출 때도 있지만, 그걸 참고 끝까지 갈 때도 있다. 그건 고통스러운 일이다. 그리고 고통스런 기억이 된..
초등학교 때 수영을 배웠다. 우리 때는 국민학교라고 했는데, 이 워드 프로그램에선 국민학교라고 쓰면 자꾸 초등학교라고 자동으로 바뀐다. 아무튼, 정확히 몇 학년이었는지는 모르겠다. 또 수영을 배우는 걸 내가 좋아했는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적지 않은 기간 수영을 배웠고, 나중에 친구들과 수영장 같은 델 가면 제법 잘하는 축에 속했다. 이상하게도 수영을 배우는 동안에 나는 특별히 친구가 없었다. 그러니까 처음부터 학교나 동네친구와 함께 배우러 다닌 게 아니다. 그렇다고 내가 아무하고도 말을 하지 않고 겉돌았다는 건 아닌데, 전혀 나와 어울렸던 또래의 아이들에 대한 기억이 없다. 대신 나보다 나이가 많았던 어떤 형에 대한 기억은 남아있는데, 뭐랄까 좀 잰 체하는 녀석이었다. 가슴팍도 넓고 몸매도 날렵했다. 그..
석 달치를 끊으면, 두 달은 공짜라는 말에 다섯 달을 헬스를 다니게 되었다. 등록하고 얼마 후 여자 트레이너가 기구 사용법을 알려주었다. 이제 이번 달로 다섯 달이 끝나게 된다. 얼마 전에, 그러니까 약 넉 달이 지난 즈음에, 열심히 기구를 들고 있던 내게 트레이너가 다가왔다. 처음에 나를 가르쳤던 트레이너였다. 잘하시는데요, 라는 말로 시작해서 내 자세를 교정해준다. 처음처럼 자세는 쉽지 않다. 그녀가 떠나고서 무게를 낮춰서 교정된 자세로 몇 번 들어본다. 그것은 이제껏 넉달 동안 내가 열심히 했던 자세와는 판이하게 달랐다. 며칠 뒤 나는 내가 넉 달 동안 전혀 쓸모없는 근육을 사용했다는 것을 알았다. 동시에 그 때문에 어깨가 아팠다는 것도 알았다. 제법 자세가 나왔고, 놀랍게도 거울에 비쳐 보니, 꼭..
사람들은 누군가 나쁜 선택을 했을 때, 그가 뭘 잘 몰라서 그랬다고 말한다. 이 말은 대개 맞을 수 있다. 하지만 언제나 맞는 건 아니다. 그리고 전부 맞는 것도 아니다. 많은 경우에 있어, 사람들이 그렇게 말을 하는 것은, 그 반대의 경우, 즉 잘 알고도 나쁜 선택을 하는 사람들의 존재를 두려워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두려움은 잘 알고도 나쁜 선택을 하는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두려움과 같은 것이다. 내가 누군가에 대해 평가를 내릴 때마다, 그 평가의 절반은 나 자신에게 향한다. 물론 잘 알고도 나쁜 선택을 하는 사람들이 뭔가가 두려워서 그랬다면, 여전히 뭔가를 잘 모르고 있는게 아닌가 라고 의심해볼 수 있다. 마치 자연재해를 신의 뜻으로 여겼던 조상들처럼. 기우제를 지내거나 제물을 바치는 행위가, 뭘..
흔히 말하기를 상상력은 무한하다고 한다. 그렇다면 현실과 상상 중에 어떤 것이 더 클까? 즉각적으로 대답하자면 당연히 상상이 더 크다. 왜냐하면 상상은 무한하니까. 어쨌든 현실은 유한하니까. 그런데 나는 최근에 어떤 사례가 떠올랐다. 이 사례가 현실과 상상에 대한, 또 그 크기에 대한 정면의 대답은 되지 못할 것이다. 그저 이런 '측면'도 있지 않을까, 싶은 생각이 들었다. 이를테면, 그러니까 예를 들면 말이다. 우리는 상상 속에서 섹스를 할 수 있다. 이건 비유적인 얘기가 아니라, 실제적인 행위 - 자위행위에 관한 것이다. 그리고 아마도 많은 사람들이, 실제의 섹스행위보다 자위행위의 경험이 더 많을 것이다. 이것은 비유적인 의미까지 포함할 수 있다. 그러니까 순전한 상상 같은 거 말이다. 우리가 티브이..
나는 배우 임창정을 좋아한다. 개인 임창정은 잘 모르겠다. 그가 출연한 영화중에는 괜찮은 것도 있고, 그저 그런 것도 있고, 왜 만들었는지 모를 영화도 있다. 하지만 가장 나쁜 영화에서조차 배우 임창정의 연기에는 뭔지 모를 울림이 있다. 그가 그만큼 연기를 잘한다고 할 수도 있겠지만, 때로 그건 잘한다 못한다는 문제가 아니라, 어떻게 그게 가능한지 임창정 본인조차 모를 ‘생득적’인 무언가가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가령 ‘일번가의 기적’이라는 영화를 보자. 이 영화는 그저 그런 영화일까? 관점에 따라 괜찮은 영화일 수도, 쓰레기 같은 영화일 수도 있을 것이다. 사회현실을 반영한 영화일 수도 있고, 오히려 그것을 감상적으로 어설프게 할리우드식으로 버무려 놓은 영화일 수도 있다. 나는 나름대로 괜찮았다고 생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