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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의재

물고기통신 116 - 수영 호흡법 본문

물고기통신

물고기통신 116 - 수영 호흡법

물고기군 2008. 9. 19. 23:46

여전히 나는 물이 무섭다. 수영이 싫다는 건 아니다. 수영장 가는 건 즐겁다. 그래도 역시 물속으로 얼굴을 담글 때마다, 그리고 반대편 풀사이드까지 간신히 가서 뒤돌아 섰을 때, 다시 가야 될 25미터의 풀을 볼 때마다 내가 물을 무서워한다는 걸 알겠다. 간단하게 말해서 내가 공기 중에 있을 때 나는 1분이고, 길게는 1분 30초나 2분까지도 숨을 참을 수 있다는 걸 안다. 실제로 그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물속에서는 30초도 있지 못하겠다. 몸이 뇌에게 신호를 보내는 것이다. 물밖으로 나가라, 숨을 쉬어라.

항상 이런 식이다. 25미터 풀을 몇 미터 남겨놓고 숨이 차오르기 시작한다. 중간에 멈출 때도 있지만, 그걸 참고 끝까지 갈 때도 있다. 그건 고통스러운 일이다. 그리고 고통스런 기억이 된다. 물밖으로 나가도 숨 쉴 수 없는 물속이 내게 준 고통의 기억이 여전히 남아있다. 숨 쉴 수 없는 게 아니라, 자유롭게 숨 쉴 수 없는 고통이다. 아직 나는 수영 호흡법이 익숙하지 못하다. 그리고 가만히 발을 바닥에 딛고 서서, 내 앞에 펼쳐진 25미터의 물을 바라본다. 물론 나는 안전하다. 풀의 깊이는 1미터 50센치도 되지 않는다. 근데도 정말 무섭다. 그만 두고 싶다. 왜 내가 다시 물속으로 얼굴을 집어넣어야 하는지 모르겠다. 아무리 연습을 해도 익숙해지지가 않는다. 대체 30초도 숨을 못참는다는 게 말이 되나? 그게 연습으로 해결되겠어?

그런데 정말 이상하게도, 다음날이 되면, 아니 물밖으로 나와 수영장이 있는 건물을 나설 때면 다시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내 자신이 강한 인간이라서가 아니다. 반대로 너무나 약해서, 고작 물을 무서워한다는 사실을 인정하기 싫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아니면, 고통 그 자체를 즐기는지도 모른다.

이런 걸 뭐라고 할까? 물을 무서워하면서도 수영을 좋아하는 게 가능할까? 수영이란 내가 보기에 기술이나 영법, 혹은 단순히 이곳에서 저곳까지 헤엄친다는 건 아닌 것 갈다. 그리고 물을 좋아하게 되는 것도 아닌 것 같다. 때로 수영이란, 우리가 항상 있는 이곳이 아닌, 자유롭게 숨 쉴 수 있는 지상이 아닌 곳에서, 우리의 몸이 어떻게 적응하는가를 발견하는 과정인지도 모른다. 고통스러운 일이지만, 그게 단순한 고통으로 그치지 않는 것은, 결국에는 ‘내’가 아니라 나의 몸이 무언가를 배우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정말로 그렇다. 나는 거의 아무 것도 배우지 못한다. 내가 알게 되는 것은, 고통이라든지, 또 30초도 견디지 못한다는 씁쓸한 자기 부정뿐이다. 그러나 나의 몸은, 나와는 상관없이, 조금씩 괜찮아진다고 느끼는지도 모른다. 조금씩 나아지고 있다. 해볼만 한데, 이봐, 다시 얼굴을 물속에 쳐넣어, 한 번 해보자고.

정신보다 신체가 강할 수 있을까? 내 대답은 아마도, 그럴 지도 몰라. 때로 신체는 아주 순수한 의미에서 죽음을 바라고 있는게 아닐까 생각한다. 반대로 죽음 그 자체가 신체를 아주 건강하게 살아있게 만드는 지도. 물속에 얼굴을 넣을 때마다 내가 만나는 것은, 나의 신체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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