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의재
물고기통신 114 - 고양이가 보는 것 본문
고양이는 가끔 보이지 않는 뭔가를 바라봐. 아무 것도 아닌 것을. 여자가 말했다. 여자는 고양이를 길렀었다. 나는 그녀의 말을 기억하고 있다. 이제 나도 고양이를 기른다. 어젯밤, 고양이가 뭔가를 바라봤다. 허공에 있는 무언가를. 목을 길게 빼고, 고개를 갸웃거린다. 울기도 한다. 누워있는 내 가슴 위를 건너뛴다. 나는 침대에 누워 책을 읽고 있다. 정말, 고양이가 무언가를 보고 있네, 하고 생각한다. 그녀의 말을 떠올린다. 몇 번인가 내 가슴 위를 뛰어넘었다가 다시 반대편으로 뛰어넘었다가 한다. 나는 대체 고양이가 뭘 바라보고 있는지, 고양이의 고개가 향하는 방향을 유심히 바라본다. 정말 고양이는 아무 것도 아닌 걸 바라보는 걸까? 가령 유령 같은 걸? 하지만 아니었다. 아주 작은 날벌레다. 그것이 천장에 달라붙어서 잠깐씩 날았다가 다시 붙었다가, 이 방향 저 방향으로 아무렇게나 기어 다니고 있었다.
틀렸네. 고양이는 보이지 않는 무언가를 바라보는 게 아니네. 그렇군. 다만 그렇게 보일 뿐. 고양이가 보고 있는 게 너무 작기 때문에. 혹은 고양이가 너무나 자주, 무언가, 아주 작은 것을 골똘히 바라보기 때문에. 하지만 고양이는 확실히 바라보고 있다. 자기가 바라보는 것이 무엇인지 잘 알고 있다. 그것은 확실히 존재하는 무언가인 것이다.
나는 여자에게 그 사실을 알려주고 싶다. 고양이의 입장에서 그녀에게 원망의 말을 던지고 싶다. 이봐, 함부로 오해하지 말아줘. 아무 것도 아닌 것을 바라보는 것은, 어쩌면 너일지도 모르는 거야. 네가 보고 있었던 것은 내가 아닐지도. 고양이가 아닐지도. 모두가 그렇지만, 그저 보고 싶은 것만 보는 거지. 실제로 그것이 아닌, 아무 것도 아닌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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