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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의재

수영 강습 본문

단상

수영 강습

물고기군 2008. 9. 1. 23:14

초등학교 때 수영을 배웠다. 우리 때는 국민학교라고 했는데, 이 워드 프로그램에선 국민학교라고 쓰면 자꾸 초등학교라고 자동으로 바뀐다. 아무튼, 정확히 몇 학년이었는지는 모르겠다. 또 수영을 배우는 걸 내가 좋아했는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적지 않은 기간 수영을 배웠고, 나중에 친구들과 수영장 같은 델 가면 제법 잘하는 축에 속했다. 이상하게도 수영을 배우는 동안에 나는 특별히 친구가 없었다. 그러니까 처음부터 학교나 동네친구와 함께 배우러 다닌 게 아니다. 그렇다고 내가 아무하고도 말을 하지 않고 겉돌았다는 건 아닌데, 전혀 나와 어울렸던 또래의 아이들에 대한 기억이 없다. 대신 나보다 나이가 많았던 어떤 형에 대한 기억은 남아있는데, 뭐랄까 좀 잰 체하는 녀석이었다. 가슴팍도 넓고 몸매도 날렵했다. 그걸 재는 듯한 분위기였다. 왜 우리와 함께 수영을 배웠는지 모르겠다. 수영도 꽤 잘했는데 말이다. 수영장은 국민학생이 일상적으로 왔다갔다하기에는 꽤 멀었다. 지금도 나는 그곳이 어딘지 알고 있는데, 가늠해보면 버스로 세 정거장이나 네 정거장을 가야 했다. 버스에서 내리고도 한참을 걸어야 했다. 셔틀버스 같은 게 있었나? 자꾸 똑같은 말을 반복하는 것 같지만, 그렇게 오랫동안 다닌 것치고는 그 일에 대한 기억이 거의 남아있지 않다. 분명 매일은 아니었다 해도 일주일에 세 번씩, 최소 두 달에서 석 달을 다녔을 텐데 말이다.

수영강습이 끝나고 밖으로 나오면 날이 어두워져 있다. 아마도 강습을 받기 시작한 처음 얼마간은 밝았을 것이다. 이런 기억이 있다. 날이 아직 환한 데 나는 그곳에서, 소위 말하는 ‘삥’을 뜯긴 적도 있다. 뒤져서 나오면 십 원에 한 대씩 이런 얘기 말이다. 꽤 무섭고 나중에는 서러워져서 혼자 수영장을 보낸 어머니를 원망하기도 했다. 분명 국민학생이 혼자 다니기에는 너무나 멀고, 으슥하고, 게다가 나중에는 어두워지기까지 했다. (아마도 아직 그 동네는, 그리고 내가 다닌 수영장이 있던 빌딩은 여전히 그럴 것이다. 나중에 근처를 지나면서 나는 그곳이 거의 변하지 않은 걸 발견했다.) 그래도 나는 꿋꿋하게 혼자 그곳을 왔다갔다했다. 친구도 없고, 잘난 척하는 이상한 형이 있고, 삥뜯는 깡패도 있고, 그렇다고 수영을 좋아하지도 않았는데.

하루하루 날이 어두워지는 거, 어제와 같은 시간인데, 세상이 전혀 달라진 것처럼 보이는 거, 그 미묘한 변화에 대해서 나는 수영장을 다니면서 잘 알게 된 것 같다. 그것은 어떤 의미에서 내게 쓸쓸한 감정을 불러일으켰다. 아니, 반대로 쓸쓸함이란 단어에 대해 배운 것 같다. 물론 그전에도 아무리 어렸다 해도 쓸쓸한 적이 있었을 것이다. 다만 그게 뭔지 몰랐겠지. 그걸 뭐라고 불러야 할지 몰라겠지. 그것은 별로 고통스럽지는 않았다. 심지어 싫은 것도 아니었다. 단지 수영장이 있는 건물 앞 현관에서 별로 친하지는 않지만, 말을 섞는 아이들과 헤어지고 혼자 어두워진 거리로 나와 집까지 먼 길을 가야 한다고 생각할 뿐이다. 그게 여름에서 가을로 넘어가는 시점인지, 가을에서 겨울로 넘어가는 시점인지는 모른다. 어쨌든 가을이 끼어 있었고, 바로 이 계절이었다.

낮에서 밤으로 바뀌는 어스름한 시간, 하나의 계절이 다른 계절로 바뀌는 며칠간. 때로 쓸쓸함을 느끼는 건 무언가를 잃어버리거나, 내 주변의 어떤 것이 달라지기 때문이 아니라, 그것이 눈치 채지 못할 만큼 천천히 진행되기 때문인지도 몰랐다. 마치 한순간에 눈앞에서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조금씩 투명해지다가 어느 순간, 그러니까 그것이 아직도 남아있다고 말할 만한 순간, 이미 사라져버렸다는 것을 깨닫는 건지도 모른다. 그리고 요점은 그것을 내가 알고 있다는 것이다.


오늘, 그때로부터 몇십 년이 지나서 다시 수영강습을 받았다. (중간에 대학교 1학년 때 교양체육으로 수영을 배운 적이 있긴 하다.) 초등학생이었던 아이는 서른여섯 살의 아저씨가 되었다. 다시 킥판을 잡고 물장구를 친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숨을 잘 쉴 수가 없다. 어쩌면 이상한 일이 아닐지도 모르지. 내가 막연히 생각했던 것만큼 나는 수영을 잘하지 못하는지 몰랐다. 자전거타기처럼 무엇이든 어렸을 때 배운 것은 나이가 들어서도 금방 잘할 수 있다고 여긴 것이다. 반대편 풀을 향해 가다가 중간에서 자꾸만 멈추게 된다. 분명 어렸을 때는, 아니 대학 1학년 때만 해도, 별문제가 되지 않았는데, 25미터쯤은 아무것도 아니었는데 말이다. 결국 강사에게 숨을 잘 쉴 수 없다고 말했다. 강사는 몇 번 내 자세를 고쳐주더니 그래도 잘되지 않자, 아마도 물이 무서워서 그럴지 모르겠다는 말을 했다. 표현은 달라지만 그런 뜻이었다. 그러니까 물속에서 너무 숨을 많이 뱉으니까, 물 밖에서 숨을 더 많이 들이셔야 한다는 것이다. 자꾸만 숨을 쉬려고 하니까, 숨을 못 쉬는 거라고. 그게 내가 숨을 잘 못 쉬는 이유 전부는 아닐지 몰라도, 내가 물을 두려워한다는 것은 올바른 지적이었다. 강사의 말을 들으니까 내가 그랬다는 것을 알았다. 내가 숨을 너무 많이 뱉었다는 것을 알았다. 많이 뱉으면 많이 들이셔야 하는데, 그런 단순한 사실을 물속에서 잊었다. 두려워서, 어쨌든 거긴 물속이니까.

수영강습을 끝내고 집으로 돌아오는데 마음이 자꾸 이상해졌다. 좋은 것 같기도 하고 나쁜 것 같기도 했다. 그러다 그게 쓸쓸함이란 걸 알았다. 바보, 숨도 잘 못 쉬네. 그러면서 수영을 잘한다고 막연히 생각했었지. 나는 수영을 잘하는 어린 시절의 나를 잃어버렸다. 아니, 어쩌면 수영을 잘하는 나 자신은 처음부터 없었는지도 모른다. 많은 것이 너무 늦어버린 것 같았다. 그래도 그게 고통스럽지는 않다. 어쨌든 오늘은 첫날이고, 나는 다시 킥판을 잡았으니까. 깡패에게 삥을 뜯기던 초등학생의 내가 서른여섯 살의 아저씨가 돼서, 물을 무서워하면서도. 그리고 확실히 그때와 비교하면 집은 훨씬 가까웠다. 그러니까 괜찮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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