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록전체보기 (466)
시간의재
오랜만에 에 글을 하나 올렸습니다. 트루먼 카포티의 ‘크리스마스의 추억’이라는 단편 중의 한 구절입니다. 사물의 있는 그대로의 모습, 우리가 언제나 눈으로 보고 있는 것. 이 소설은 꽤 오래전에 읽은 것입니다. 그러다 어제 문득 누군가와 채팅을 하다가, 다시금 떠올랐습니다. 좋은 소설입니다. 언제 시간이 나면, 워드로 쳐서 전문을 올려보고 싶습니다. 새 소설을 쓰고 있습니다. 실제로 첫문장을 쓴 건, 작년 6월의 일인데, 그동안 참 게으름을 피웠습니다. 또 그동안 내용도 처음에 생각했던 것과는 많이 달라졌습니다. 이제 예상컨대 3분의 2정도를 쓴 것 같은데, 이번 달 내에는 끝내보려고 합니다. 만일 그렇지 않으면, 영원히 완성시키지 못할 것 같다는 느낌이 듭니다. 완성시키기도 전에 (초고도 내지 못한 채..
“내가 지금까지 어떤 식으로 생각하고 있었는지 알겠니, 버디야?”그녀는 무엇인가를 발견했다는 말투가 되어 내게 말한다. 그녀는 빙그레 웃고 있었지만 그것은 내 얼굴을 보고 미소짓는 것은 아니었다. 내 등의 훨씬 뒤쪽 한 점을 응시하고 있는 것이었다. “난 지금까지 이렇게 생각하고 있었거든. 하느님의 모습을 보기 위해서는 우리가 먼저 앓아 누웠다가 죽어야만 한다고 말이야. 또 하느님을 뵈올 때는 틀림없이 침례교회당의 유리창을 보는 것 같으려니 상상하고 있었거든. 햇빛이 비추어 드는 고운 착색유리처럼 말이야. 아주 밝아서 해가 지기 시작해도 전혀 깨닫지 못하는 거야. 그렇게 생각하면 마음이 놓이는 거였어. 그 빛을 보고 있노라면 무서운 생각을 하지 않아도 된다는 말이지. 하지만 그것은 진정 잘못이었던 거야...
옛 여자의 소식을 우연히 듣게 되었다. 정확히 말하면, 듣게 된 것이 아니라 보게 된 것이고, 누군가에게서 들은 게 아니라 실제 그녀 자신의 문장을 통해서지만. 그것은 내가 아는 누군가의 홈페이지에 올려져 있었다. 그것은 의례적인 안부 인사 같은 것이었다. 물론 내게 한 것은 아니다. 나는 그 짧은 문장을 통해, 여러 가지 것들을 미루어 짐작해본다. 어머니와 한 집에 살고 있는 것으로 보아, 아직 결혼은 하지 않은 것 같다. 며칠 뒤, 그 홈페이지의 주인, 선생님을 만났다. 농담처럼 그녀의 얘기를 꺼내본다. 그녀는 여전히 말랐다고 한다. 나는 잠시 나와 함께 있던 시절에 그녀의 몸을 떠올려 본다. 인감도장을 팠다. 용도가 용도인 만큼 어머니께서는 좋은 도장을 파라고 했는데, 나로서는 뭐가 좋은지 알 도리..
순전한 나 자신만을 위한 문장이 있을까? 이것은 정말 어려운 질문이다. 범주가 너무 넓다. 원론적인 관점에서 바라보자면, 문장이란 결국 ‘내 밖’에 있는 것이다. 그것은 여기(내 안)가 아니라, 거기에 있다. 문장이란 거기에 있어서, 누군가에게 보여지는 것이고, 또한 보여짐으로써 문장의 존재는 성립된다. 물론 그 ‘누군가’가 ‘나’, 즉 문장을 쓴 한 개인으로 국한되는 경우도 있다. 일기 같은 것이다. 또는 메모다. 하지만 그때도 문장을 쓴 ‘나’와, 문장을 읽는 ‘나’는 다르다. 이 다름은 비유적인 것이나, 철학적인 것이 아니다. 이것은 직관적이다. 이 다름을 설명하기는 어렵지만, 알기는 쉽다. 나는 이럴 경우, 나의 의견에 대해 그럴 듯하냐고 물음으로써 상대방을 설득한다. 그럴 듯한가? 그러므로 ‘순..
낮잠을 잤습니다. 자려고 생각한 건 아닌데, 마루 소파(침대?)에 누워 여느 때처럼 케이블 티브이를 보다가 깜박 잠이 들었습니다. 즐거운 꿈을 꿨습니다. 깨어나고 나서, 당연하게도 그것이 꿈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지만, 그래도 좋았습니다. 꿈에서 저는 누군가를 목마태우고 있었습니다. 마치 아버지가 어린 자식에게 그러하듯이. 무서워하지 말고, 이제 두 손을 놔도 돼, 내가 꽉 붙들고 있으니까. 따뜻한 겨울 한낮, 한참 마음이 좋았습니다.
눈이 내립니다. 저녁에 카페에서 일을 하다, 잠깐 담배를 피러 밖으로 나왔다가 눈이 내리는 걸 처음 발견했습니다. 주차된 자동차 위로 소복이 쌓인 눈을 보면서, 제가 모르는 새에 눈이 내리기 시작해서, 제가 모르는 동안에 조금씩 쌓였다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그렇게 쌓인 눈을 보는 건 기분 좋은 일입니다. 마치 깜짝 파티 같은 기분이 듭니다. 숨어 있던 누군가가 불쑥 튀어나와 축하해, 축하해, 소리칠 것만 같은 기분이 듭니다. 저는 멋쩍게 머리를 쓸어내립니다. 이 눈이 올 겨울 들어 몇 번째 눈인지 알 수 없지만, 제게는 마치 첫눈 같았습니다. 2002년 겨울 첫눈은 12월 30일 날 내렸다고 기억하기로 했습니다. 카페를 마감하고 친구를 만났습니다. 이 친구는 제 고등학교 때 친구입니다. 벌써 10년..
'지금의 어린이들이 자라서 결국 될 수 있는 건 보잘 것 없는 어른일 뿐이지만, 그 과정에서 겪게 될 수많은 나쁜 일들 중에, 그래도 좋은 게 있다는 걸 알려주고 싶었다.' 얼마 전 우연히 보게 된 일본 재패니메이션에 대한 다큐멘터리 중, 미야자키 하야오의 인터뷰 내용 중 일부이다. 나는 이 말을 듣고, 역시 미야자키 하야오라고 감탄하고 말았다. 실제로 그의 얼굴을 보고, 그의 음성을 들은 건 그때가 처음이었다. 그 인터뷰는 1996년이나 97년의 것으로, 그가 아직 ‘원령공주’를 만들기 전의 일이다. 나는 특히 첫 번째 문장이 맘에 든다. ‘지금의 어린이들이 자라서 결국 될 수 있는 건 보잘 것 없는 어른일 뿐이다.’ 이런 터프함과 냉정함, 그리고 자포자기적인 심정이 좋다. 비록 아무도 미야자키 하야오..
‘테스’라는 장편소설이 있습니다. 저는 이 소설을 중학교 때 읽었는데요, ‘그레이트 북스’라는 출판사에서 나온 세계문학전집 중 한 권이었습니다. 판형이 현재 나오는 소설책보다 작고, 세로쓰기로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제법 긴 소설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번 읽기 시작하자 도저히 책을 놓을 수가 없었습니다. 저는 거의 밤을 새워 읽었던 것 같습니다. 이상하게도 그 밤, ‘테스’라는 소설을 읽고 있는 저의 모습이 선명하게 기억납니다. 읽는 부분을 표시하기 위해 책을 책상 위에 엎어 놓고 화장실로 갑니다. 그리고 거울을 통해 제 얼굴을 바라봅니다. 이미 늦은 시각이라 가족들은 모두 잠이 들었고, 사방은 고요합니다. 멀리서 빠른 속도로 도로 위를 달리는 자동차 소리가 들립니다. 저는 다시 노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