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의재
사물의 있는 그대로의 모습 본문
“내가 지금까지 어떤 식으로 생각하고 있었는지 알겠니, 버디야?”
그녀는 무엇인가를 발견했다는 말투가 되어 내게 말한다. 그녀는 빙그레 웃고 있었지만 그것은 내 얼굴을 보고 미소짓는 것은 아니었다. 내 등의 훨씬 뒤쪽 한 점을 응시하고 있는 것이었다.
“난 지금까지 이렇게 생각하고 있었거든. 하느님의 모습을 보기 위해서는 우리가 먼저 앓아 누웠다가 죽어야만 한다고 말이야. 또 하느님을 뵈올 때는 틀림없이 침례교회당의 유리창을 보는 것 같으려니 상상하고 있었거든. 햇빛이 비추어 드는 고운 착색유리처럼 말이야. 아주 밝아서 해가 지기 시작해도 전혀 깨닫지 못하는 거야. 그렇게 생각하면 마음이 놓이는 거였어. 그 빛을 보고 있노라면 무서운 생각을 하지 않아도 된다는 말이지. 하지만 그것은 진정 잘못이었던 거야. 이것은 맹세해도 좋은 일이지만 말이다. 최후의 마지막 순간에 가서야 우리는 흠칫하고 깨닫는단다. 하느님은 오래 전부터 우리들 앞에 모습을 나타내고 계셨다는 사실을. 사물의 있는 그대로의 모습…”
그녀의 손은 허공에 동그랗게 원을 그린다. 구름이랑, 연이랑, 풀이랑, 뼈를 묻는 땅을 앞다리로 긁어대는 퀴니를 남김없이 가리켜 나타내는 듯이.
“우리가 언제나 눈으로 보고 있는 것 - 그것이 바로 하느님의 모습이었단다. 나는 말이다. 오늘이라는 날을 가슴에 안은 채 지금 여기서 덜컥 죽어버려도 한이 없다는 생각이 드는 거란다.”
이것이 우리가 같이 지낸 마지막 크리스마스였다.
'크리스마스의 추억' (트루먼 카포티, 백남옥 옮김, 우신사, 1991)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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