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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던컨의 표현이 가장 훌륭했다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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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던컨의 표현이 가장 훌륭했다

물고기군 2003. 1. 31. 14:36

가아프가 상상을 시작하기만 하면 항상 피투성이 볼보만 눈앞에 어른거렸다. 던컨이 비명을 지르고, 바깥에서 헬렌이 부르는 소리가 들리고, 그리고 또 누가. 그는 운전대에서 몸을 비틀어 운전석 위에 무릎을 꿇고 앉아 두 손으로 던컨의 얼굴을 잡았지만, 피는 멈추지 않았고 가아프는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다 확인하기가 불가능했다.

“괜찮아.” 그는 던컨에게 속삭였다. “넌 별일 없을 테니까 조용히 해.” 하지만 혀를 다쳤기 때문에 말은 안 나오고, 부드럽게 피만 뿜어대었다.

던컨은 계속해서 비명을 질렀고, 헬렌도 소리를 질렀으며, 또 누군가, 꿈을 꾸는 개가 그러듯, 자꾸 신음을 했다. 하지만 가아프로 하여금 그토록 무서워하게 만든 소리는 무엇이었던가? 또 무슨 소리가?

“아무렇지 않으니까 내 말 믿어, 던컨.” 그는 알아듣지 못할 말을 속삭였다. “넌 별일 없을 거야.” 그는 아들의 목에서 손으로 피를 닦아냈는데, 보아하니 목에는 찢어진 곳이 없었다. 그는 아들의 양쪽 관자놀이에서 피를 씻어냈지만, 그곳도 으깨진 곳이 없었다. 그는 확인을 하려고 운전석 쪽 문을 발로 차서 열었고, 문의 불이 켜지자 그는 두리번거리는 던컨의 한쪽 눈을 보았다. 그 눈을 도움을 구하려고 했으며, 가아프는 그 눈이 볼 수가 있음을 알았다. 그는 손으로 피를 더 닦아냈지만, 던컨의 다른 쪽 눈이 나오지를 않았다. “괜찮다.” 그는 던컨에게 속삭였지만 던컨은 더욱 큰 소리로 비명을 질렀다.

아버지의 어깨 너머로 던컨은 열린 볼보의 문 앞에 선 어머니를 보았다. 그녀의 뭉개진 코와 갈라진 혀에서는 피가 철철 흘렀고, 어깨 근처 어디가 부러진 듯 오른쪽 팔을 움켜쥐고 서 있었다. 하지만 던컨이 무서워했던 것은 그녀의 얼굴에 나타난 공포였다. 또다른 무엇이 그를 공포로 몰아넣었다.

그것은 던컨의 비명도 아니고 헬렌의 비명도 아니었다. 그리고 끙끙거리는 마이클 밀튼이 끙끙거리다 죽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알았지만, 가아프는 개의치도 않았다. 그것은 다른 무엇이었다. 그것은 소리가 아니었다. 그것은 소리가 없음이었다. 그것은 소리의 부재였다.

“월트는 어디 있어?” 볼보 속을 들여다보려고 애쓰며 헬렌이 말했다. 그녀는 비명을 멈추었다.

“월트!” 가아프가 소리쳤다. 그는 숨을 죽였다. 던컨도 비명을 멈추었다 .

그들은 아무 소리도 못 들었다. 그리고 가아프는 월트가 감기에 걸렸으므로, 아이의 가슴속에서 물에 젖은 듯한 씨근거리는 소리가 흘러나오면 옆방이나, 두 방이나 떨어진 곳에서도 들린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월트!” 그들이 소리쳤다.

헬렌과 가아프는 나중에, 그 순간에 월트가 귀를 물 속에 잠그고 욕조를 더듬거리며 장난치는 그의 손가락 소리에 열심히 귀를 기울이고 있으리라는 상상을 했노라고 서로 귓속말로 얘기했다.

“난 아직도 그애 모습이 눈에 선해.” 나중에 헬렌이 나지막이 말했다.

“항상 그렇지.” 가아프가 말했다. “나도 알아.”

“눈만 감았다 하면 그래.” 헬렌이 말했다.

“맞아.” 가아프가 말했다. “나도 알아.”

하지만 던컨의 표현이 가장 훌륭했다. 던컨은 가끔 없어진 오른쪽 눈이 완전히 없어지지는 않은 듯한 기분이라고 말했다.

“마치 가끔 그 눈으로도 보이는 듯한 기분이 들어요.” 던컨이 말했다. “하지만 그건 추억이나 마찬가지여서, 내가 보는 것 - 그건 현실은 아니에요.”

“아마 그건 네가 꿈을 보는 눈이 되었는지도 모르지.” 가아프가 그에게 말했다.

“글쎄요.” 던컨이 말했다. “하지만 그건 너무나 생생하게 느껴져요.”

“그건 네 상상의 눈이란다.” 가아프가 말했다. “그건 아주 생생한 경우도 있어.”

“그건 내가 아직도 월트를 볼 수 있는 눈예요.” 던컨이 말했다. “아시죠?”

“알아” 가아프가 말했다.

- 존 어빙, '가아프가 본 세상'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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