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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의재
다른 이유가 있었지만, 오랜만에 아침 일찍 일어나서 책상 앞에 앉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해서, 또 오랜만에 팻맨시니의 음악을 들으며 담배를 피워 물고 이런 저런 생각을 하게 됩니다. 어쩐지 아침에는 그의 음악이 듣고 싶어집니다. 반복되는 세월이란 무엇보다 값진 것이다, 라는 문장을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역시 시시하고 뻔한 문장이지만, 이제 몇 달 후에 서른한 살이 되는 저로서는 새삼 절감하게 되는 말입니다. 이를테면 젊은 시절, 꽤나 심각하게 고민했던 문제들, 심장이 쪼개지는 것처럼 아팠던 일들도 세월이 흐르면 전혀 다른 관점으로 바라볼 수 있게 됩니다. 단순히 그 일로부터, 그 감정으로부터 멀어졌기 때문이 아니라, 이제와 생각하면 당시에는 분명 보지 못하고 취하지 못했던 관점이 있었던 겁니다. 항상 그..
‘큐브’라는 영화를 보면, 모든 수수께끼를 풀고 바깥 세계로 나가는 통로가 열렸을 때, 마지막으로 남은 세 사람 중 하나가 자신은 나가지 않겠다고 선언합니다. 다른 사람이 묻습니다. ‘왜?’ 그러자 그 남자는 이렇게 대답하죠. ‘무서워.’ ‘뭐가 무서워요?’ ‘인간의 끝없는 욕심.’ 참 시시한 말이라는 걸 압니다. 결국 영화가 보여주려던 것이, 한낱 이솝우화 같은 교훈이었다는 실망도 듭니다. 하지만 그것과는 상관없이, 오랫동안 그 시시한 말 한마디가 제게서 떠나지 않습니다. 뭐가 무섭지? 인간의 끝없는 욕심. 시시한 말에 관한 얘기를 하고 있습니다. 오랫동안 사람들에게 뭔가 그럴듯한, 또 의미심장한 말들을 하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제가 얼마나 말을 잘 하는지 증명하고도 싶었고, 또한 그렇게 살기도 바랐습..
정말로 좋아하는 것은 소유해선 안돼. 이 말은 누구의 말일까? 누가 내게 가르쳐준 것일까? 왜냐하면, 우리는 정말로 좋아하는 것을 소유하는 순간, 그것을 잃어버릴까봐 너무 두려워서 조금씩 조금씩 자기도 모르는 시간에 훼손시키는 거야. 그래서 그것이 이제 더 이상 좋아하지 않는 것, 아무 것도 아닌 것이 되었을 때, 우리는 이제 아무 고통 없이 그것을 버리게 되는 거야. 그럴듯해? 그러나 실제는 이와 다르다. 이것은 단순한 말일 뿐이다. 어쩌면 우리는 우리가 소유할 수 없기 때문에, 그것을 좋아하게 되는 지도 모른다. 영원히 소유할 수 없는 것, 내 손에 닿지 않는 것, 이미 남의 것. 그래서 그것을 간절히 바라게 되는 지도 모른다. 또는 우리가 좋아하는 것을 소유하는 순간, 그것은 이미 훼손되어 버리는 ..
차창문을 열고 초여름밤의 뻥 뚫린 대로를 달리는 것만큼 즐거운 일은 없는 거야. 만일 갈 때만 있다면 말이야. 이 시간이나 세계에 대해, 또는 나 자신에 대해 할 말이 있을 때 누군가 들어줄 사람이 있다는 것만큼이나 행복한 일은 없는 거지. 지독한 시간들은 무시하고 좋은 시간에 집중할 것. 지독한 - 시간들은 - 무시하고 - 좋은 시간에 - 집중할 것. (Ignore the awful times,and concentrate on the good ones! ) 이게 내가 너한테 하고 싶은 말이야. - 단상들 중에서 -
아래 제가 쓴 ‘물고기통신 59’를 올려놓고 다시 한번 읽다가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나는 모기를 잡음으로써 뭔가를 증명하려고 했던 것이 아닐까? 최근에 누군가에게 제 소설에는 ‘나’가 너무 많다, 또는 강하다, 라는 얘기를 들었는데, 그 말이 옳다면, 즉 그가 제대로 읽은 거라면, 그것은 내가 문장을 통해서 ‘나’를 증명하려고 했기 때문이 아닐까, 라는 생각도 듭니다. 물론 그것이 꼭 나쁜 것만은 아닐 겁니다. 어떻게 사는 게 정말로 현명한 삶인지 누가 알겠습니까? 스무 마리의 모기 시체를 마루바닥에 모아놓고 가만히 바라보고 있으면, 분명 거기에는 허무 같은 게 느껴지지만, 산다는 것이 어떻게 뭔가를 성취함으로써만 행복할 수 있는 것이겠습니까?
어제 저녁 마루에서 티브이를 보다가, 작정하고 모기를 잡기 시작했습니다. 훈증 홈매트도 떨어지고, 뿌리는 모기약도 다 떨어진 탓도 있겠지만, 무엇보다 이제 더 이상 여름도 아닌데 앵앵거리는 모기 소리를 참고 있을 이유가 없었던 탓입니다. 가을이 되어서까지 모기에게 피를 뺏기고 싶지 않았습니다. 추석이란 말입니다. 그래서 일일이 수작업으로 잡은 모기가 근 스무 마리를 넘었습니다. 열 마리를 넘기면서부터 제가 뭔가 단단히 착각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그때껏 저는 한 마리를 잡으면 당연히 집 안의 모기가 한 마리 줄어든다고 생각했습니다. 왜냐하면 창에는 방충망이 쳐져 있고, 바깥으로 통하는 출입문도 닫혀 있었으니까요. 과연 진실이 어떤 건지 알 수 없지만, 열 마리, 그리고 종국에는 스무 마리의 모..
날이 추워졌습니다. 저녁이면 이제 제법 쌀쌀한 바람이 불고, 지난 가을의 기억도 떠오릅니다. 정확하지는 않지만, 이렇게 날이 추워지기 시작한 건 고작 며칠 전의 일인 것 같습니다. 그러니까, 그 며칠 전만 해도 이렇게 갑자기 가을이 올 줄은 몰랐습니다. 한편으로는 참 이상하고 신기한 일이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언제나 그래왔던 일입니다. 약속 시간을 잘 지키지 못하고, 해야 할 일의 기한을 잘 지키지 못하는 성격의 저로서는, 이런 계절의 변화란 것이 때로 마음을 불편하게 하기도 합니다. 계절은 참을 성 없는 여자친구 같기도 하고, 매정한 창구 직원 같기도 합니다. 이봐, 조금 늦을 수도 있잖아. 그것 가지고 뭘 그래. 이런 말이 통하지 않습니다. 안됩니다. 어저께 왔더라면 아무 문제도 없었을 걸, 지금 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