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의재
물고기통신 58 본문
날이 추워졌습니다. 저녁이면 이제 제법 쌀쌀한 바람이 불고, 지난 가을의 기억도 떠오릅니다. 정확하지는 않지만, 이렇게 날이 추워지기 시작한 건 고작 며칠 전의 일인 것 같습니다. 그러니까, 그 며칠 전만 해도 이렇게 갑자기 가을이 올 줄은 몰랐습니다. 한편으로는 참 이상하고 신기한 일이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언제나 그래왔던 일입니다. 약속 시간을 잘 지키지 못하고, 해야 할 일의 기한을 잘 지키지 못하는 성격의 저로서는, 이런 계절의 변화란 것이 때로 마음을 불편하게 하기도 합니다. 계절은 참을 성 없는 여자친구 같기도 하고, 매정한 창구 직원 같기도 합니다. 이봐, 조금 늦을 수도 있잖아. 그것 가지고 뭘 그래. 이런 말이 통하지 않습니다. 안됩니다. 어저께 왔더라면 아무 문제도 없었을 걸, 지금 와서 안 되는 걸 해달라고 우기면 저희도 곤란합니다. 이미 서류는 넘어갔단 말입니다. 살아오면서 숱하게 들었던 말입니다. 그러면 저는 대개 포기하고 맙니다. (포기하지 않으면 어쩔 거라고?) 그래 애초에 잘못은 늦은 내 쪽에 있는 걸. 그런 마음으로 집으로 돌아가는 길의 바람이 매섭습니다. 벌써 가을입니다. 다시 가을이 왔고, 나는 또 해야 할 일의 기한을 맞추지 못한 게으름뱅이의 마음으로 새 계절을 맞습니다. 그 마음이 꼭 나쁘지는 않습니다. 어쨌든 새 계절이 왔으니까요.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