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의재
물고기통신 59 - 모기 잡기 본문
어제 저녁 마루에서 티브이를 보다가, 작정하고 모기를 잡기 시작했습니다. 훈증 홈매트도 떨어지고, 뿌리는 모기약도 다 떨어진 탓도 있겠지만, 무엇보다 이제 더 이상 여름도 아닌데 앵앵거리는 모기 소리를 참고 있을 이유가 없었던 탓입니다. 가을이 되어서까지 모기에게 피를 뺏기고 싶지 않았습니다. 추석이란 말입니다. 그래서 일일이 수작업으로 잡은 모기가 근 스무 마리를 넘었습니다. 열 마리를 넘기면서부터 제가 뭔가 단단히 착각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그때껏 저는 한 마리를 잡으면 당연히 집 안의 모기가 한 마리 줄어든다고 생각했습니다. 왜냐하면 창에는 방충망이 쳐져 있고, 바깥으로 통하는 출입문도 닫혀 있었으니까요. 과연 진실이 어떤 건지 알 수 없지만, 열 마리, 그리고 종국에는 스무 마리의 모기를 잡으면서, 정말 이 많은 모기가 원래부터 집 안에 있었던 것일까 의심이 들었던 것입니다. 어쩌면 어딘가 내가 모르는 곳에 모기가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는 구멍이 있는 게 아닐까? 그래서 내가 아무리 작정하고 모기를 잡는다 해도 집 안에는 또 그만큼의 모기가 새로 채워지는 게 아닐까? 이것은 일종의 비유입니다. 엑스 파일 식으로 말하면, ‘진실은 저 너머에 있다’, 뭐 이런 식의 시시껄렁한 비유에 불과합니다. 그러니까, 어쩌면 그런 구멍 따위는 없고, 스무 마리의 모기가 역시 제가 모르는 어딘가에 숨어 있었을지도 모른단 말입니다.
한 마리의 모기를 잡는다고 해서, 집 안에 한 마리의 모기가 줄어든다는 생각, 또는 그만큼 자신이 모기로부터 자유로워지고, 그렇게 해서 집안이 깨끗해지고, 비유적으로 내 자신이 발전된다는 생각은 근본적으로 잘못되었다는 것입니다. 제 눈에 보이는 것은 언제나 한두 마리의 모기일 뿐입니다. 그 한두 마리의 모기만 잡으면 모든 게 해결될 거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언제나, 작정하고 모기를 잡기 시작하면, 그것은 한두 마리의 모기가 아닙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모기를 잡는 행위에 아무런 가치가 없는 것일까요? 어딘가에 있을 내가 모르는 구멍이나, 내가 모르는 모기의 ‘집’ 같은 곳을 찾아야 하는 게 더 옳은 일일까요?
뭔가 근사하게 끝내려면 마지막 문장을 이렇게 써도 괜찮을 것 같습니다. ‘그래도 여전히 내 귀에는 앵앵거리는 모기 소리가 들리고 있다.’ 무엇이 문제인가? 적어도 문제는 모기에 있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