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의재
지난 두 번의 소설 세미나에서 나를 곤혹스럽게 만든 건, '진부함'이란 단어였다. 사람들은, 곧잘 당당하게 말한다. 하늘 아래 새로운 것은 없다, 라든지 이미 모든 것은 다 발병되었고, 모든 이야기의 패턴과 주제와 기법들은 실험되었다, 라고. 정말일까? 3학년 1학기 '물리학' 교양강좌에서 교수님은 첫 시간, 우주는 무한한가, 아님 유한한가 라는 질문을 학생들에게 던졌다. 간단하다. 마치 오엑스 문제처럼. 정답은 우주는 무한하다, 였다. 아, 그렇군. 우주는 무한해. 수업이 끝나고 밥이라도 먹으러 가면 된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 문제는 우주가 유한하지 않고 무한하다는 사실이 아니라, '어떻게' 무한한가라는 점이다. 난 아직도 잘 이해할 수 없으므로, 잘 설명할 수가 없다. 뫼비우스의 띠나, 클라인씨의 ..
알았다. 분명, 백미터 달리기 선수가 시합에 임하기 전 근육을 풀기 위해 스트레칭을 하고, 몸을 따뜻하게 하기 위해 워밍업을 하는 것처럼, 문장을 쓰는 행위, 특별히 소설을 쓰는 경우에도 그러한 사전 작업이 필요한 것이다. 그건, 차라리 배우가 슬픈 장면을 찍기 전에, 그리고 눈물을 안약 없이 흘리기 위해 슛이 들어가기 전부터 슬픈 기억을 떠올리는 것에 가깝다. 중요한 건, 리듬을 타는 것이다. 몰입해야 하고, 한 순간의 방심도 허용해선 안 된다. 가령, 목이 말라서 냉장고 문을 열었더니 갑자기 배가 고파져서 뭔가를 주섬주섬 챙겨먹는 행위는 최대로 경계해야 할 일이다. 배부른 정신은 소설을 쓸 수 없다. 소설의 일종의 결핍으로 비롯되는 양식이다. 전화도 안 된다. 세계와의 단절이 필요하다. 정신적 공복상..
마음이 넘어지지 않으려면 꼭 맞는 구두를 신으세요 - 여자의 감각을 감탄함 中 - 난 이런 문장이 좋다. 구두가 꼭 맞지 않기 때문에, 마음이 넘어지고 다친다는 식의. 사실, 작가가 말하려고 하는 '의미'는 모른다. 모른다고 생각한다. 알고 싶지도 않다. 다만, 잘 맞지 않는 구두를 신은 여자들을 떠올린다. 왜 그녀들은, 잘못된 구두를 신는 걸까? 여러 가지 현실적인 이유가 있다. 발이 작을수록 미인이라는 통념 같은 게 작용해서 일부러 한 치수 정도 작은 구두를 신기도 하고, 크게 신는 게 유행일 때도 있었고 등등. 아니면, 정말로 맘에 드는 구두를 발견했는데 자신에게 맞는 사이즈가 품절 되었을 때, 그래도 여자는 구두를 산다. 이상의 등등의 이유로, 그들은 잘못된 구두를 신는다. 발이 까지기도 하고, ..
아파? 아이들은 무지개처럼 나를 둘러싸고 있었다. 누가 물었는지, 아니 그들이 누구인지 이제 난 기억하지 못한다. 눈물을 흘렸나보다. 눈이 뻑뻑하고 그들의 모습이 말라 일그러져 있다. 하늘 빛깔이 달라졌다. 파랗던 것이, 좀 붉어진 것 같다. 무슨 일이 있었던가? 난, 놀이터 성(城) 2층에서 떨어졌다. 우린, 치기 장난을 하고 있었다. 술래가 나를 붙잡으려 했고, 붙잡았고, 놓쳤다. 그리고, 난 떨어져 잠깐 정신을 잃었다. 아파? 난 대꾸하지 못했다. 숨을 잘 쉴 수가 없었다. 얼마간 숨을 고르자, 조금 편해졌다. 흙냄새가 나고, 등으로 바닥의 차가움이 느껴졌다. 아이들의 얼굴 위로, 해질녘의 황토빛이 번져 있다. 그 빛은, 우리가 집으로 돌아가야 할 시간을 알려주었다. 놀이는 끝났다. 아이들도, 나도..
뭔 일이 있었던가? 다행이다. 난, 아무것도 기억나지 않는다. 내가 정화를 구박했다고? 다행이다. 난, 내가 정화를 사랑한다고 고백한 줄 알았다. (술 취하면 난 모든 여자를 사랑한다) 그리고, 다들 저런 말투를 어디서 배운 걸까? 신기하다. 졸업생게시판이나, 문리대 앞 벤치거나, 이상한 무협지 말투가 유행이다. 그 말투를 쓰지 않고 글을 올리려니, 마치 벌거벗은 것 같다. 나도, 어서 빨리 배워야겠다. 아무튼, 내가 하려는 말은 또 변명이다. 수요일 저녁까지 발제를 올릴 수 없을 것 같다. 목요일 저녁까지 올리겠다. 자야지.ps : 난 밑의 정화 글을 읽고 누군가 잘못 이름을 쓴 줄 알았다. 일종의 게시판 버그라든지. 정말로, 정화가 저런 글을 쓰다니. 왠지, 그 글을 쓰고 있을 당시의 정화의 얼굴을 ..
요즘의 난, 파이프 오르간 같은 것을 생각한다. 아주 길고 거대한 관이 있어서 그 안에 바람이 불고, 그 바람들이 서로 몸을 부딪히며 아름다운 소리를 만들어 낸다. 멋지지 않은가? 또 슬프지 않은가? 소리는 깊고 또 그윽하며, 오래 지상에 머문다. 하지만, 난 한번도 그러한 소리를 들어본 적이 없다. 내 삶의 시간이 그렇게 길고 거대한 관이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그리하여, 나의 모든 행위가 의미를 만들고, 서로 격렬하게 부딪히며 어떤 소리를 만들어 낼 수 있으면, 좋겠다. 월요일 아침, 라디오 방송을 통해 음악을 듣다. 거울을 볼 때마다, 내가 너무 멀리 왔음을 깨닫는 즈음.
나이 스물 여덟 먹고, 이 나이에 아직도 술 먹고 날밤 샌다는 게 어디 자랑이겠냐 싶은데, 내 나이가 스물 여덟이면, 누구 나이는 스물 아홉이라는 사실이 나를 고양시킨다. 또 필름이 끊겼다. 아, 대개 일 년에 여닐곱번 정도 필름이 끊기는데, 2000년 들어서는 처음 있는 일이다. 무슨 일이 있었는가? 단지, 기억에 남는 건 빈 손으로 터벅 터벅 내게 다가오던 규열이의 모습뿐이다. 지금도 웃었다. 생각할수록 규열은 대단한 놈이다. 나야, 되지도 않는 말발로 사람들로 하여금 실소를 머금게 할 뿐인데, 규열은 온 몸으로 사람을 즐겁게 하는 재주가 있다. 어쩐지, us의 말, 규열은 '사내가 사는 법'을 알고 있다는 말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이 글은 일종의 변명이다. 아니, 어쩜 전적인 변명이다. 어떠한 텍스트를 이해한다는 것과, 그것을 완벽하게 새로운 판으로 다시 짜낸다는 것은, 양적인 차이가 아니라, 엄연한 질적인 차이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다시금 깨닫고 있다. 물론, 완벽하게 이해한다는 그 자체가 이미 어불성설이겠지만. 난 지금, 규열에게 수요일 밤까지 발제를 올린다고 선배답게 말했지만, 아직껏 올리지 못하고 있다는 변명을 하고 있는 거다. 아무튼, 나 자신에게 하려는 약속처럼, 조금씩 [세미나]에 올려본다. 일단, 가장 쉬운, 1장부터. 아마, 내일 아침까지는 완벽하게 5장까지 올릴 수 있을 거라 조심스레 추측하면서, 만일 그렇게 된다면, 이전에 올렸던 것들을 다시 싸그리 끄집어내려 합본을 낼 예정이다. 그러니까, 지금 이 시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