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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의재
가끔 내 자신의 이야기가 다른 사람의 이야기 속에서 전혀 잘못된 이야기가 되어버리는 경험을 하고는 한다. 처음에 나는 그것이 오해이거나 아니면 일시적인 착오라고 여겼다. 적어도 나는 내 이야기 속에서 전혀 잘못된 점을 발견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나의 이야기와 다른 사람의 이야기는 자꾸 어긋나기만 한다. 어긋남이 커질수록 내 이야기의 잘못된 점이 드러난다. 나는 이제 그것을 안다. 매우 속이 상하는 일이고,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내 이야기는 잘못되었다. 그 잘못은 다른 사람의 이야기 속에 있는 것이 아니라, 내 이야기 속에 있다. 그것은 오해이거나 착각이 아니다. 나의 이야기는 아주 유치하고 치졸한 것이며, 이야기될만한 가치도 없는 것처럼 느껴진다. 나의 이야기로 인해 누군가는 ..
언젠가 제가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던가요? 무엇도 삶 그 자체보다 더 클 수 없다. 저는 이 말을 때로 제 자신의 어떤 괴로움을 무마하기 위해, 또는 누군가의 괴로움을 위로하기 위해 사용하고는 했습니다. 내가 잃어버린 것은, 그리고 네가 잃어버린 것은 삶에 포함된 무언가일 뿐이고, 여전히 삶은 여기에 있다고 말입니다. 물론 이때의 삶은 우리가 흔히 목숨이라고 하는 생명을 포함하는 개념이지만, 단지 그뿐인 것만은 아니겠지요. 단지 살아있다는 것으로, 목숨을 부지하고 있다는 것만으로 모든 게 충족되지는 않을 것입니다. 하지만 무엇도 삶 그 자체보다 더 클 수 없다고 해서, 어떤 추구들이 가치 없는 것은 아닙니다. 어떤 바람들이 헛된 것은 아닙니다. 사람들은 여러 말들을 합니다. 저는 그 말들을 듣고, 다시금..
제가 ‘이루마’라는 음악가를 처음 알게 된 건 꽤 오래전의 일이었습니다. 정확히는 잘 알 수 없군요. 하여간 저는 그의 음반을 하나 가지고 있습니다. 그는 흔히 ‘뉴에이지 피아니스트’라고 불립니다. 그러나 꽤 오래전에 구입한 그의 음반은 사실 저의 흥미를 불러일으키지는 못했습니다. 몇 번 듣지도 않았지요. 음악보다는 그의 개인적인 약력, 배경 등이 그의 가치를 과장하고 있다고도 생각했습니다. 한국인 최초로 어쩌구 저쩌구, 천재 음악가 등등. 게다가 기억하는 분도 있을 런지 모르겠지만, 모 이동통신 서비스 티브이 광고에도 나왔더랬죠. 화상전화를 통해, 형 들어봐, 하는 식의 광고였습니다. 제가 원래 속이 좁아서 그런지 대개 그러한 친구들을 대할 때면, 어디 얼마나 잘하나 보자 싶어서 어디 깎아내릴 구실이 ..
며칠 전에 무지개를 본 적이 있습니다. 무지개를 본 것은 참 오랜만이었습니다. 기억을 더듬어보면 제가 마지막으로 무지개를 본 것은, 제가 학과사무실에서 조교를 하던 시절, 여름이었습니다. 그러니까 그것은 2000년 여름이었고, 그때는 아직 제 나이도 스물여덟이었죠. 이렇게 정확하게 기억하는 이유는 그날의 일을 저는 문장으로 적어놓았기 때문입니다. 그 문장은 이 홈페이지의 ‘단상’에 ‘아름다운 것’이라는 제목으로 올려져 있습니다. 무지개를 볼 때면 저는 항상 제 곁에 누군가가 있어서, 그 사실을 알려줄 수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그것은 아마 어떤 좋은 풍경들을 함께 보고 싶어 하는 단순한 마음에서 비롯된 거겠죠. 또 무지개란 것이 흔히 볼 수 있는 것도 아니고, 게다가 오래 머무르지 않고 금방 사라지기 때..
이것은 ‘공포증’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예전에 케이블 티브이를 통해 ‘공포증’을 다룬 다큐멘터리를 본 적이 있습니다. 처음부터 본 것은 아니고, 저는 공포증의 한 가지 사례만을 보게 되었습니다. 그녀는 ‘깃털’을 두려워합니다. 그래서 ‘새’도 두려워합니다. 하지만 새는 어디에나 있습니다. 그녀에게는 딸이 하나 있는데, 그녀의 소원은 딸을 데리고 외출을 하는 것입니다. 결국 유명한 심리치료사를 찾게 됩니다. 이제 화면은 그 심리치료사의 치료실을 비쳐줍니다. 치료실은 마치 인문학교수의 연구실이거나 서재처럼 보입니다. 치료사는 그녀에게 모든 각오가 되어 있냐고 묻습니다. 그녀는 그렇다고 대답합니다. 저는 삼십 년이 넘도록 깃털을 무서워했어요. 이제는 벗어날 때가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치료사는 책상 위에 있는,..
모두들 안녕하십니까? 어쩐지 또 굉장히 오랜만에 이렇게 인사를 드리는 것 같습니다. 그동안 역시 많은 일들이 있었지만, 물론 그 중에는 상당히 불미스러운 일도 있었고, 지나고 나면 웃어버릴 일들도 있었지만, 또 이렇게 떠올려보면 그렇게 많은 일들이 아닌 거겠죠. 아쉽게도 굉장히 신나고 재미있는 일은 없었지만, 이제 그런 일을 기대하기에는 제가 나이를 너무 많이 먹은 것 같습니다. 지금 듣고 계신 음악은 - 만일 들을 실 수 있다면 말이죠. - 임현정의 ‘Caffeine’이라는 곡입니다. 이상하게도 가사 중에는 Caffeine이라는 단어는 나오지 않는군요. 대신 ‘커피 향’이니 ‘중독’이라는 말이 나오는데, 그렇다 해도 Caffeine이라는 제목은 좀 뜬금없다는 생각이 듭니다. 전번에는 역시 같은 가수의 ..
“우리의 생활은 전쟁과 같았다. 우리는 그 전쟁에서 날마다 지기만 했다.” 이것은 제가 고등학교 때 읽었던 소설의 한 구절입니다.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의 일부입니다. 그 시절 이것은 문학적 표현에 불과했습니다. 이 문장도, 또 이 문장을 포함하고 있는 소설전체도 참 좋았고, 감동스러웠지만, 제 자신이 과연 그 모든 것들을 마음 깊이 받아들일 수 있었느냐 하면 분명 그렇지는 않았습니다. 마음 깊이 공감한 것은 아닙니다. 소설에 문제가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소설에 힘이 부족했다든지 하는 문제가 아닙니다. 문제는 제 자신이었고, 제가 겪었던 경험과, 그 경험을 바탕으로 한 실제적인 세계의 인식입니다. 우리의 생활은 전쟁과 같다, 라는 표현자체는, 그 시절의 제게, 또 아마 지금의 제게도, 일부의 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