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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의재
희망은 편의적으로 만드는 것이다. 근거 따위는 존재하기 않기 때문에, 오히려 두려움이 없다.
재밌지. 나란 인간은 말야, 항상 미리 준비해 놓는 단 말야. 지금 이곳이 싫다고, 뛰쳐나가고 싶다고, 도망치고 싶다고, 떠나버리고 싶다고 하면서도, 막상 그러면 어디로 가지, 머리 속으로 궁리한단 말이야. 그런 건 도망이라고 할 수도 없지. 그냥 이동일 뿐이야. 도망치고 싶어서, 하루 종일 인터넷 홈페이지를 통해 열차시간표를 확인하고 있다니. 남은 통장의 돈을 세고 있다니. 카드로 빌릴 수 있는 한도액을 합쳐보고 있다니. 그만두자.
나른한 오후, 그러니까 두 시나 세 시쯤, 한가로운 사무실에서 라디오를 듣는 건 즐거운 일이다. 인생이 한없이 나른해지고, 이런 게 어쩌면 행복일지 모른다고 생각한다. 라디오에서, 내가 좋아하지만 미처 생각하지 못하는 노래가 흘러나오기를 기대한다.
누구나 스물 아홉 살이 된다. 스물 아홉 살이 된다해서, 세상이 달라지는 것도, 더더군다나 자신이 달라지는 것도 아니다. 그리고 스물 아홉 살이 아니라, 스물 살, 열 다섯살이라해서 더 맑은 영혼을 가지고 있는 것도 아니다. 다만 , 별 소용도 될 것 같지 않은 세상의 기억을 조금 더 가지게 될 뿐이다. 강이 더 먼 곳까지 흐른다해서 언제나 바다가 되지는 않는 것이다.
내 소설 {리와인드}를 다시 읽다. 작가 또한, 독자라면, 게다가 작가의 의도를 가장 잘 간파하고 있는 독자라면, 자신의 작품을 읽고 재밌다고 느끼는 건 계속 작품을 쓰도록 만드는 힘이 아닐까? 재밌다. 문득 {리와인드}를 좀 더 짧게 줄여볼까 생각한다. 문장도 좀 고치고, 그러면 좀 볼만해지지 않을까?
그래, 네 말이 맞아. 가끔 아무 이유없이 어떤 하나의 단어가, 우리를 사로잡을 때가 있는 거다. 겨울창문처럼. 겨울창문, 그러한 감정이란 소중한 거지. 왜냐면 감정이란 한낮의 햇빛에 사라지는 겨울창문의 성에처럼 언제든 사라지기 마련이거든. '난 그녀를 잊지 못할 것이다. 기억이 통조림에 들었다면 기한이 영영 지나지 않길. 만일 기한을 적어야 한다면 만년 후로 적어야지.' - 중경삼림
얼큰하게 취해서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서, 한무리의 사람들이 모여 떠들고 있다. '2차 안가요?' 여자의 목소리다. 2차? 2차는 좋다. 누구라도, 2차는 좋다. 나는 동화가 좋다. 여러가지 일들이 있었다. 좋은 일도, 나쁜 일도 있었다. 그러나, 결국에는 모두가 행복했다. 이런 얘기가 좋다. 물론, 좋아한다는 것과, 실제로 그렇게 산다는 것은 다른 얘기겠지만.
사랑이란, (물론 이렇게 시작하는 모든 문장들에 대해 내가 가지는 거북함이란 일반적인 것이겠지만) 나에게 하나의 풍경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