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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의재
만일 삶이란 것이 내가 선택할 수 있는 것이라면, 나는 소설 쓰는 삶을 선택하겠다.
차창문을 열고 초여름밤의 뻥 뚫린 대로를 달리는 것만큼 즐거운 일은 없는 거야. 만일 갈 때만 있다면 말이야. 그리고, 이 시간이나 세계에 대해, 또는 나 자신에 대해 할 말이 있을 때 누군가 들어줄 사람이 있다는 것만큼이나 행복한 일은 없는 거지. 지독한 시간들은 무시하고 좋은 시간에 집중할 것. 지독한 - 시간들은 - 무시하고 - 좋은 시간에 - 집중할 것. (Ignore the awful times,and concentrate on the good ones! ) 이게 내가 하고 싶은 말이야.
전철은 다리를 건넜다. 산등성이에는 개나리 꽃이 부스럼처럼 슬어 있었다. 하루는 종일 구름, 내내 마음이 우울했다. 모꼬지에서 돌아오는 길.
상황을 이해하고 그 상황에 적응한다는 것이 언제부터인가 어려워지기 시작했다. 난 항상 그 두 가지의 순서를 뒤바꾸어버린다든지 한가지만을 성공적으로 해내기 때문에 결국엔 아무것도 하지 못한 게 되어버리고 만다. 가령 고등학교 시절, 나는 상황을 이해했지만 적응하지 못했고, 재수시절은 그 반대의 경우였다. 그래서 결국엔 고등학교 때의 나의 모습은 쉬는 시간에 친구와 잡담을 나누기보다는 운동장으로 나있는 창가에 몸을 기울여 창 밖을 바라보거나 책을 읽거나 하던 것으로 기억된다. 그와 반대로 재수시절엔 쉬는 시간 책상에 앉아 공부를 하기보다는 학원옥상으로 올라가 담배를 피우며 친구들과 시시껄렁한 얘기를 마치 탁구 치듯 서로에게 튕겨대다가, 학원을 탈출해서 당구를 치거나 했다. 두 번의 실패를 겪은 이후에도 나는..
예전에, 그러니까 그건 내가 고등학교 3학년 때 일로, 중대부여고 문예반의 어떤 여자에게 한창 열을 올렸었더랬다. 뭐, 결과적으로는 굉장히 불쾌한 기억만이 남았지만(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정말 불쾌한 여자였다.) 나는 그 때 편지를 썼었다. 편지의 마지막에, '추신'이라고 쓰고 이렇게 적었다. 지금 내게 필요한 것은, '네'가 아니라 계기다. 무슨 의도로 그런 말을 썼는지는 잘 알 수 없지만, 그 느낌만은 마치 몇 분 전의 일처럼 생생하게 만질 수 있다. 내겐 계기가 필요하다. 이대로는 안된다. 이건 너무하잖아. 이건 네 생이라고.
날씨가 따뜻해졌어. 노천스탠드에 앉아 햇볕을 쬤지. 오랜 버릇이야. 볕이 좋은 오후에, 문리대 로비에서 커피 한 잔을 뽑아서 노천스탠드로 나가지. 담배를 피우기도 하고, 아침마다 아무렇게나 집어들고 온 소설책을 읽기도 하고, 아무 짓도 안하고 아무 것도 보지 않고 앉아있기도 해. 햇볕 하나로 사람이 행복해질 수 있다는 건 그다지 놀라운 일이 아니야. 그것이야말로 우리를 행복하게 만드는 유일한 것이 아닐까? 아주 행복해지지.
아무 이유 없이, 밤을 새우게 되네. 이렇게 말이야. 특별히 할 일이 있는 것도 아닌데, 해야 할 일이 있는 것도 아니고. 그저 잠이 안와서 말이야. 누군가 그러던데, 밤을 새우면, 그 피로가 한달을 간다고. 그래서 내 생활이 항상 엉망인지도 모르겠고. 군에 있을 때, 참 문장을 잘 썼던 쫄따구가 있었지. 키도 홀쭉하니 크고, 얼굴도 샤프한 것이, 직접 자신의 입으로 말하지 않더라도 사회에서 여자 꽤나 울리고 다녔을 것 같은 녀석이었는데, 문장들이 참 좋았어. 그래서 제대하고 나올 때, 그 친구 노트를 훔쳐서 들고 나왔지. 근데 그 녀석 말이야, 군대에 적응을 잘 못했어. 항상 위태롭게 보였고, 결국에는 무슨 이유인지 몰라도 '후송'을 갔는데 그 다음에 내가 제대할 때까지 돌아오지 않았지. 그래서 녀석 ..
꾸미다는, 꿈에서 파생된 말일까? 아니면, 꾸미다에서 '꿈'이 파생된 것일까? 그래서, 언제나 꿈은 '꾸며낸'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