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록2002/12 (9)
시간의재
눈이 내립니다. 저녁에 카페에서 일을 하다, 잠깐 담배를 피러 밖으로 나왔다가 눈이 내리는 걸 처음 발견했습니다. 주차된 자동차 위로 소복이 쌓인 눈을 보면서, 제가 모르는 새에 눈이 내리기 시작해서, 제가 모르는 동안에 조금씩 쌓였다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그렇게 쌓인 눈을 보는 건 기분 좋은 일입니다. 마치 깜짝 파티 같은 기분이 듭니다. 숨어 있던 누군가가 불쑥 튀어나와 축하해, 축하해, 소리칠 것만 같은 기분이 듭니다. 저는 멋쩍게 머리를 쓸어내립니다. 이 눈이 올 겨울 들어 몇 번째 눈인지 알 수 없지만, 제게는 마치 첫눈 같았습니다. 2002년 겨울 첫눈은 12월 30일 날 내렸다고 기억하기로 했습니다. 카페를 마감하고 친구를 만났습니다. 이 친구는 제 고등학교 때 친구입니다. 벌써 10년..
'지금의 어린이들이 자라서 결국 될 수 있는 건 보잘 것 없는 어른일 뿐이지만, 그 과정에서 겪게 될 수많은 나쁜 일들 중에, 그래도 좋은 게 있다는 걸 알려주고 싶었다.' 얼마 전 우연히 보게 된 일본 재패니메이션에 대한 다큐멘터리 중, 미야자키 하야오의 인터뷰 내용 중 일부이다. 나는 이 말을 듣고, 역시 미야자키 하야오라고 감탄하고 말았다. 실제로 그의 얼굴을 보고, 그의 음성을 들은 건 그때가 처음이었다. 그 인터뷰는 1996년이나 97년의 것으로, 그가 아직 ‘원령공주’를 만들기 전의 일이다. 나는 특히 첫 번째 문장이 맘에 든다. ‘지금의 어린이들이 자라서 결국 될 수 있는 건 보잘 것 없는 어른일 뿐이다.’ 이런 터프함과 냉정함, 그리고 자포자기적인 심정이 좋다. 비록 아무도 미야자키 하야오..
‘테스’라는 장편소설이 있습니다. 저는 이 소설을 중학교 때 읽었는데요, ‘그레이트 북스’라는 출판사에서 나온 세계문학전집 중 한 권이었습니다. 판형이 현재 나오는 소설책보다 작고, 세로쓰기로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제법 긴 소설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번 읽기 시작하자 도저히 책을 놓을 수가 없었습니다. 저는 거의 밤을 새워 읽었던 것 같습니다. 이상하게도 그 밤, ‘테스’라는 소설을 읽고 있는 저의 모습이 선명하게 기억납니다. 읽는 부분을 표시하기 위해 책을 책상 위에 엎어 놓고 화장실로 갑니다. 그리고 거울을 통해 제 얼굴을 바라봅니다. 이미 늦은 시각이라 가족들은 모두 잠이 들었고, 사방은 고요합니다. 멀리서 빠른 속도로 도로 위를 달리는 자동차 소리가 들립니다. 저는 다시 노란..
달빛이란 참 신비한 겁니다. 저는 살아오면서 몇 번이나, 이런 생각을 했었습니다. 그리고 그때마다, 그 신비한 달빛에 대해, 그리고 그 달빛 아래 서 있던 나에 대해, 뭔가를 써보고자 했었습니다. 하지만 단 한 번도 제대로 써 본적이 없습니다. 실제로 ‘늑대인간의 귀환’이란 소설에서 제가 정말로 쓰고 싶었던 것은 그 달빛에 관한 얘기였습니다. 저는 어떻게든 그것을 써보고 싶었던 거죠. 하지만 역시 잘 되지 않았습니다. 며칠 전 직원들이 모두 퇴근하고 저 혼자 남아 뒷정리를 하던 중, 카페의 정원에서 문득 다시 한번 그 달빛 아래 서 있는 저 자신을 발견했습니다. 저는 담배 한 대를 다 피우면서 그 달빛에 비친 휑한 정원의 풍경과, 달을 바라보았습니다. 마음을 애잔하게 하면서, 동시에 행복하게 합니다. 저..
단상에 에미넴의 ‘lose yourself’라는 곡을 올렸습니다. 뮤직비디오와 영어원문과 해석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그 뿐입니다. 오랜만에 오후 내내 집에서 빈둥거리며 티브이를 보다가 우연히 보게 된 뮤직비디오입니다. 에미넴이란 가수를 처음 알게 된 건 최근의 일입니다. 역시 케이블 티브이를 보다가, 미국의 무슨 음악상(그래미?) 시상식에서 그의 모습을 처음 봤죠. 아마 ‘without me’라는 곡이었을 겁니다. 그 뮤직비디오에서는, 빈 라덴 복장을 한 우스꽝스런 모습의 에미넴을 볼 수 있죠. 그리고 이번 곡 ‘lose yourself’는 우연히도 오늘 낮에 운전을 하다가 듣게 되었습니다. 좋더군요. (사실 이 음악을 처음 들은 건, 이 음악이 사운드 트랙으로 쓰인 영화 '8mile'의 예고편을 통해서..
[Intro] Look, if you had one shot or one opportunity 이봐, 만약 너에게 네가 원했던 모든것을 To seize everything you ever wanted in one moment 얻을 수 있는 한 번의 기회가 주어졌다면 Would you capture it or just let it slip? 잡을 건가 아니면 그대로 놔둘건가? [Verse 1] Yo, his palms are sweaty, knees weak, arms are heavy Yo, 손바닥은 땀으로 차고, 다리는 후들거리고, 팔은 무겁게만 느껴져 There is vomit on his sweater already 그의 옷에는 구토 자국이 있지 Moms forgettin' he's nervous ..
언제 내가 처음 이 음악을 들었던 것일까? 아니, 언제 내가 처음 이 음악의 제목을 알게 된 것일까? 기억나지 않는다. 어느 순간부터 나는 자연스럽게 이 음악과, 이 음악의 제목을 알게 되었다. 척 맨시니의 ‘필 소 굿.’ 으흠. 척 맨시니하면, 자연스럽게 칙 코리아나, 팻 맷쓰니 등등의 이름이 연상된다. 그렇다고 내가 재즈 매니아라는 건 아니다. 나는 어떤 것이든, 그렇게 열중하지 않는다. 별 시시한 일들을 잘도 기억하는 내가, 이 음악과 맺게 된 최초의 인연이 기억나지 않는다는 건, 조금 이상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렇다 해도 내게는 이 음악과 관련된 몇 가지의, 역시 시시한(그래도 내게는 소중한) 기억들이 있다. 첫 번째는, 작년 여름의 일이다. (벌써 이것이 작년 일이라니!) 나는 그 여름, 대학..
오랜만에 물고기통신을 써봅니다. 다들 잘 지내고 계시겠죠. 그동안 참 많은 일들이 있었습니다. 정말일까요? 생각해보면 또 그렇게 많은 일들은 아닌 거겠죠. 마치 긴 여행에서 돌아온 기분이 듭니다. 다시 제 방으로 돌아온 것 같은데, 여전히 제 방은 그대로인지, 또 제 자신도 그대로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하나하나 점검을 해봐야 할 것 같습니다. 이번 여행, 이번 일을 통과하면서 저는 제 자신에게 두 가지 질문을 던졌습니다. 첫 번째 질문은, ‘나는 어떤 인간일까?’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곧이어, 이런 질문을 던졌습니다. ‘뭘 배웠지?’ 이 두 가지 질문에 대한 답을, 지금 이 시점에서 저는 잠정적으로 이렇게 내려봅니다. ‘나는 이기적인 인간이다. 그러나 이제 내가 누군가를 위해서 무언가를 하지 않으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