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록2002/11 (10)
시간의재
세상에는 두 가지 형태의 ‘부조리’가 있다. 첫 번째는, 전체 중에 하나의 요소를 따로 떼어 내어 바라보게 될 때 느끼는 부조리다. 그것은 ‘전체 속에 포함되어 있는 것’으로서는 전혀 부조리하지 않다. 이치에 닿는다. 하지만 억지로 그 문맥에서 떼어내면 그것은 굉장히 이상한 일, 이치에 닿지 않는 일처럼 보인다. 이런 경우는 수없이 많다. 때로 사람들은 자신의 이익을 위해, 일부러 전체의 문맥에서 어느 한 요소만을 떼어내어, 그것이 ‘부조리’하다고 말한다. 매도한다. 하지만 이 첫 번째 ‘부조리’는 진짜 부조리가 아니다. 그것은 오해에 불과하다. 두 번째는, 반대로 전체 속의 하나하나의 요소들은 이치에 닿는다. 누군가 우리에게 그 하나하나를 따로 따로 보여주고 설명한다면 우리는 매번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나는 싸움을 잘 못한다. 신체를 사용하여 치고받는 실제의 싸움뿐만 아니라, 말싸움, 또 비유적인 의미에서의 싸움 등등. 웬만하면 피하고 싶다. 그렇다고 싸움을 두려워하는 것은 아니다. 이 말은 어떤 싸움이든 했다 하면 이길 자신이 있다는 말이 아니다. 그러니까 이 말은 싸움에서 지는 걸 두려워하지 않는다는 말과 같다. 내가 남들과 잘 싸우지 못하는 이유에 대해서 곰곰이 생각해봤는데, 아마도 내게는 절실하게 지키고 싶은 것이 없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요컨대 명분이 없는 것이다. 져도 별로 상관없다. 그저 내가 바라는 것은, 그 싸움에서 내가 덜 상처받기를 바랄 뿐이다. (그래도 때로 술이 취하면 누군가에게 시비를 걸고는 한다. 싸우고 싶어진다. 또 여기서 ‘논쟁’과 ‘의견교환’을 구별할 필요도 있다. 때..
이런 말 이런 곳에 해도 될는지 모르겠지만, 나는 가족을 믿지 않는다. 실제로 우리 가족 구성원들을 믿지 않는다는 게 아니라, 그저 ‘가족’을 믿지 않는다. 가족을 싫어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가족’에 대해서 지금껏 단 한 번도 진지하게 생각해 본 적이 없다. 그것은 그저 알 수 없는 것, 그리고 또한 나와 어울리지 않는 것이라고 생각해왔던 것 같다. 그래서 내가 가장 싫어하는 유형의 소설은 ‘가족’ 소설이다. 좀 더 정확히 말하면, 90년대 여성작가들의 ‘가족’ 소설이다. 가족에 대해 무엇을 말할 게 있는가? 그것은 아마 내 어린 시절의 경험과 무관치 않을 거라고 생각한다. 그게 몇 살 때였는지 나는 기억하고 있지 못하지만, 또 그것을 알고 있는 사람들에게 묻고 싶지도 않지만, 어린 시절 나는 어머니..
즐거운 일은 어째서 끝나는 걸까? 그건 슬프고 괴로운 일이 끝나기 위해서야. 하지만 내가 정작 궁금한 건, 즐거운 일이 끝났을 때, 또 슬프고 괴로운 일이 끝났을 때, 우리는 그 이전의 자기 자신으로 돌아갈 수 있는가 이다. 돌아가기나 할 수 있는가 이다.
누군가에게 뭔가 무척 말하고 싶을 때, 그 말이 꼭 필요하다고 느껴질 때, 그 말들은 대개 아무런 소용이 없다. 반대로 어떤 소용이 닿는 말들도 있다. 하지만 그건 말하지 않아도 다 알 수 있는 것이다. 대체 말이 뭐가 필요하겠는가?
나는 집착이 강한 편이다. 남들이 스스로에 대해 하는 말들을 개인적으로 잘 신뢰하지 않는 편이지만, 집착에 관한 한 내 자신 잊지 않기 위해 되새기고 경계하는 실정이라 나는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그렇다. 나는 집착이 강하다. 남들이 믿든 안 믿든, 실제로 내 주변의 사람들이 나란 인간을 그렇게 여기든 여기지 않든, 이건 내 문제다. 과거의 경험으로부터 몇 가지의 확실한 사례를 끄집어 낼 수도 있다. 하지만 이 자리에서는 언급하지 않겠다. 그래서 어느 때인가, (그게 몇 살 때였지?) 나는 스스로에게 많은 일들에 대해 무관심해지길 바랐다. 무관심해지기. 이것은 내 삶의 중요한 원칙이 되었다. 그리고 세상의 많은 일들에 대해 무관심해질수록 내 자신이 어른이 되어가는 거라고 느꼈다. 이전에도 한 번 말했..
이제와 돌이켜 생각해 보건데, 중 고등학교 시절 분명 나 역시 꽤나 낭만적인 인간이었던 것 같다. 누구나 그랬겠지만, 당시 내가 알고 있는 세계는, 아주 단순한 단어의 조합에 불과한 것이었다. 그것은 정말로 아주 단순한 문장이었고, 또한 완성된 문장이었다. 하나의 단어는, 그 단어만큼의 무게를 가지며, 다른 단어와 뚜렷한 경계를 가지며, 순수한 것이었다. 결코 다른 것이 섞여들 틈이 없었다. 내가 알아야 할 것은, 또 내가 해야 할 것은, 그 단어의 진실한 뜻이었으며, 그 단어의 진실한 실천이었다. 가령, 용서, 평화, 이해, 사랑 …. 또 죽음, 절망, 고통, 슬픔. 그 모든 단어들은 나를 향해 순수하게 열려 있었으며, 내가 조금만 노력하면 획득할 수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아직은 잘 모르지만, 나이가..
장갑을 사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예전에도 한 번 말했던 것 같은데, 매해 겨울, 장갑을 사야겠다는 생각을 하지만, 지금껏 단 한 번도 장갑을 사 본적이 없습니다. 제가 장갑을 끼고 겨울을 보낸 것은 아주 어렸을 때나, 군대 시절밖에 없습니다. 분명 장갑을 끼면 손이 아주 따뜻해집니다. 손이 시린 걸 제가 좋아하는 것도 아닙니다. 그런데 어째서 저는 장갑을 사지 않는 걸까요? 언젠가는 분명 장갑을 끼게 될 겁니다. 제가 장갑을 사지 않는 데 별 이유가 없는 것처럼, 어느 날 문득 장갑을 사는 데에도 별 이유가 없을 것입니다. 거기에는 아무 이유가 없습니다. 그리고 그때에는, 장갑을 끼고 겨울 거리를 걸으면서, 제가 장갑을 끼고 있다는 사실도, 또 오랫동안 제가 장갑을 끼지 않고 겨울을 보냈다는 것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