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의재
# 발견 # "놀라운 일이네"라고 말했다. "놀라운 일이군"이라고 말했다. "놀라운 일이군" 하고 말했다. # 발견의 경위 # 1. 마지막 단어 (여기서는 '군')에 받침이 있은 경우, ["...군"라고]는 쓰이지 않는다. 왜냐면, 받침 때문에 매끄럽게 읽히지 않기 때문이다. 2. 그렇다해도, ["..."이라고] 쓰는 건 아무래도 이상하다. 3. 그래서 다른 소설에서는 어떻게 쓰였는지 조사해 본 결과, 1) 몽땅 ["..." 하고] 라고 쓴 경우, 2) 받침이 없을 때는 ["..."라고], 받침이 있을 때는 ["..." 하고] 라고 쓴 경우, 3) 별 다른 기준 없이 두 가지를 다 허용하지만, 받침이 있을 때는 항상 ["..." 하고] 라고 쓰는 경우, 이렇게 세 가지로 분류할 수 있었다. 4. 여기서 ..
불을 붙임 라이터를 켜기 위해 바람을 등지려 할 때마다 난 많은 생각으로 아무런 행도도 하지 못하곤 한다. 그 생각이란 아주 단순해서 많은 사람들은 필요할 때만 조금씩 아끼며 묻는 것들이다. 그건 바람이 어디에서 부는지 였다! 또 많은 사람들은 이쪽, 혹은 저쪽으로 손가락질하며 용감히 말한다. {이 바람은 동쪽에서 불고 있다} 아, 그러나 내가 그 방향으로 손바닥을 들어 라이터를 감싸질 때조차 결코 불은 붙지 않는다. 우리는 얼마나 많은 것을 알고 있는 걸까? 바람이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 굳이 과학적이란 용어를 방패처럼 휘두르며 날 비웃지 마라. 난 모르고 있다. 하지만 그게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난 결국 불을 붙일 것일진대 ......
方法 자기 자신을 속여야 한다. 속은 자는 일어설 것이기에 우린 죽는 날 까지 속으며 속이며 모른 척 가야한다. 아무 것도 모르는 것처럼 속지 못한 자는 5층 건물 옥상에서 자신의 삶을 너무 깊이 그리고 많이 알아 버린다. 현명한 자는 속는다. 새벽 2시에 일어나 4시 까지는 자칫 자기 자신을 속이는 것을 잊을지도 모른다. 아무도 없는 거실 혹은 가로등조차 부서진 빈 거리에선 문득 올려다 본 하늘이 우릴 비웃어도 길게 고개 저으며 속아야 한다. 어제 깨달은 진리도 오늘은 필요없고 오늘밤 비겁하게 흘린 눈물도 내일엔 잊어야 한다. 잊고 살자. 그것은 삶을 길게 혹은 밝게 사는 길이다.
왕 : 나의 성안에서 나, 선량한 왕은 웃을 수 없는 왕녀의 소문을 들었다. 나 역시 진지한 남자로서 웃음을 경멸하노라. 그래서 나는 그 왕녀를 나의 아내로 삼고자 하노라. 내가 모르는 것은 그 왕녀가 사는 곳. 내게 그것을 말해주면, 큰 상금을 받으리라! 뜨내기 : 저는 왕녀께 폐하의 성을 일러 드릴 수 있습니다. 마침 왕녀를 찾아가는 길이니까요. 그렇지만 진심으로 미리 말씀 올리오니, 희망을 갖지 마십시오. 왜냐하면, 제가 가면 왕녀께서 웃으실 테니까요! 왕 : 그대는 헛걸음을 하는 걸세. 들어 보라, 방랑자여. 웃지 않는 것은 왕녀의 뜻이라네! 그것도 마땅한 이유를 갖고. 모든 것이 한번은 죽는 존재라는 것을 생각하는 자는 결국은 쓰디쓴 결론에 이르기 마련일세. 세상은 둥근 것, 반짝거리는 하되 비..
[그래 죽을 수밖에 없는 거다.] 다른 사람들보다도 먼저 죽을 것은 사실이겠지만, 그러나 인생이 살 만한 가치가 없다는 것은 누구나 알고 있다. 결국 서른 살에 죽든지 예순 살에 죽든지, 별로 다름이 없다는 것을, 나도 모르는 바 아니었다. 그 어떤 경우에든지, 그 뒤엔 다른 남자들, 다른 여자들이 살아 갈 것은 마찬가지요, 그리고 여러 천년 동안 그럴 것이다. 요컨대 그것은 지극히 명백한 일이었다. 지금이건 이십년 후이건 나는 죽을 것임엔 다름이 없었다. 그 때 그러한 나의 이론에 있어서 좀 거북스러운 것은, 앞으로 올 이십년의 생활을 생각할때, 나의 마음속에 느껴지는 무서운 용솟음이었다. 그러나 이십년 후에 어차피 그러한 지경에 이르렀을 적에, 내가 가지게 될 생각을 상상함으로써 그것도 눌러버리면 그..
상황을 이해하고 그 상황에 적응한다는 것이 언제부터인가 어려워지기 시작했다. 난 항상 그 두 가지의 순서를 뒤바꾸어버린다든지 한가지만을 성공적으로 해내기 때문에 결국엔 아무것도 하지 못한 게 되어버리고 만다. 가령 고등학교 시절, 나는 상황을 이해했지만 적응하지 못했고, 재수시절은 그 반대의 경우였다. 그래서 결국엔 고등학교 때의 나의 모습은 쉬는 시간에 친구와 잡담을 나누기보다는 운동장으로 나있는 창가에 몸을 기울여 창 밖을 바라보거나 책을 읽거나 하던 것으로 기억된다. 그와 반대로 재수시절엔 쉬는 시간 책상에 앉아 공부를 하기보다는 학원옥상으로 올라가 담배를 피우며 친구들과 시시껄렁한 얘기를 마치 탁구 치듯 서로에게 튕겨대다가, 학원을 탈출해서 당구를 치거나 했다. 두 번의 실패를 겪은 이후에도 나는..
일주일에 세 번, 화요일, 목요일, 토요일에 아침마다 운전을 해. 아침이라고 했지만, 사실은 11시에서 1시 사이니까 아침이라고 할 수도 없는 시간이지. 그게 작년 가을부터니까 이제 거진 반년이 되어 가는 셈이네. 필드라는 카페가 있었어. 체인점 같은 거였는데, 학교 앞에도 하나 있었지. 혹시 아펠이라는 복사전문 가게를 알고 있는지 모르겠네. 왜 있잖아, 버거킹 골목 초입에 있는 가게말이야. 켄츠 바로 옆에, 바로 그 자리였어. 조그만 카페였지. 하여튼 이름이 필드였어. 아마 입구에는 이름에 걸맞게 잔디색깔의 푸른 색 카펫이 깔려있고, 안으로 들어가면 실내임에도 불구하고 햇빛을 가리는 파라솔이 펼쳐져 있었지. 그게 홍대 앞에도 있었어. 1992년 나는 재수생이었어. 나는 친구와 홍대 앞 필드를 자주 드나..
예전에, 그러니까 그건 내가 고등학교 3학년 때 일로, 중대부여고 문예반의 어떤 여자에게 한창 열을 올렸었더랬다. 뭐, 결과적으로는 굉장히 불쾌한 기억만이 남았지만(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정말 불쾌한 여자였다.) 나는 그 때 편지를 썼었다. 편지의 마지막에, '추신'이라고 쓰고 이렇게 적었다. 지금 내게 필요한 것은, '네'가 아니라 계기다. 무슨 의도로 그런 말을 썼는지는 잘 알 수 없지만, 그 느낌만은 마치 몇 분 전의 일처럼 생생하게 만질 수 있다. 내겐 계기가 필요하다. 이대로는 안된다. 이건 너무하잖아. 이건 네 생이라고.